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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베를린소망교회 2026.05.31. 주일예배 설교 전문: 하나님의 부흥(행11:19-26)

작성자박성병|작성시간26.06.06|조회수38 목록 댓글 0

여러분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사람을 키우는 곳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예수님의 사람을 키우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잘 다니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시대가 종교 없는 세속주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예수님 믿고 교회 나오신 분이 계속해서 신앙으로 사는 것 그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2018년도에 영국의 세인츠 메리 대학과 프랑스의 파리 카톨릭 대학이 공동으로 유럽 젊은이들의 종교 현황을 조사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리포트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탈종교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말합니다.

 

유럽 12개국에서 16세부터 29세 사이의 젊은이들을 조사했는데요. 체코의 경우 91%, 영국은 70%, 프랑스는 64%가 나는 신을 믿지 않으며 종교가 없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독일의 젊은이들은 45%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독일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신앙적으로 좀 더 양호한 그런 상황입니다. 하지만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독일 젊은이들의 다수가 예배나 기도와 같은 신앙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비종교인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도님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교회 출석 이후 계속 교회를 다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유럽의 이러한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제트 세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트 세대란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얼마 전 한국 뉴스에 뉴욕의 카톨릭 교회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뉴욕의 세인트 패트릭 성당과 세인트 조셉 성당 주일 미사에 제트 세대 청년들이 많이 몰려와서 빈자리가 없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들은 자리가 잘 없으니까 미사 시간에 맞춰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미리 와서 함께 동네에서 피자를 먹고 성당에 가는 피자 투 퓨스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센트럴 파크를 걸으면서 묵주 기도를 하는 홀리 걸 워크 이런 운동도 유행시키고 있다 그런 보도였습니다.

 

목사인 제 입장에서는 참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고 좀 신기하기도 해서 유럽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한번 찾아봤습니다.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제트 세대 청년 중 신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여론조사 기관인 인사에서 2024년과 25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독일 30세 이하 청년층의 11%가 매일 성경을 읽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통계가 여러분 보실 때는 어떤지 모르지만 대단한 겁니다. 독일 교회 교인의 대다수를 이루는 연령층은 60대 이상의 기성세대입니다. 그 기성세대가 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비율은 4%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제트 세대 성도들이 기성세대보다 3배나 더 많이 성경을 읽고 있다 그렇게 답한 겁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메아 컨퍼런스라는 것이 매년 열리고 있는데요. 이 컨퍼런스는 독일 개신교 청년들과 카톨릭 청년들, 초교파 청년들이 모여서 하는 기독교 축제입니다. 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찬양과 말씀, 나눔 그리고 기도입니다. 우리의 수련회 같은 것이죠. 매년 큰 체육관에서 모이는데 만 명에서 1만 2천 명 정도가 모인다고 합니다.

 

또 칼스루에서는 칼스루에에서 열리는 기독교 청년 축제가 있는데 칼렙이라는 축제입니다. 이 축제에서 청년들은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한다고 그래요. 세속적인 독일 학교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 문제를 토론하고 함께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여기도 수만 명이 모입니다. 이처럼 제트에 대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일만 그럴까요?

 

프랑스 카톨릭 주교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카톨릭 세례자의 수는 매년 30% 이상 증가하고 있는데 그 세례자의 53%가 제트 세대 청년들이라고 했습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와일드 파이어라는 기독교 청년 축제가 있는데 여기에도 1만 명 이상의 제트 세대 청년들이 모여서 밤새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수련회 같은 것이죠.

 

이런 현상을 신학자들은 스피리추얼 리바운드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농구를 할 때 슛을 때렸는데 그 슛이 백보드를 맞고 튀어나오면 그것을 리바운드라고 합니다. 그처럼 지금 유럽의 기성세대는 세속주의 타일 종교 현상, 세큘라리제이션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 흐름에 반대해서 일어나는 운동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적 리바운드 현상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이 듭니다. 왜 제트 세대의 사람들은 세속화의 흐름에 역행하며 교회로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요?

 

제트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살았고요. SNS를 접한 최초의 세대입니다. 그리고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극심한 고립감을 경험했던 세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인터넷 세계가 제공하는 가상의 만남보다는 실제로 사람들 사람으로 만나서 어울리는 그런 물리적인 공동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또 이들은 현대의 정치 경제와 같은 그런 사회 시스템에 불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습니다. 이어서 중동에서 잇따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전문가들이 정치가 이렇게 될 것이다 경제가 이렇게 될 것이다 말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디에선가 변수가 발생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적으로 다가온다는 겁니다.

 

그 결과 자기 세대는 취직도 안 되고 경제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지식보다 오히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삶의 방식, 하나님의 섭리 그것을 더 의지한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로 돌아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들은 SNS에 인플루언서들이 보여주는 성공 돈 명예 이런 것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SNS를 보면 다들 보여주기식으로 자랑을 합니다. 어디 가서 점심 한 끼 먹으면 그걸 사진을 찍어가지고 올립니다. 별 것도 아닌데 커피 한 잔 마시면 그걸 또 올립니다. 그런 자랑하는 것에 식상하다는 거, 그리고 그런 SNS에 떠오르는 그런 성공들, 그런 성공에 자신들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너무 일찍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보여주는 그런 성공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진짜 행복에 더 열심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적 충만 신앙생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자들은 그렇게 분석합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교회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유럽과 미국과 같은 기존 기독교 사회에서 이제 교회는 일어서기 어렵다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코로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상한 일을 하셨습니다. 코로나의 반작용으로 제트 세대에게 예상치 못했던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하나님의 부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얻어낸 부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그런 영적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하나님의 부흥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그 성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실까 그 답을 찾았으면 합니다.

 

오늘 성경을 같이 보겠습니다. 19절에서 21절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향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지도자였던 스테반 집사는 죽었고, 믿는 자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졌습니다. 교인 수가 급감했습니다. 남은 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열심히 신앙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서 이제 교회는 끝났다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방 땅에 흩어진 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이방 땅 안디옥에서 이방인이 주축이 된 이방 교회가 생겨난 것입니다. 나중에 이 교회가 이방 선교를 주도하게 됩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21절은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손 하나님께서 일으킨 부흥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이 일으킨 이 부흥을 어떻게 이어가셨습니까?

 

25절과 26절을 보겠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1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들이 한 일은 교회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가르쳤겠죠. 하나님은 이번만 이렇게 일한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그때도 하나님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지만 성전을 지켜줄 성벽이 없었고, 언제든지 이방인들이 몰려와서 공격하면 성전도 이스라엘 공동체도 해체될 것 같은 그런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보내서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을 주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신 영적 부흥은 성벽을 재건하는 것과 더불어서 말씀 사역이었습니다.

 

에스라가 성문 광장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배웠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신 부흥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국도 그랬습니다. 구한말 정부가 너무 부패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주고 관직을 사고 파는 매관매직이 성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관직을 산 사람에게 당신 평안도로 가시오. 그렇게 말을 하면 그 사람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평안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부정부패가 안 통했다는 겁니다.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성경을 배웠고 그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그대로 살려고 했다는 겁니다. 깨끗하게 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없다는 겁니다. 이처럼 성경을 배운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평양 대부흥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성경을 배우는 일,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일까요?

 

디모데후서 3장 18절의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여기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이 말. 이 말을 헬라어로 보면 테오 푸유 스토스입니다. 테오프뉴스토스 이 말은 테오스 하나님이 푸네인 자기의 영을 불어넣었다 그런 뜻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불어넣어주신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불어넣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통해 사람의 심령이 변화되고 삶이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치 육신으로 살던 사람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처럼 성경을 통해 그런 역사가 나타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교회에서 1년 동안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26절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 바르게는 작은 그리스도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을 바울 사도는 다르게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거룩한 사람 성경을 가르치며 교회에서 함께 신앙한 결과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닙니까?

 

죄인으로 살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삶이 변화되고 주님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교회가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은 바로 이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게 성경을 가르친 결과 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부흥은 양적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회적인 감성 폭발만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찬양을 부르며 은혜 받고 눈물 흘리고 회개하는 것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말씀과 기도로 새롭게 살려고 하는 것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려고 하는 것. 그 결과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흥입니다.

 

하나님은 이 부흥을 위해 성경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늘 기도하면서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 학교에서 교사로 섬기는 일, 그것이 힘들 겁니다. 때로는 화가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찮아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역에 큰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소망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흥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면서 바나바와 바울 이 두 사람을 동역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예가 아주 많습니다. 출애굽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십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이라는 이 두 사람을 동역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를 통해 무너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시 세울 때에도 느헤미야와 에스라 두 사람이 같이 동역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아마도 바나바는 목회하면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을 잘했던 것 같아요. 낙심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것을 돕는 일, 그 일을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가르치는 일을 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을 해박한 성경 지식으로 풀이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그렇게 믿고 확신했습니다.

 

이 둘이 이렇게 동역한 결과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동역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서는 함께 동역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교역자와 교사가 동력해야 합니다. 교역자가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면 교사들은 학생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교역자가 학생들을 위로하는 일을 한다면 교사는 하나님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가정도 동력해야 합니다. 요즘 제트 세대에게 제트 세대 청년들에게는 큰 그룹보다 좀 더 세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소그룹 모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보다는 함께 대화하면서 알아가는 것, 그것을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 설교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큐티를 통해 가족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일주일에 한 번 가족끼리 테이블 대화를 가지라 그렇게 말합니다.

 

테이블 대화가 뭔가 함께 식사하며 테이블에 앉아서 살아가는 이야기, 신앙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이것은 이미 500년 전에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신학교에서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신학생들이 이 루터의 가르침을 수업을 통해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루트가 남긴 어록을 정리한 책 중에 티쉬 4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궁금한 내용을 식사 중에 루터에게 질문한 겁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 놓은 책이 티슈 레드입니다. 이 티시레드를 보면 루트의 진짜 생각, 그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이 신앙의 리더가 되어서 자녀들과 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거는 어떤 거예요? 나는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이게 어떤 거예요? 물으면 거기에 현실적으로 답해주는 것. 그것이 신앙에 더 효과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신앙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알아야 신앙적으로 조언해 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교회 학교 선생님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교회 학교 선생님들과 동역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와 가정이 동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동력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흥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면서 잊지 말아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인내를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호칭 이 호칭은 지금은 자랑스러운 호칭이지만 처음에는 조롱의 말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로마 정부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형수, 그 사형수를 구원자라고 믿고 따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오,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믿는 이 사람들을 미련하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롱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인내하며 하나님 말씀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믿을 수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더 우월한 사람,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인정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는 일, 그 일은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할 때 낙심할 부분이 참 많습니다. 아마도 바울 사도도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면서 낙심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쳐서 넘어지지 마십시오. 이런 말을 권면으로 남겼습니다. 왜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까?

 

이 일은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흥 역사에 우리는 그저 참여해서 동참하는 것뿐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이 일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었을 때 열매를 거두게 하신다 그렇게 말합니다.

 

설교를 정리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부흥에 대한 말씀을 우리가 읽고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디옥이라는 이방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기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방인에게 유럽에 그리고 땅 끝 로마까지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제트 세대에서 일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민자는 그 사회에서 작은 자에 불과합니다. 이민자들의 교회도 작은 교회에 불과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를 통해 보여주듯 작은 자를 통해서도 새로운 역사는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역사라고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계시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실까요?

 

바울과 바나바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시대에도 바나바와 바울을 부르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쩌면 우리 시대에 바나바와 바울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처럼 성경을 가르치며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도록 기도하고 노력하며 또 함께 동역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내실 겁니다.

 

인내하면서 이 일을 감당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교사 헌신의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선생님들과 또 이 자리에서 함께 동역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부흥에 대한 소망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에 나도 동참하겠다 헌신하는 마음을 다짐했으면 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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