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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달성교회 2026.05.31. 주일예배 설교 전문: 영적 우선순위(요삼1:1-11)

작성자박성병|작성시간26.06.07|조회수36 목록 댓글 0

귀한 은혜의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은 5월의 마지막 주일이자 또 산부 예배 후에는 하나님의 일꾼을 뽑는 항존직 선거가 있습니다. 이제 세상에도 얼마 있지 아니하면 6.3 지방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교회 선거와 세상 선거가 무엇이 다를까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 선거는 그 기준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누구 있다고요?

 

자기에게 있습니다. 당선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잘 나타내야 되고 잘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많이 만나야 되고 홍보도 많이 합니다. 교회 밖에도 보니까 홍보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럴 때로는 돈도 써야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야만 당선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교회 선거는 어떨까?

여러분 교회 선거는 어떤가요?

 

교회 선거는 세상 선거와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 선거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지역 일꾼을 뽑습니다. 그러면 교회 선거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일꾼을 뽑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신실하게 헌신하는 일꾼을 뽑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기를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자기를 뽑아달라고 부탁도 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 사도행전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일꾼을 뽑는 그런 현장이 나옵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사도 12살 들어갈 사람을 뽑는 사건입니다. 그때 두 후보가 나옵니다. 유스드라고 하는 사람과 마티아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때 그들이 어떻게 뽑았을까요?

 

사도행전 1장 24절부터 26절 말씀까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누가 해 누구 사랑의 마음을 아시는지, 이 두 사람 중에 그와 스님께 하신 바 되어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제시할 자의 길을 세우시옵소서 하는 이 식물을 버리고 세 곳으로 나이다 하고

 

아멘

 

보시면 그들이 뭐 하여 이르되 뭐 하여 이르되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빛,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물을 버리고 제것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두을 얻더니 마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그들이 무엇을 했다고 했죠? 그들이 무엇을 했다고 했죠?

기도했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도했다. 여러분 교회 선거는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후보자들에게 또 여러분들에게 기도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는 이유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꾼을 뽑는 것입니다. 마디아가 사도들에게 제발 좀 나를 뽑아주세요. 저를 좀 뽑아주세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도들이 기도하면서 제비 뽑았을 때 마디아가 뽑힌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하는 직분자 선거입니다. 그러니 교회 직분자는 자기를 알릴 필요도 자기를 드러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세우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달성 교회가 새로운 일꾼이 잘 세워짐으로 해서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우리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영적 우선순위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 받고자 합니다.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2절의 말씀 시작

 

아멘 사랑하는 자여 내 무엇이 잘 됨 같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뭐가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마귀를 가난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구절을 삼박자 축복이다고 말합니다만, 우리가 놓쳐서 안 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선 순위입니다.

 

뭐라고요?

 

우선순위 모든 것이 잘 되고 건강해지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먼저 우리 영혼이 잘 되어야만 인생의 나머지 조각들도 잘 맞출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우리 인생도 틀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말하는 영혼이 잘 된 상태가 뭘까요?

 

먼저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어디 안에서요? 진리 안에서 오늘 사도 요한이 가요의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했던 이유는 그가 부자가 되었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3절 4절 말씀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3절 4절의 말씀입니다. 시작

 

영명이 아서 내게 시를 내가 승리하는 사람 같다. 내가 신이 기뻐.

 

아멘 14절 4절 4절부터 읽어봅시다. 4절 시작

 

내가 내 사랑을 주위 하에서 행한다 함을 것보다 더 깊은 일이 없도

 

아멘 자 여기 보면 진리라는 말이 나오죠. 진리 여러분 진리가 뭘까요?

 

진리는 단순히 내가 머리로만 아는 것 그게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성경에 보면 누구라고 했죠? 진리는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런 사랑 희생, 그 길로 걸어가는 자, 진리로 걸어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진리 안에서 행한다. 내 이익을 먼저 따지기 전에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를 고민하면서 생각하고 따라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내 즐거움, 내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는 자 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이자 또 5월에는 어린이 주일도 있고 어버이 주일도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부모 된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소식을 전해줄 때 여러분은 가장 기쁘신가요?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소식을 전해줄 때 여러분이 가장 기쁘신가요?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 얼마나 기쁘고 좋을까요?

 

대기업의 취업했다는 소식 들으면 정말 기쁠 겁니다. 혹 또 손주를 봤다 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오늘 사도 요한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노라.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일이 없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믿음의 부모들이 가져야 할 가치관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자녀가 세상적으로 조금 뒤처지는 것 같아도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살아 있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큰 영적 위로를 봤습니까?

 

반대로 우리 자녀들이 밥은 먹고 사는 것 같은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영 다른 길로 가게 되면 그때부터 부모의 근심은 커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도 달성 교회 담임 목사로서 나름 성도들이 목사님 목회 잘하십니다고 할지라도 만일 우리 아이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자녀가 되었다고 한다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목사님이나 잘하시라고, 목사님이나 잘하시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크게 세상적으로 성공을 하지 못했다라고 할지라도 정말 예수님을 잘 믿고 살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산다면 그 자녀야말로 정말 잘 사는 자녀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우리 가정의 우선순위를 한번 생각해 보시고 한번 결단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정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우리는 자녀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성공해라, 돈 많이 벌어라 그런 잔소리를 수없이 하면서도 예수님 잘 믿고 살아라 그 말에는 혹 인색한 모습이 아닙니까? 정말 우리가 내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한다면, 정말 여러분의 자녀의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한다면, 정말 내 가정이 복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다시 진리 앞에 서야 됩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떤 세상의 유형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선순위에 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 우선순위라고 생각하면 신실함니다. 우리 5절 말씀도 한번 보겠습니다. 5절의 말씀 시작

 

아멘 사랑하는 자여 니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뭐 한 일이라고요?

 

신실한 일이다. 이 신실함 여러분 진실함이 다소 굉장히 어려운 단어일 수가 있습니다. 신실함이 뭐냐? 사실 답을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이걸 풀어보면 믿음직스럽고 변함이 없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신실함이라 믿음직스럽고 변함이 없는 마음 이 신실함은 표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뭐가 나게 되어 있다고요?

 

표시라고 있습니다. 이 신실함이라는 것은 마음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그 신실한 사람을 보면 아 저분은 참 신실하구나 그게 보여지지 않습니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신실함이라는 것은 드러나는 겁니다. 드러나는 겁니다. 그 신실함이 때로는 사랑으로 증명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신실함이라는 것은 어떤 내가 의무감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장로이기 때문에 해야 된다. 내가 권사이기 때문에 해야 된다. 그건 신실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되면 내 삶으로부터 나도 주님을 따라서 뭔가 작은 것이라도 해야 되겠다. 그 사랑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신실한 것입니다. 또한 신실함은 하나님께 가던 사람에게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는 잘하려고 애쓰는데 하나님께는 열심인데 사람에게는 굉장히 소홀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깍쟁이가 된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여러분 그건 신실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사람에게도 그 신실함의 모습이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에게 그 상을 잃지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를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신실함이란 우리가 주님께 하듯이 사람에게도 할 수 있어야 그 신실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선교지에 가지 못해도 내 곁에 사람들을 신실하게 잘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세 번째는 선한 것을 본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11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11절의 말씀 시작

 

아멘 자 사랑하는 자여 뭘 본받지 말고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뭘 본받으라.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어디에 속하고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뭐하지 못하느니라 배우지 못하느니라.

 

우리 부모님들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본받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받게 해라. 특히 가정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입술이 아니라 부모의 등입니다.

 

부모의 뭐라고요?

 

등이 뒷모습을 보면 앞에는 그럴싸하게 해놓고 돌아서서는 막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멋대로 사는 자녀는 부모의 설명을 듣고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본받습니다.

 

오늘 보니까 본문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디오드르베라는 사람이 있고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디오드레베라는 악한 자의 본보기가 됩니다. 9절 10절 말씀을 한번 읽겠어요. 9절 10절 시작

 

내가 두 어 자를 교회에서 쓰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한 디오데레베가 우리를 맞아 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 드리고자 하는 것을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도다.

 

아멘 디오데르베 이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대기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대기를 좋아한다 자기가 대접받고 싶습니다. 자기가 대접받고 싶고 자기가 모든 결정권을 쥐어야 작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도들의 권위도 무시하고 형제들을 맞이하지도 않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 사람입니다.

 

만약 부모가 가정에서 항상 내가 체도다 최고다. 내 말만 들으라 그렇게 권위를 내세우고 남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들도 은연중에 부모의 그 교만을 본받게 됩니다.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공동체를 때리는 가장 무서운 쪽이 뭔지 아십니까?

 

어뜸이 되고자 하는 자입니다. 어뜸이 되고 내가 최고다. 내가 제일 잘 났다. 이런 자가 공동체의 가장 큰 적이 됩니다.

 

반면에 12절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는 어떤 사람일까요?

 

12절에 보면은 말씀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물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뭘 받았다고요?

 

증거를 받았어 우리도 증언하는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안다. 즉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은 사람, 모든 사람이 그를 인정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 진리 안에 서 있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데메트리오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선을 행한 자입니다. 그는 대접하는 사람이 되었고, 형제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통장에 잔고를 물려주시렵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땅 문서를 물려주시겠습니까?

좋은 아파트를 물려주시기를 원하십니까?

 

가장 위대한 유산은 부모의 선한 부모의 선한 행동입니다. 할렐루야 부모의 선한 행동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 그저께 제가 존경하는 장용도 목사님이 93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돌아가기 전에 한 두 달 전에 우리 부목사님들과 같이 옛날에 부목 섬겼던 부목사님들과 함께 그분을 찾아뵈었습니다.

 

사진 한번 띄워주시겠습니까?

 

그분을 만나면서 저에게 두 가지 요언을 해주셨어요. 그 요언의 첫 번째가 호흡이 가빠지면서 하는 말이 호흡 호흡을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순간에 호흡이 힘들다. 인생은 호흡을 하기 힘들 때가 온다. 그러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시라. 그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또 한 가지는 겸손해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시지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쓰시지 않는다. 그분의 모습이 겸손 그 자체였고 삶에 여러 가지 영향력을 미친 분이십니다. 어쨌든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저런 모습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 부모가 어려운 이웃을 보고 돕는 모습, 억울한 상황까지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모습,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그 인생의 위기 앞에서 부모가 걸어갔던 선한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악한 것은 전염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하지만 선한 영향력은 생명력이 강합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들이 먼저 낮아지시고 먼저 섬기는 모습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우리가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분명히 영적 순서가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마스크를 자식에게 씌워주지 보다는 니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한다. 니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한다고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 정말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교만한 디오데레베의 길이 아니라 겸손한 데메드리오의 길을 갈 수 있는 선한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내 영혼이 잘 되기를 세워지는 그 영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그를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여러분 모두 다 선한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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