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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구미목장교회 2026.06.07. 주일오전예배 설교 전문: 왜 믿어야 할까요(요11:25-26)

작성자박성병|작성시간26.06.08|조회수47 목록 댓글 0

오늘 부모님 이렇게 1주기 추도식을 맞아서 우리 교회 방문하신 성도도 있고 또 저희 아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카작하고 베트남 친구들인데 오늘 함께 와서 예배도 하고 보니까 형제 지간에도 이렇게 모시고 오시고 가족들도 모시고 오시고 많은 성도들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인사할 때 이렇게 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알아채셨죠? 혼자 이렇게 하지 말고 옆 사람 보고 시작.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새 가족들이 감동이 없네요. 제가 새 가족 얼굴을 봤는데 감동이 없어요. 그분이 감동받을 때까지 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더 환하게 야 교회 다녀 이런 느낌으로 하는 거예요. 아셨죠? 교회 다녀 교회 좋아 이런 느낌으로 시작.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가족끼리 사랑하는 게 쉽지 않죠.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요? 그리고 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할까요?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질문 같지만 생각보다 이게 잘 정리돼 있지 않고 경험이 없으면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하는 게 되게 어려워요. 오늘 어떻든 새 가족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초청한 것은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거잖아요.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면 근데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를 교회 다니는 성도들도 잘 모를 수 있고 오늘 초청받아 오신 분들도 잘 모를 수 있어요. 이게 이유가 참 많은데 오늘은 두 가지만 제가 나누고 또 다른 기회가 있으면 좀 더 상세하게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왜 믿으라고 할까라는 물음에 좀 포커스를 맞춰서 준비해 봤어요.

 

첫 번째로는 예수님에게 참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요즘 말로 하면 예수님에게 힐링과 웰빙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거예요.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한 네 구정 정도 저기가 읽을 텐데 중간중간 처음 오신 분들도 크게 좀 같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작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에게 평안과 심과 안식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 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왜 예수를 믿으라고 하냐 하면 이 평안을 예수 믿는 영혼들에게 선물하려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생에 참 평안을 얻는 길이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 쉬게 하리라라는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쉬게 하리라는 이 단어는 어떤 의미가 있냐 하면 충전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에게 세상을 이길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잘 믿으면 예수님을 온전히 믿으면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을 이길 에너지가 충전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은 충전하려고 심을 누려요. 그런데 세상의 심에는 소비가 있더라고요. 쉰다고 쉰다고 안 피곤한 게 아니고 오히려 쉰다고 쉬다가 더 피곤함을 느껴요.

 

그런데 마태복음 11장 말씀은 반대로 예수님에게는 쉬는 심이 있는데 이 심은 충전하는 힘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고 다시 인생을 헤쳐갈 용기를 얻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예수님에게는 우리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참 취미 예수님께 있을까요?

 

예수님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습니다. 근데 결코 세상에는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해요.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의 삶을 흔드는 근심을 잠재우는 평안이 예수님께 있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오늘 이 읽은 말씀의 요지는 내 삶을 흔드는 근심을 잠재우는 평안이 예수님께 있다. 내 삶을 요동치게 하는 두려움을 잠재우는 힘이 예수님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경험하게 되면 근심도 두려움도 이기게 된다. 이게 없다는 게 아니라 이긴다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뭐가 자꾸 없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을 믿으면 근심도 없어야 되고, 병도 없어야 되고, 두려움도 없어야 되고 그게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으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육체를 입고 있는 인간은 어떻든 두려움과 근심이나 병과 함께 이것을 짊어지고 살고 되어 있어요.

 

근데 예수를 믿으면 이것을 이길 힘을 얻게 된다는 거예요. 근심이라는 단어를 좀 살펴봐야 되는데, 이 근심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자극되지 말고 선동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세상은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를 선동하는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에는 이 선동이 없다는 거죠.

 

세상은 우리를 선동해요. 세상은 우리를 자극해요.

 

근데 예수님에게는 선동하고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하는 참 평안이 예수님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께 얻을 수 있는 평안과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평안은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평화는 에이레이는 단어인데, 구약에는 이걸 살 놈이라 그래요. 살롬을 정의할 때 어떻게 정의하냐면 전쟁이 없는 상태, 충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참 평안을 얻어서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게 되는데,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 있는 무질서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게 된다. 그래서 충돌이나 마찰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없어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왜 굳이 평안을 예수님께 얻어야 될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이겼기 때문에 여러분 이기지 않으면 얻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평안이라는 거죠.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절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고통을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이것을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아멘,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 평안을 누리게 하실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긴 자만이 평안을 줄 수 있는 거예요. 근데 세상에 다른 것들은 이기지 못했어요. 죽음도 이기지 못했고 두려움도 이기지 못했어요. 그래서 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실 수 없는 거예요. 근데 예수님은 이기셨기 때문에 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자나 패배자에게는 평안이 없어요. 우리가 뭔가에서 지고 또 패배하잖아요. 근데 평안을 누리기가 어려워요.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절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참 평안과 안식과 심과 행복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죄를 이기셨기 때문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얻는 평안인 거죠. 그러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얻는 평안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어야 얻을 수 있는 평안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불안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저도 목회를 하지만 제가 정말 잠을 잘 자는 사람이에요. 저는 우리 아이들 키울 때 아이들이 울어도 잠을 자고 저는 진짜 옆에 바로 집 앞이 제가 군인이었거든요. 군목이었는데 탱크가 포가 지나다녀도 저는 잠 잤어요. 잠을 정말 잘 자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요즘 요즘 가끔 가끔 잠을 못 자요.

 

여러분 목사에게도 두려움이나 근심이나 걱정과 염려가 있어요. 근데 왜 예수님을 붙잡냐 하면 예수님은 이 두려워하고 불안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부여잡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안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도 불안 가운데 살아가요. 그래서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삶의 안정 장치를 수없이 마련해요. 저축을 하고 집을 사고 좋은 차를 구입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또 안전한 결혼을 하려고 하고 인맥을 쌓고 운동을 하고 약을 먹어요. 지금 불고 있는 주식 열풍도 따지고 보면 안전에 대한 갈망인 거죠. 나는 평안하고 싶다 나는 안전하고 싶다라는 갈망이 이렇게 열풍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럼 과연 이게 효과적일까요? 우리가 안전하게 위해서 취하는 이 많은 행동들이 과연 효과적으로 여러분과 저를 안전하게 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는 게 우울증이 오고 각종 공황을 경험하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이 주식을 하면서 불안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식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에 대한 고민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평안해지려고 뭔가를 하는데 거기에 집착하고 집착하면 불안은 더 커지고 공황도 오고 심리적인 문제도 생겨나게 돼요.

 

왜 그럴까요?

 

정말 평안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긴 자에게만 승리한 자에게만 평안이 있는데 죽음을 이기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인생이 가진 사망과 절망을 이 분도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갈등과 다툼과 불안을 끝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모든 것들을 이기셨기 때문인 거예요.

 

여러분 피조물은 세상을 못 이겨요. 여러분 이길 수 있던가요?

 

못 이기죠 저도 못 이겨요. 저도 제 앞에 있는 인생의 문제들을 못 이기고 세상을 못 이겨서 분노하기도 하고요.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큰 어떻든 힘든 내적인 갈등에 빠지기도 해요. 왜 이길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저는 이기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제가 여러분보다 좀 더 열심히 기도를 하고 또 신앙생활을 해서 말씀을 잘 준비해 전할 수 있기도 하고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늘 기도하니까 그 기도가 여러분을 평안케 하기도 하고 안전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모든 것도 제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드리는 거죠.

 

왜요?

 

예수님은 이기신 분이기 때문이고 저는 이기지 못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만들어진 존재가 새가 세상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세상은 창조주만 이기는 거예요. 피조물은 못 이겨요. 세상 피조물인 인간이 이길 수 있는 게 뭐가 있던가요?

 

이길 수가 없어요.

 

타이타이니호가 침몰할 때 자신의 7인 밴드와 함께 끝까지 침착하게 찬송가를 연주하고 죽었던 사람이 웰리스 히틀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 사람의 바이올린이 발견이 되어서 잘 수리해서 경매에 붙여졌는데 15억 원에 팔렸다는 거예요.

 

여러분 타이탄이라는 영화를 봤죠? 보셨기 때문에 난리인 거잖아요. 아우성 치고 막 소리를 지르고 배가 점점 가라앉으니까 물은 차오르고 그런데 이 7명의 연주자들은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바이올린을 키면서 서서히 이렇게 물에 잠겨 죽게 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이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찬인 거죠. 그러니까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상 잠깐 보고 또 설교 이어가겠습니다.

 

죽음의 소리도 차오르는 물도 이들의 평안을 깰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가진 평안은 예수님이 주신 평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짜 누려야 해 될 평안이 이런 거예요. 좀 더 잘 많이 가져서 가지게 되는 평안이 아니고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 가지게 된 평안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이 평안을 교회와 성도가 누려야 합니다.

 

근데 이 평안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평안인 거예요. 이 만남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로 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냐 하면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기 때문인 거예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어야만 천국 가기 때문이에요.

 

또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것이 듣기는 어렵지만 실제로는 다 같은 말이에요. 우리를 제외해서 우리가 겪는 온갖 절망에서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셔서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 부분 설교하기가 가장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되게 옹졸해 보이잖아요. 예수님에게만 구원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옹절해 보이고 사람들이 그런 목회자들에 대해서 되게 옹졸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근데 최근에 이 고민을 완전히 해결한 사건이 있었어요.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저는 요즘 친구가 생겼습니다. 이 친구의 직업은 스님이에요. 스님 물론 이렇게 많이 배우고 학식이 있는 고승은 아니지만 교회 용어로 옮기면 주일 학교를 맡고 있는 전도사님 같은 위치에 있는 우리 유해성 전도사님 같은 위치에 있는 스님이에요. 이분은 정말 오래전에 불교에 귀의를 했어요. 가끔 제 목양실에 오셔서 한두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하고 갑니다.

 

이분이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데 되게 다양한 종교를 거쳤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종교를 다 거쳤어요. 근데 이런 스님이 저한테 늘 하는 말이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기적이에요 제가 옹졸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저는 스님이 한 말을 그냥 전달한 거예요. 제가 옹졸해서 한 게 아니라 저는 그냥 스님과 대화 중에 스님이 한 말을 여러분에게 전달한 거예요.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저는 이분을 만난 이후에 마음이 너무 편해졌어요. 구체적으로 신의 이름을 대면 부처 알라 마리아 힌두교의 신인 브라마 비슈누 시바 여기에는 구원이 없다고 승려가 자기의 입을 통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요즘은 강요하지 않는 종교를 좋아해요. 그래서 종교들 중에 강요하는 종교는 싫어하고 강요하지 않는 종교가 요즘 조금 부흥하고 있다는 그런 보고도 없지 않아 있어요. 그리고 방송도 그렇게 강요하지 않는 종교를 자꾸 이렇게 띄워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왜 강요하지 않을까요? 왜 강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교회는 왜 강요할까요? 왜 강조할까요?

 

구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환상의 종교는 아닙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이게 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생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교회가 완벽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완벽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게 아니에요. 복음을 전해야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내 행위의 완전함을 근거로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에요.

 

오늘 아마 성도님이 초청한 우리 사모님이 초청하신 분들 같은데 오시면서 제가 이렇게 교회 주변을 청소할 때 이렇게 뵀던 분들이거든요.

 

목사님 만나서 반가워요. 이렇게 환한 얼굴 보니까 더 좋아요.

 

막 인사하는 거예요. 물론 저나 성도들에게 선행이 교회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좋은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을 예수 믿게 하는 거죠. 예수를 믿도록 예수님을 그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의 비극이에요. 지금 유럽이 이 비극 가운데 빠졌어요.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박해하거든요. 무슬림을 전해도 박해하지 않고요. 무속을 홍보해도 박해하지, 오직 복음만 전하면 박해를 해요.

 

여러분 어디에 구원이 있을까요? 이 사실만 봐도 진짜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도 공의와 정의는 늘 외면당하지만 진리도 늘 외면당해요. 오래 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은 한양대 의과대학 교수가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조사해 봤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평안한데 어떤 사람은 이지러지고 막 공포스러운 얼굴로 죽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사망자의 학력, 재산, 부부 간의 행복 이런 것 상관관계를 다 조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얻은 답이 뭐냐 하면 예수를 믿는 믿음이었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죽을 때 얼굴이 편안했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5장 24절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내가 진실로 진실로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소유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저는 장례 전문가잖아요. 왜냐하면 어떻든 성도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저한테 다 장래를 맡겨요. 그리고 제가 좀 빠릿빠릿하고 열심히잖아요. 그건 인정하시죠 그래서 여러분의 가족들보다 병원에 더 먼저 도착해 있기도 하고 여러분의 가정이 병원에 가셔서 막 힘든 과정을 겪는 걸 저는 여러분 옆에서 같이 보고 기도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가족들이 어쨌든 하나님께 갔을 때 얼굴을 가장 먼저 본 사람 중에 하나일 거예요.

 

아마 여러분의 자녀들보다 더 빨리 봤을 가능성도 훨씬 더 많아요. 제가 그러면서 경험한 것이 이 교수의 연구 결과와 똑같은 거예요. 참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도 평안이 있다.

 

여러분 임사 체험이라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사람도 서울대 교수인데 이렇게 제가 보기에는 불신자예요. 불신자인데 이 사람의 요지는 사후 세계가 있다. 이게 이 사람의 요지예요. 그걸 말하려는 아니라 그걸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 중에 한결같이 기독교인들만 천국과 지옥을 보인다. 100%는 아니지만 주로 기독교인들에게만 천국과 지옥이 보인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천국과 지옥이 보이지 않고 다른 게 보일까요?

 

그러니까 좀 다르긴 하지만 거의 내용들은 다 흡사한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거기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이자 또 가지 말아야 할 곳인 거죠. 천국은 가야 하는 곳이고 지옥은 가지 말아야 할 곳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마지막 때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고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를 통해서 우리 목장 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족한 저를 보지 마시고 여러분을 인도한 여러분의 가정이나 친구를 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인데 우리가 이 말씀을 좀 힘 있게 좀 읽었으면 좋겠어요. 같이 읽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늘 교회에 초청받아 오신 분들만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기존 성도들은 잊지 마시고 초청 받으시거나 어쨌든 처음 오신 분들만 한번 여러분 조금 불편한 성경 구절일 수 있죠.

그래도 한번 이렇게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번에는 읽을 때 우리 목장 교회 그저 신앙이 있는 분들만 읽어보세요. 읽을 때 이런 마음으로 옆에 있는 분한테 말하듯이 예수님이 길이야 예수님의 진리야 예수님이 생명이야 말하듯이 좀 큰 소리로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예수 믿고 구원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돌아가시면 아마 초청한 분들이나 이런 분들이 목장 교회 다닐 거예요라고 물어보는 시간이 있을 거예요. 교육자가 전화할 수도 있고 여러분이 여러분을 초대한 분이 그럴 수도 있어요.

 

여러분 이번에만 네 하고 한번 답을 해보세요. 답을 해봅니다. 시작

 

 

좀 더 큰 소리를 기대했는데 되려 오신 분은 확실히 내 일을 시키겠다는 각오로 내야 하시고 달려오신 분들은 어쨌든 네 하고 한번 해보겠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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