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배 학교 5주 차 시간입니다.
예. 제 핸드폰이 빨리 안 떠서 잠깐 머뭇거렸습니다. 오늘 5주차 네 번째 강의 재물에 대한 말씀입니다. 밑에 나와 있는 그 설명 문구를 제가 잠깐 읽어드릴 텐데 되게 이렇게 인사이트가 있는 문장이에요. 그리고 조금 잘 마음에 새기면서 좀 제가 읽은 걸 좀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예배자의 눈과 찬양의 입술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가 있다면 비로소 예배자는 하나님 앞에 온전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참된 예배자에게는 향기 나는 제물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눈과 입과 귀를 가지고 이제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이것에 준비된 사람들이 이제 그다음에 나가야 할 방향이 제물인 거예요. 제물 그래서 제물은 후각 우리의 찬양이 제사가 하나님께 흠향된다. 그러죠. 그러니까 향기가 올려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고기를 드시는 게 아니라 구약의 제사로 봤을 때 향기를 흠향하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한 네 번째 조건은 향기 나는 제물이 있어야 된다.
첫 번째로 구약의 예배에서 제사를 통해 재물을 드릴 때에 규칙이 있어요. 첫 번째로는 희생 제물을 드린다. 그러니까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감에 있어서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제물의 손을 얹어 안수하고 그러니까 죄를 전가하는 거죠. 전가하고 우리가 제물을 드린다. 세 번째로는 반드시 제물을 죽여야 돼요. 그러니까 산 채로 들일 수는 없어요. 죽여야 하고 네 번째로는 이 제물의 피 피를 제단에 뿌립니다. 그 마지막 번째 다섯 번째로는 제물을 태운다 태워서 연기를 하나님께 올리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흠향하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할 때는 그러니까 재물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게 아니라 양이나 염소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요양과 염소를 태운 향기를 받으시는 거죠. 그래서 제물은 그러니까 후각 예물은 후각과 연관되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제사의 의미가 있어요. 제사가 되게 종류가 많은데 오늘은 세 가지만 다루고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화제 요세 그러니까 제사를 드리는 방식이 있고 등등 한 세 가지 정도의 분류가 있는데 그 분류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한번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제물을 다 태워야 되는데 번제는 상번제라고 해서요. 그러니까 고정적으로 아침과 저녁으로 해질녘이죠. 계속해서 번제를 매일 드렸어야 돼요. 그러니까 제사가 끊어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이걸 상 번제 그래서 계속해서 번제를 드린다고 해서 상번제라고 이렇게 합니다.
두 번째 제사는 화목제예요. 화목제 번제를 드리고 난 이후에 드리는 제사가 한복 증거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이후에 그다음에 사람과 화목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목 죄인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이 함목제의 특징은 제사를 드리고 난 음식을 서로 이렇게 나누어 먹을 수 있었어요. 나누어 그래서 하나님과 백성이 화해를 하고 또 하나 백성과 백성과 화해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예배 안에는 이렇게 구약의 제사를 신약의 예배로 연결을 시킨다면 예배 안에는 하나님과의 화목도 있어야 되고 사람과의 화목도 같이 있어야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즐겁게 예배하지만 성도들과의 거룩한 교제도 예배 안에 있어야 돼요. 우리가 쉽게 알아들을 말로 하면 예배 안에 성도 간의 행복이 함께해야 된다 그런 의미입니다.
세 번째 제사자는 숙제제인데 피를 제단에 뿌리는 걸 말해요. 그래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다음에 이제 이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것이 이 속죄제입니다. 속죄제는 언제 드리냐 하면 계명을 어겼을 때 드린 거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 드리는 게 속죄제인 거예요. 속죄제
그러니까 제사는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이제 하나님 앞에 구약의 백성들이 드렸던 것이 제사입니다. 이게 구약의 제사고 이제 신약에서 신약은 그러면 제물을 드리느냐 지금은 우리가 이제 구약 시대는 아니잖아요.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으니까 이제 구약 시대가 아니라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데 그럼 신약에서는 제물을 드리느냐 제물을 드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동물 제사를 더 이상은 드리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 에베소서 5장 2절을 읽으면 도움이 되는데 히브리서 10장 10절을 먼저 같이 읽습니다. 보이시나요? 읽습니다. 시작
이 뜻을 쫓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들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에베소서 5장 2절입니다. 시작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러니까 하나 예수님이 스스로 제물이 되신 거죠. 그래서 구약의 제사를 완성시켰어요.
구약의 제사가 왜 반복됐냐 하면 제물이 불완전했기 때문인 거죠. 양이 불완전했고 염소나 소가 불완전했어요. 근데 예수님께서 완전한 제물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완전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제사를 드릴 필요는 없었어요. 그래서 신약에서는 양과 소 같은 예물을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이 제물 제사를 드릴 때마다 많은 이렇게 물건들이 받쳐지잖아요. 이게 어떻게 쓰였냐 하면 첫 번째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썼어요. 그래서 동물의 첫 태생은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가장 귀한 것도 이렇게 하나님께 드렸어야 됐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거룩한 낭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소비하고 낭비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낭비다 이렇게 보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신약 시대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또 예물을 드리잖아요. 하나님께 드린 예분이 인생에 있어서는 다시 보면 가장 거룩한 낭비인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낭비라고 생각하고 필요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성도들도 온전히 잘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성경의 전반적인 사상들을 다 이렇게 모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가장 거룩한 낭비다.
두 번째 구약에서 제물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고요. 세 번째로는 레위인과 제사장 그러니까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 구약의 제물을 썼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재물을 잘 드렸느냐 제사를 잘 드렸느냐 5명 정도를 이제 거론을 해요.
첫 번째로는 아벨이라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아벨의 재산은 이렇게 받으셨잖아요. 근데 받으신 이유가 양의 첫 새끼와 그의 기름을 들였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시고라고 돼 있어요. 아벨 그런 마음의 태도를 가진 아벨도 받으시고 아벨의 제물도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에서 향기로운 제물을 들였던 사람은 둘의 돈을 들인 과부죠. 과부 성경에 보면 이 과부가 분명히 많이 들렸다고 되어 있고요. 또 다른 설명에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고 돼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앞에서 말한 것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대해서 아까움이 있어요. 아까움 여러분 이런 데 아멘 하면 정말 여러분 멋있는 사람인데 아무도 아멘을 안 하시네요. 우리 하나님이 그걸 드린 거에 대해서 아까워해요.
맞죠?
저보다 믿음이 더 좋으신가 저 아까울 때 있던데 근데 이 여인은 어떻든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난한 중에도 많이 드렸고 또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린 대표적인 사람으로 과부를 들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어린 아이 실은 이 아이는 요한복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복음서에 다 나와요. 그래서 이 아이의 헌신으로 인해서 5천 명이 이제 배를 부르게 됐던 거죠.
그래서 보면 잘 보세요. 세 번째 같은 경우는 우리가 이렇게 공식적인 어떤 의식을 통해서 이 아이가 드린 건 아니잖아요. 현장의 필요에 따라서 바친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합니다.
미국에 레이크우드 처치라는 교회가 있어요. 이 교회 성도 이야기인데 이 성도가 이제 내 쌍둥이를 출산을 한 거예요. 근데 이제 보통 쌍둥이는 조산을 많이 하죠. 조사를 해서 어쩔 수 없이 인큐베이터에 이제 아이를 넣어놨어야 됐어요. 그러니까 인큐베이터 비용이 하루에만 만 불인 거예요. 만 불 그러니까 3개월 있었으니까 3명을 합치니까 거의 4명이니까 15억 정도의 돈이었어요.
근데 병원에서 이 부부를 부르더니 다 탕감을 해준 거예요. 그런데 왜 이런 은혜가 이 여인에게 이 가정에게 임했느냐 이렇게 역추적해 갔더니 목회자 입장인 거죠. 이 부부가 입원 중에도 여러분 얼마나 어려워요? 내 쌍둥이를 케어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 아이들이 퇴근 퇴원했을 때 치러야 될 비용도 엄청나게 많잖아요.
그런 중에도 매주일마다 하나님께 감사 헌금을 드렸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받으시고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셨어요.
여러분 이분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15억은 드리지는 않았겠죠. 어쨌든 하나님이 그들의 재물을 받으시고 기쁘게 여기셔서 병원비를 다 탕감해 줬다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네 번째 향기로운 제물을 바친 사람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에요. 이 성경에 옥합을 깨뜨린 사건이 2개가 나와요. 어떤 사람은 하나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두 개라고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은 복음서 전반부에 나오고 어떤 내용은 복음서에 이렇게 후반부에 나와요. 그래서 다르다 같다 이렇게 조금 논쟁이 있는 사건인데 어쨌든 사건 자체는 맞아요.
네 이 여인이 깨뜨려서 예수님 위에 손과 발을 이렇게 씻었어요. 이 비용이 300베라니예요.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에 이제 월급인 거죠. 그래서 300 더 나으려면 이제 1년 치 연봉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 옥합은 4천만 원에서 한 6천만 원 되는 어마어한 규모인 거죠.
여러분 누군가의 손과 발을 씻는데 6천만 원을 드린다는 것이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문장으로 표현하면 거룩한 낭비인 거죠. 거룩한 낭비 그래서 어떻든 이 여인의 헌신을 예수님이 기뻐 받으셨어요.
이 여인이 예수님이 머물렀던 집이 바리새인인데 원래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은 손님이 오면 손과 발을 식혀줘야 돼요. 왜냐하면 거기는 먼지가 많은 도시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집에 오면 그 집의 가장 이제 낮은 하인 따지면 등급이 낮은 하인이 그 손과 발을 씻어줬어야 됐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들어왔는데도 아무래도 그렇게 하지 않은 거예요.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원칙적으로는 바리새인이 하는 게 맞겠죠. 바리새인이 초청했으니까. 근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여인은 여인은 300데나리온데오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손과 발을 씻겨줬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향기로운 제물을 드렸던 네 번째 인물로 이 여인을 들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는 앞에도 제가 말씀드렸죠. 가장 향기로운 재물을 드린 분은 예수님인 거죠. 그러니까 자기 몸을 스스로 재물이 되어서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셨게 됩니다.
에베소서 5장 앞에 같이 읽었는데 그래도 한번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아멘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재물은 받지 않으실까?
아마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재물들이 다 하나님 예물들이 다 받으신다고 생각하셔서 여기에 좀 관심이 없을 수 있는데 그래도 조금은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성경에서 향기롭지 않은 향기롭게 받지 못하는 제물 첫 번째 인물은 가인의 제물입니다. 아벨과 가인이죠. 형제 형제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그가 믿음이 없다고 표현해요.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를 드렸고 그러니까 가인은 반대로 믿음이 없었다는 거죠.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믿음 없이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는 거죠. 제물도 예물도 믿음 없이 드리는 건 하나님이 기뻐받지 않으시고, 예배도 믿음 없이 드리는 건 하나님이 기뻐받지 않으신다 그런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향기롭게 받지 못하는 제물은 사울의 제물이에요. 사울이 번제와 화목제를 본인이 드렸어요. 그러니까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그러니까 제사장이 없을 때 그러니까 보통 왕과 제사장직과 이런 것들을 겸했을 때는 왕이 번제를 드리기도 했지만 이제 정확하게 이제 구분이 된 거잖아요. 구분이 되었을 경우에는 이제 흔하지 않은 일인데, 이 사울이 번제와 화목죄를 보는 이들이었어요.
여러분 그런데 사울이 왜 왜 이렇게 순종을 하지 못했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울은 되게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출중한 사람이었어요. 그냥 단순히 키만 컸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많은 면에서 실제로 그는 출중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 없던 것이 순종이었던 거죠. 능력은 많지만 순종은 적은 여러분 교회 안에는 이런 분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능력은 많아요. 그런데 순종을 하지 못해요. 이렇게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재물을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5장 2절 하반절에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순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이 향기롭게 받지 못한 제물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신이에요. 이런 거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한 거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해서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기뻐받지 않으시고 좀 무서운 이야기지만 두 명을 다 죽이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향기로운 제사는 어떤 것인가?
첫 번째로는 믿음으로 드리는 거죠.
히브리서 11장 4절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므로 의롭다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그 믿음 없이 드리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믿음으로 드리는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어요.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께 받으시는 예배는 뭐냐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인 거예요. 우리는 규모가 있어야 된다. 예물을 많이 들어 있는 여기에 포커스가 있을 수 있는데 아니고 내가 믿음으로 예배했느냐가 하나님 우리 예배를 받으시냐 받지 않으시냐는 것을 결정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는 정결한 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여기에 보면 성경 구절이 한 3개 정도 나오는데 3개의 구절을 읽는 게 되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첫 번째 창세기 8장 20절인데 우리 큰 소리로 좀 읽을까요? 시작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다을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다해 드렸더니
노아가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는데 거기에 사용된 모든 제물이 정결했다는 거예요. 깨끗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제물을 제사를 받으셨다.
그다음에 창세기 8장 21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과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노아 당시에 노아 당시에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러니까 그 향기를 받으신 것은 그 제물이 정결했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정결한 제물을 받으신다 그런 의미입니다.
세 번째 말라기 1장 11절인데 거기부터 같이 한번 읽어볼게요. 시작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뜨는 곳에서부터 헤어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며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니라.
그러니까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 정결하게 예배하는 자들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인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러니까 정결한 제물을 받으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그러니까 내 예배하는 나 자신도 정결해야 되고 그런데 우리가 깨끗하지 않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배하기 전에 이제 회개하고 나오는 거죠. 회개하고 근데 또 문제가 회개가 너무 일상화될 수는 있어요.
여러분 싸우지 않는 예배는 예배라고 하기가 좀 어려울 수 있어요. 내가 죄를 짓고 예배 전에 회개해야 예배를 받으시니까 내가 회개하고 그다음 날 와서 또 똑같은 죄를 짓고 또 반복하고 이게 아마 1년 2년 10년 반복된다는 건 그걸 깨끗한 예배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떻든 내가 잘못을 회개하고 예배하는 것 이걸 깨끗함으로 예배하는 길이라는 것 우리가 정결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예배해야 된다. 한번 우리가 좀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예배자로서의 정말 정결한 삶으로 예배하는 것인가 내가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인가 내가 드리는 예물도 정결한가를 좀 잘 살펴봐야 돼.
물론 이럴 수 있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이제 직업상 어쩔 수 없이 그런 직업이 있을 수 있잖아요. 왜 왜 하나님이 저런 사람들의 재물을 받으실까 이런 제 업에 종사하는 분들 있잖아요. 근데 제가 정확한 자료는 아닐 수 있는데 마라도에 있는 교회가 있어요. 교회가 여기가 되게 작아요. 이 교회가 어떻게 지어지게 됐냐 하면 거기에 있는 목사님이 전도사님이 정확하지 않는데 이제 이 마로도 교회가 없으니까 교회를 세우고 싶었던 거예요.
근데 기도하고 해도 이게 어렵잖아요. 사람 몇 살지 않는 곳에서 또 선거도 몇 없는데 이 교회를 짓는 건 섬에서 교회 짓는 건 비용이 엄청나게 많아요. 근데 이분이 이제 계속 기도 중에 어느 날 도시에서 살던 아가씨들이 놀러를 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옛날 모텔 어렸을 때 교회 다녔던 생각이 나서 이제 교회를 갔어요. 가서 이제 예배를 드리고 이제 그런 상황을 다 이렇게 알게 된 거죠. 다시 이렇게 이제 도시로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이 아가씨들이 하던 일들이 어떤 술집에서 일을 하는 거죠. 술도 팔고 나머지도 이렇게 하는 그런 일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돌아와서 계속 그렇게 이제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하고 이거를 자기들이 가져 있는 이제 그렇게 술을 팔고 해서 번 돈인 거죠. 그래서 드렸어요. 그렇게 해서 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우리가 다 마냥 막 정결한 문제를 어떤 직업에 하고 겉으로 보이는 정결함은 아닌 것 같아요. 하나님이 아마 그 마음의 정결함을 보시고 받으셔서 그 교회를 또 세우지 않으셨나 그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는 의 순종으로 드린 재물을 받으시고 네 번째로는 용서의 제물 제사를 받으신다는 거죠. 네 번째가 좀 중요한데 마태복음 5장 23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예물을 재단에 드리다가 생각나거든.
여기에 보면 24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어떤 의미인가요?
그러니까 용서하고 예배하라는 거죠. 용서하고 예물을 드리고 용서하고 예배를 해야 해라. 하나님이 받으신다.
이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까요?
한 번쯤은 우리가 고민하면서 예배해야 될 거야. 하나님이 받으실까?
내가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물일까?
라는 것들을 좀 고민하면서 드린다면 하나님이 오신 우리의 예배도 예물도 받으셔서 잘 멋진 일들을 이루시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걸 뭘로 확인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무엇으로
저는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그냥 생각으로 하면 하나님이 나의 예물을 받으셨다는 걸 내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예물을 받으신다 어떻게 확인했을까 그러니까 제 개인적인 관점은 하나님이 그 예물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드린 그 예물로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보면 하나님이 받으셨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되게 무서운 말이긴 한데 저는 이제 그 생각이 종종 들어요.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물을 내가 드렸다면 하나님이 이 예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멋지게 일하실 거다 이런 이런 마음. 그래서 이 예물이 잘 쓰여진다는 건 되게 의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무리를 받으셨다는 의미니까
여러분과 제가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께 드린 것들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것을 이게 쓰여진 곳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어요.
예배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예배도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받으셨다는 것을 어떻게 느낄까 어떻게 느낄까? 하나님이 예배를 과연 받으셨을까? 그냥 내가 막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이 과연 받으셨을까?
저는 이 생각이 들어요. 똑같은 말인데 하나님이 예배 이후에 나를 어떻게 아시는지를 보면 나의 예배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배 이후에 여러분의 자세가 어떤지를 보면 예배를 드린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서 화해를 하고 예배드린 여러분이 직장으로 가서 정말 열심히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예배드린 여러분들이 정말 충성스러우려고 애쓰고 한다면 아마 그날 드렸던 그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다른 의미가 많이 있는데 그냥 제가 긴 세월 목회하면서 가졌던 그냥 생각이에요.
정말 받으셨다면 어떨까?
하나님이 저를 정말 받으셨다면 저를 잘 사용하실 거라 생각해요. 하나님이 여러분의 예배를 잘 받으셨다. 그럼 우리 교회를 잘 사용하시고 여러분의 삶을 잘 사용하실 거예요. 하나님이 안 받으셨다. 별로 받기를 싫어한다 이랬으면 우리를 쓰지 않으시겠죠? 여러분 쓰임 받는 건 엄청난 축복이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이런 데 아멘 해 주시면 제가 일주일 막 날아다니며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저 혼자 모든 음식을 다 먹었다고 교인들은 빼빼 마르는데 저만 이렇게 살이 많이 졌어요. 저는 웬만큼 아멘에서 못 날아갑니다. 워낙 살이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받으셨다는 증거가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제물을 받으셨다는 증거가 그 제물이 사용되는 곳에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형제 교회가 있어요. 잘 모르시죠?
보통 우리 교인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제가 오랫동안 해온 일인데도 잘 모르고 아무튼 제가 홍보를 안 한 건지 아니면 여러분이 은혜로워서 잘 잊어버리신지 아니면 저를 믿어서 뭘 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는지 모르지만 동산교회라고 옛날 우리 교회랑 이름이 같은 형제 교회가 있어요.
6월 셋째 주에 예전에 여기 와서 까지 같이 예배드렸죠. 그때 또 같이 예배드릴 거예요. 제가 왜 그런 마음을 먹었냐 하면 한번 이 교회를 축복해 주고 싶은 거예요. 일단 남편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아내 사모님이 신학을 하시고 교회를 이끌어가셔요.
이런 걸 잘 말하면 안 되는데 자녀가 너무 아파요. 우리가 만약에 제가 아들 딸이 그렇게 아프면 저도 목회 안 할걸요. 창피해서 안 하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서 안 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붙잡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어떻든 힘들게 교회를 잘 유지해 오셨는데 최근에 그 약한 교회가 힘을 합쳐서 교회 아래층을 사고 성전을 다시 꾸몄어요.
그리고 지난주에 전도 잔치를 했는데 그 목사님이 사역할 때보다 성도가 더 많이 왔어요. 남의 교회 잘 돼도 아멘 하면 좋을 텐데 여러분 그렇게 그런 분들을 축복하는데 우리 재정이 쓰이는 게 하나님 우리에게 예물을 받으셨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저는 우리 교회에 많은 예산들이 그렇게 쓰여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