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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대구신은교회 2026.06.07. 주일예배 설교 전문: 깨어 잇는 사람은 삶이 다릅니다(마25:1-13)

작성자박성병|작성시간26.06.10|조회수31 목록 댓글 0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 거룩한 주일 열하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 존귀하신 성도님들 귀한 삶과 가정 가운데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인사, 축복의 고백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왜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가에 대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다시 오신다 말씀하셨고, 또한 우리의 시선을 이 땅이 아닌 영혼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마지막 때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를 준비된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서 다시 오신다 그러면서 이 준비된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누실 때에 오늘 본문인 이 1천의 비유로 함께 설명을 드렸던 말씀이었습니다. 10명 모두 신랑을 기다렸죠. 이 10명 중에 한 사람도 신랑을 기다리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모두 등을 가지고 갔지만 차이가 있었다는 거죠. 겉으로 볼 때에는 등을 가지고 신랑을 기다리는 모습은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다섯 처녀는 지혜로운 자로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고, 다섯 처녀는 미련한 자로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무슨 기준이었습니까?

 

차이는 바로 기름 때문이었던 것이죠. 여러분 같은 시간을 살아도 준비된 사람과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결국에는 드러난다. 현재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결국에는 드러난다는 거죠.

 

여러분 학생들을 보십시오. 학생들에게는 해마다 때마다 찾아오는 시험 기간이 있습니다. 시험 기간이 딱 찾아왔을 때 미리 공부한 친구들은 그때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 미리 복습하고 정리한 친구들은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정리만 간단하게 하면 돼요. 반대로 전혀 준비 없다가 시험 때가 딱 되어서 내가 필기해 놓은 거 어디 있지? 그때 찾는 친구들은 시험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시험의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같은 시험을 보지만 시험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른 것이죠. 준비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죠. 여행을 가는데 막 급하게 준비되지 않은 채 비행기 시간도 정확하게 모르고 가지고 가야 할 여건도 가지고 가지 않고 또한 삶의 요즘 필수품이죠. 충전기도 챙기지 않고 떠난다면 그 여행은 시작부터 어렵고 힘든 여행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준비된 여행은 어떻습니까?

 

훨씬 더 여유롭게 그 과정들을 잘 밟아가면서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믿는 자들에게 너희들이 이 땅에서 착하게 살아야 된다 그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서 깨어 있어야 된다. 깨어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삶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삶이 왜 달라질 수밖에 없는가 오늘 함께 좀 나눠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요. 깨어 있는 사람은 지금을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지난주 마지막 말씀하고도 이어지는 건데 여러분 우리 5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합니다. 5절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잘새

 

여러분 이 한 구절 안에 오늘 말씀에 매우 중요한 핵심이 들어가져 있어요. 먼저 신랑이 더디 옴므로라고 돼 있죠.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기다림에 사실 익숙하지가 않아요. 그리고 기다림이 길어지면 긴장이 풀리게 된다는 것이죠.

 

사실 뭐든지 처음에는 조심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서 점점 내 삶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돼요?

 

점점 느슨해지게 돼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배가 기다려지고 기도하는 것이 즐거웠고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붙잡고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어때요? 여러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놓쳐버릴 때가 많다는 거예요. 사실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어떤 마음이냐 하면 오늘 예수님 오시겠구나 그런 마음으로 신앙의 길을 시작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듭니까?

 

오늘 하루쯤이야 이번 주는 좀 쉬어도 되겠다. 이러한 마음들이 우리 가운데 등 타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영적인 긴장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은요 반드시 오십니다. 믿으십니까?

 

문제는 안 온다고 하신 것이 아니죠. 오늘 보니까 더디 오신다고 표현을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마치 안 오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 본문 분명히 이야기하죠. 신랑은 더디 오지만 반드시 그리고 결국 왔다는 거 그러면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 구절을 통해서 더디 오신다는 이 표현을 말씀하신 이유가 뭘까 열 처녀 비유를 하면서 더디 오시는 그 신랑의 모습을 묘사해 준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한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뭘까?

 

결국 이 말씀 속에서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만약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오늘 예배드리는 데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말씀이냐 하면 내가 한 달 안에 재림을 할 것이다. 잘 들으세요. 한 달 안에 재림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 단어로 제가 뭘 안 되니까 만약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한 달 안에 내가 재림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시간대도 알려주겠다. 새벽 예배 시간에 올 것이다.

 

여러분 그렇게 들었다고 가정을 해보십시오. 그럼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 같습니까?

 

제가 감히 예상해 본 건데 내일 새벽 예배부터 분위기가 달라질 거예요. 우선 참석률이 달라질걸요. 갑자기 주가가 올라가는 것처럼 급상승할 겁니다. 전 세계 교회에 주님이 새벽 때에 내가 이번 한 달 때를 정해서 올 것이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그냥 살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 말씀을 들었는데 여러분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 만약에 지금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이 가운데 주님이 재림하신다. 그러면 여러분 이 시간에 예배가 어떻겠습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기쁨과 열정을 가지고 찬양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그러면서 예배드리지 않겠어요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태도가 바뀐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재림신앙이라는 것은 먼저는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미래의 소망도 있지만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태도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그 재림 신앙을 내가 가지고 있을 때 오늘을 소중히 생각하고 오늘 주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사는 것이죠.

 

여러분 그런데 오늘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의 표현이 있습니다.

 

다 졸며 잘새

 

다 졸며 잤다는 거예요. 여러분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안 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 깨어 있어라 이것 때문에 정확하게 읽지 않는 분들은 다섯 처녀는 안 잤나 보다 다섯 처녀는 작나 보다 이렇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어요. 정확하게 보셔야 돼요. 10 처녀가 다 졸며 잘 새 이들의 차이는 잠을 잤느냐가 아니라 기름을 준비했느냐의 문제인 것이죠.

 

여기서 기름은 무엇입니까?

 

깨어 있는 믿음, 준비된 삶,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까지 예상하고 준비한 것이죠. 미리 예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을 준비하면서 살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깨어 있다는 것은 바로 잠을 안 잔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 영적으로 길을 잃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만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휩쓸려 삽니다. 영적인 감각을 놓쳐버리는 것이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에요. 세상에 우리가 중요하게 여길 것들이 너무나 많지만 내가 하나님을 더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더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죠.

 

여러분 자동차에 브레이크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놓으면 경사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어떻게 돼요?

 

밀려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사가 별로 지지 않았으면 천천히 내려가겠지만 경사가 굉장히 급한 곳은 어떻게 돼요?

 

굉장히 빠르게 돌아왔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저희 교실이 좀 높은 곳에 있었어요. 이 계단이 굉장히 긴 계단이 있었어요. 그것을 저희를 가리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골고다 계단이다. 우리 수업 들으러 갔는데 뭔 계단이 이렇게 많은데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가는데 그 계단을 쿵쿵쿵쿵쿵쿵쿵 사이드를 장장 가지고 밀린 거예요. 내렸는데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밀린 거죠. 위에서 보는데 갑자기 애들이 홍해가 갈라지듯이 쫙 갈라지면서 그 차가 내려가는데 속도가 보통이 아니 경사가 같은 것은 좀 천천히 내려가겠지만 급할수록 빨리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여러분 절대 하나님 쪽으로 가지 않아 우리 신앙이 굉장히 좋아서 하나님 쪽으로 갈 것 같지만 가만히 있으면 세상에 기울려져 있던 우리의 삶은요. 서서히 세상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도 의지적으로 해야 되는 것이고 예배도 거룩하게 드리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고, 말씀도 어찌하든 간에 붙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모이기에도 힘써야 하는 것이죠.

 

물론 믿음이라는 것을 내가 이렇게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되는데 내 형편에서 내 위치에서는 기울어져 있는 내 인생 세상에 끌려가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밟든지 아니면 엑셀을 밟아서 점점 올라가는 신앙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멈추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여러분 삼손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씩 느슨해졌습니다. 조금씩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영적으로 잠이 들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결국 디릴라의 무릎에 누워 잠을 자다가 힘을 잃게 되었던 것이죠.

 

사실 그날 그는 갑자기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그전에 이미 영적으로 잠들었던 것이죠. 영적으로 잠들면 결국에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힘도 잃게 되고요. 예배의 감격도 잃어버리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예배의 감격이 있어서 예배드릴 때마다 감사, 찬송, 기쁨으로 할렐루야였는데, 내 신앙이 느슨해지면 예배 가운데에도 그 감격을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죠. 죄를 이길 힘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사람은 오늘을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예배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예배가 되는 것이고, 오늘 예배를 통해서 나에게 찾아오는 죄를 경계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시간을 귀하고 복되게 사용하는 것이죠. 내가 바로 주님 오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림 신앙은 오늘을 가장 깊이 있는 신앙, 의미 있는 삶으로 만들어준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셔서 저와 여러분들이 깨어 있는 자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고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 오늘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한번 따라 해볼까요?

 

주님 오늘 오셔도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거 우리가 자신 있게 날마다 외칠 수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아요?

 

그게 신앙인의 삶.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들이 내일을 기다리는 그 소망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망 때문에 오늘을 거룩하게 살고, 오늘을 충성되이 살고,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존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깨어 있는 사람은 남의 믿음으로 살지 않아요. 이게 매우 중요한데 남의 믿음 남의 믿음으로 살면 안 되죠.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8절을 한번 같이 읽어봅시다. 8절 시작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미련한 처녀들이 이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급박한 상황이 오니까 야 너희가 준비해 온 기름 좀 나눠다오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늦은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그때는 빌릴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믿음인데 이 믿음은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부모가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요. 부모의 믿음으로 내가 천국 갈 수는 없는 거죠.

그렇죠 제가 믿음이 좋다고 제 아들들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저희 부모님이 믿음이 좋다고 해서 제가 천국 갈 수 있습니까?

 

못 갑니다. 부모의 믿음은 어쩌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야. 부모의 기도는 나에게 설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러나 부모의 믿음 자체가 내 믿음이 될 수는 없다는 거예요. 아내의 믿음도 그렇고요. 남편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 목자가 있는데 목자의 믿음이 좋다고 해서 내 믿음이 좋은 게 아니죠. 목사님이 믿음이 좋다고 해서 우리가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이죠. 그 믿음이 나를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을 수는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내 부모가 아니라 나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서야 되기 때문에 내 믿음이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내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누구를 대신해 줄 수 있다 흔한 예로 이렇게 한번 좀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예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동을 하는데 여러분 운동을 대신 해 줄 수 있습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SNS를 통해서 먹방도 보고요. 이렇게 봅니다. 그런데 보는 것으로 내가 충족이 되지 않아요. 사실은 그걸 보면서 웃고 즐길 수도 있지만 내게 실제로 영향은 오지 않는 거죠.

 

헬스장에 등록했습니다. 헬스장에 등록하면 근육이 막 그냥 생깁니까?

 

그런 헬스장이 있으면 저는 갑니다. 여기 가실 분들 많을 거예요. 벨신장에 등록하면 근육이 생깁니다. 이렇게 붙여놓고 사람들 모집하면 실제 그렇게 된다면 가겠죠. 옆사람이 운동한다고 내 살이 빠집니까?

 

안 빠집니다. 직접 뛰어야 하는 거예요. 직접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죠. 꾸준히 운동할 때 내 몸이 관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도 똑같은 거예요. 교회 오래 다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믿음이 급성장하는 거 아니에요 물론 믿음은 들으면서 나는 거기 때문에 자꾸 말씀을 듣다 보면 성장하지만 내가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막 믿음이 급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옆사람이 뜨겁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내 영혼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성령의 바람이 불면 그건 은혜인 거죠. 은혜 은혜를 통해서 내가 성령의 바람을 타고 나에게도 은혜가 임할 수 있습니다마는 여러분 기준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직접 하나님 앞에 내가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기도하고 내가 직접 말씀을 붙들고 내가 직접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사울이 자신의 갑옷을 내어주었죠. 여러분 잘 생각해 보면 사울의 입장에서는 정말 가장 귀한 걸 내준 거예요. 그렇죠 야 이거를 좀 잘 갖추고 나가야 니가 살 수도 있어 그런 마음으로 주었겠죠. 그런데 여러분 다윗은 그것을 벗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의 것을 입고 싸울 수 없었기 때문이죠. 다윗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울의 갑옷이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께 쌓아왔던 하나님과 함께했던 그 믿음, 그 동행의 은혜 그것이 필요했던 것이죠. 사자를 이기게 하셨던 하나님, 곰을 이기게 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골리앗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담대하게 선포하잖아요.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깨어 있는 사람 다른 사람 신앙을 구경만 하지 않고 내가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 우리 교회 목사님 믿음이 좀 있다. 그렇게 생각 안 하실 수도 있겠지만 혹여라도 그것을 의지한다든지 우리 아내가 기도를 많이 하니까 우리 남편이 봉사를 열심히 하니까. 여러분 그것이 내 신앙에 영향은 줍니다만 나를 구원할 수는 없다.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가 예배를 사모하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말씀 앞에 설 때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는 것이죠.

 

여러분 주님 반드시 오십니다. 진짜 믿으십니까?

 

주님이 곧 오신다고 믿으면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모순적인 삶이에요. 여러분 시간 오늘 이 자리에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옆에 사람 말고 내가 나에게 찾아와 주시는 주님, 나에게 말씀하시는 주님, 나와 동행하시는 그 주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요. 깨어 있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준비하는 거예요, 마지막 순간까지 준비하는 거 매우 중요하죠.

 

우리 10절 말씀 같이 읽어봅니다. 10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여러분 이 이 구절에서 가장 긴장되는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문이 닫힌지라 닫힌지라 노아의 시대를 한번 떠올려봅시다. 노아의 시대 노아의 시대에 문이 닫혔어요. 무슨 문이 닫혔습니까?

 

방주의 문이 닫혔어요. 여러분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노아는 방주를 지었죠.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니 비도 안 오는 이 세상에 그리고 얼마나 비가 많이 온다고 그렇게 큰 방주를 그 높은 곳에 짓느냐

 

라면서 사람들은 시시낙락 웃으면서 조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때가 되자 방주의 문이 닫혔다는 거예요. 그리고 방주의 문이 닫히면 어떻게 됐습니까?

 

나머지 사람들이 아무리 두들겨도 열 수가 없게끔 나도 태워주십시오. 나도 타고 싶습니다. 나 타야만 합니다. 아무리 외쳐도 그 문은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준비는 언제 하는 거냐? 문이 닫히기 전에 지 문이 닫히고 나서 아니 나 준비됐습니다. 나 가서 기름 지금 사 왔습니다. 문이 닫히면 기름 사와도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그래서 문이 닫히기 전에 매우나 귀한 것이죠.

 

여러분 어른들이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건강할 때 운동해 줄 거 그 이야기는 뭡니까? 건강할 때 운동하는 게 지혜라는 거죠. 우리 권사님들은 또 그런 얘기하잖아요. 어른들 젊을 때 봉사해라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다. 나 지금 정말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데 이제는 정말 돈이 따라가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얼마나 그 마음에는 열정인데 몸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솔직한 고백인 것이죠. 그래서 어른들은 말하는 거예요. 말씀하는 거예요.

 

봉사할 수 있을 때 해라.

 

공부도 마찬가지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시험 끝나고 나면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것 같아. 여러분 여기 시험 보신 분들 중에 이 생각 안 해본 사람 없을 거예요. 그때 내가 하루만 좀 일찍 더 공부했으면 지금보다 10점은 더 올렸을 텐데 지나고 나서 우리는 후회를 한단 말이죠.

 

여러분 신앙도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잠들기 전에 시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예배가 점점 나에게 둔감해지고 있다. 그러면 빨리 정신을 차려야 돼요. 하나님 내 예배가 살아나야 합니다. 이러다가 예배마저 놓쳐버립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점점점점 과거보다 줄고 있다면 긴장하시고 하나님 나에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더하여 주십시오. 기도해야 된다는 것이죠. 죄에 대한 감각이 점점 무감각해진다. 그래서 성경은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점점 세상 쪽으로 간다. 그러면 빨리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내가 완전히 떠나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주십시오.

 

여러분 마라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라톤을 할 때 그 앞에 서는 것은 너무나 쉬워요. 저도 마라톤 시작할 수 있어요. 앞에 서는 게 뭐가 어렵습니까?

 

땅하고 조금 달리는 것까지 저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완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죠. 그러나 완주하는 사람이 상을 얻는 것이 그래서 여러분 끝까지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로마서에 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시작도 믿음 과정도 믿음, 끝도 믿음 믿음으로 일관성 있게 사는 것.

 

여러분 처음 뜨거웠던 것보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 보면 내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쓴. 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라. 내가 인내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며 시험의 때가 올 때에 그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겠다. 약속하신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

 

할렐루야 끝까지 지키는 사람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 끝까지 예배를 지키고 끝까지 기도를 지키고 끝까지 말씀을 붙드는 성도의 삶이 중요한 것이 시편 기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돌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주님 나에게 끝까지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끝까지 그 말씀 따르겠습니다. 그러려면 그 가르침을 계속 들어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이 없이 끝까지 다르기는 어렵다는 거죠.

 

여러분 신앙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듣는 것임을 저와 여러분들이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사도 바울이 마지막에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재림 신앙은 우리를 더 깨어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정리해 드릴게요. 재림이라는 이 시점이 있어요. 시점이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어제보다 오늘이 가깝습니까? 뭡니까? 이런 질문을 하나 그러실지 모르겠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가깝습니까? 멉니까? 가깝죠 오늘보다 내일이 더 가깝습니까? 멉니까? 더 가깝죠. 재림의 때는 가까워지고 있는데 신앙은 점점 느슨해지면 돼요. 안 돼요. 너무 쉽지 않아요. 우리의 신앙이 점점 주님을 만나는 시간은 가까워지는데 내 마음은 주님과 점점 멀어져 난 세상을 향해 간다. 그러면 여기에 우리의 삶에 엄청난 모순이 됩니다. 내가 재림을 기다리고 재림의 때를 맞이해서 지금까지 여러분 살아온 연수 동안 달려왔습니다. 이제 더 가까워졌어요. 내일이면 더 가까워질 거예요.

 

그런데 내일 신앙은 나의 신앙이 점점 약해진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여러분 재림 신앙도 그렇지만 주님이 오시는 그날 그때도 있지만 그전에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실 날이 있잖아 언젠지 모르지만 그게 10년 후가 될지 아니면 당겨져서 5년 후가 될지 아니면 주님이 저를 내일 부르실지 그러면 주님이 저를 내일 부르시면 저는 내일이 마지막이죠.

그렇다면 주님 오시는 재림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도 살펴야 된다는 것이죠.

 

내 인생 주님이 부르신 날 올 텐데 내가 마지막 그 순간에 신앙 느 해서 주님 앞에 떠나는 인생 아니라 주님 내 인생이 다 차오니 더 깨어 있겠습니다. 더 준비하겠습니다. 주님 나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이 이 재림 신앙 가지고 신랑을 기다리는 그때 성도님들이 되셔서 주님 오셨을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합 내 잔치 함께 참여하자.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내 마음 가운데 들려져서 감사합니다. 주님 내가 그곳에 가겠습니다. 그렇게 주님 맞이할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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