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옆에 있는 분들하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내일부터 90일 성경 통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 90일 동안 이어지는 우리 성경 통독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더욱더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번 성경 통독 기간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실 것인가 또 어떤 마음 말씀의 새로운 발견을 할 것인가 마치 보물 찾기 하는 사람들처럼 정말 연의 편지를 꼼꼼히 읽어나가는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네 오늘부터 이제 통독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말씀 우리의 신앙을 좀 점검하면서 하나하나 기초적인 것부터 본질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시간을 이제 주일 말씀으로 시리즈 형태로 함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제목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축복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누리고 있는가 좀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본질적이고 중요한 질문으로 예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나요?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나요?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초대교회 시절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 사형틀로 나아가는 그 결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고백 하나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기도 했거든요. 단순한 종교의 선택을 넘어서서 그들은 생사를 건 결단이 바로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 쉽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주일 예배를 참석하고 또 함께 찬양을 부르고 또 헌금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이게 그리스도인의 모든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 내가 생각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진짜가 아니고 가짜 이면 어떻게 하지 가짜이지 않을까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뭐 그런 경우들이 많지 않지만 예전에 대학교 안에 가짜 대학생들이 대학교 안을 활보하고 다닐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학번도 이야기를 하고 또 사람들과 같이 수업도 듣고 심지어 mt도 같이 갑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요. 완전한 대학생처럼 다 같이 다니는데 결정적인 차이는 뭘까요?
마지막에 졸업장을 못 받아요. 왜 그렇습니까? 입학하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그들하고 똑같이 다 행동을 했어도 결과적으로 입학을 하지 않은 가짜 대학생들은 졸업장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도 어쩌면 좀 이 부분을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은 어디에 있는가 제가 금방 말한 가짜 대학생을 이렇게 비교 표로 만들어 놨어요. 근데 이 가짜 대학생을 우리 그리스도인으로 한다면 문화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요. 수업을 듣고 mt를 따라간 것처럼 예배를 참석하고 찬양도 하고 헌금도 합니다. 그리고 익숙하게 함께 머물러요. 그런데 결국에는 졸업장을 받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고 모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구원받지 못한 그리스도인들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정식 학생은 어떻습니까?
정식적으로 입학 절차를 거치고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죠.
교회 문화에는 익숙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분명한 출발점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나는 모태 신앙이어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나는 신앙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는 것만으로 신앙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죠.
충분하지 않습니다. 영적 기도를 했다든지 세례를 받았다든지 또 모호한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고 해서 그게 꼭 신앙의 출발점이다. 진정한 신앙의 출발점이다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이 시간 좀 점검할 것은요. 우리의 신앙의 기초 신앙의 출발점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한데, 오늘 로마서 14장을 통해서 핵심적인 진리를 우리가 온전히 기억하고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크게 우리가 기둥으로 네 가지를 여기에 적어놨는데요. 보시면 주권 그리고 반역 그리고 대속 영접 요 네 가지를 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중에 기둥 하나가 흔들려도 집은 무너질 수 있어요. 기둥 역할을 하는 이 네 가지를 한번 오늘 이 시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첫 번째 기둥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하는 사실이 분명한가라고 하는 것을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다.
이 사실을 여러분 가장 신앙의 전제점인 이 사실을 믿고 여러분들 고백하십니까?
시편 24편 1절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아멘 아멘 네 정신 바짝 차리고 이 시간 정말 딱 들어야 돼요. 여러분 그리고 말씀을 선포할 때는 아멘으로 반응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받아들이는 거예요. 안 그러면 딴 생각하고 저 공사 소리 듣고 있고 이런단 말이에요.
오늘 굉장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신앙 고백 이 고백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의 어떠한 활동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하나님이 이 모든 걸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나를 만드셨고 나의 주인이시라고 하는 이것이 가장 신앙의 기본 전제입니다. 이것이 온전하게 고백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에 다른 기둥들은 아무 필요가 없어요.
두 번째 우리는 그 주님의 주권을 거부한 죄인이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살인, 도둑질, 가음 이런 외적으로 보여지는 도덕적인 실수,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내가 주인이다, 아이 센터, 내가 가장 중심이라고 하는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 번 두 번째 기둥도 잘 점검해 보십시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한 가지 명령을 받았잖아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아라. 근데 우리가 주일학교 때부터 쭉 들은 말씀이고 잘 아는 말씀이어서 너무 단순하게 이 하나님의 명령을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건 단순한 규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인 것을 인정하는 그런 시험입니다. 뱀이 시험하잖아요.
너희가 저걸 먹기만 하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결국 아담과 하하는 스스로 하나님의 주권을 깨워버리고 스스로 주인 되기를 선택하고 그 이후에 우리 인류의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밖으로 드러나는 어떤 형태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 대신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죄의 싹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두 번째 기둥을 넘어서 세 번째 기둥으로 넘어가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이라고 하는 기둥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사망이라고 하는 결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심판을 대신 지셨다는 사실입니다. 내 앞에 이미지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제가 만들어놨어요.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의미의 차이가 있는지 한번 여러분 좀 이 부분은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어요. 나를 위해 단순히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 죽으셨다. 이 차이를 깨달을 때 여러분 십자가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이 세 번째 기둥까지 왔다면 이제 마지막 네 번째 기둥은 바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심으로 영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접은요. 단순히 내가 어떻게 막 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는데 나를 건져준 그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영접이 아닙니다. 영접은요. 나를 살려주셨으니 이제 내가 당신의 종이 되어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내 인생의 결정권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에요.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리는 결단이 바로 영접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머물지 않기를 원하고요.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영접 점검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여러분 이 네 가지의 기둥을 세운 사람들이라면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삶의 고백과 삶의 모습이 달라지게 되는 거예요.
오늘 사도 바울이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좀 우리가 집중해서 볼 부분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산다라고 하는 말과 주님의 것이다라고 하는 말에 이 차이를 이 이미지에서 만들어놨어요. 주를 위해 산다라는 말도 굉장히 대단한 말로 여겨지잖아요.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나는 살겠습니다. 이거 대단한 고백이에요. 그런데 이 주님을 위해 산다라는 그 말 안에는 자발적인 뉘앙스가 들어 있습니다. 내가 하겠다. 내가 들어가 있어요. 근데 그것보다 더 포괄적인 것이 바로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주님께 속했다. 한마디로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나는 주님의 것이므로 나는 주님을 위해 살아간다. 나의 삶의 모든 결정권은 주님께 있다.
그러니까 이 사도바울의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다라고 하는 이 고백은 결코 가벼운 고백이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이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인 삶의 변화, 행동의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겠죠.
내가 주님의 것인데 공부한 학생들도 내가 지금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이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서 편안하게 떵떵거리고 살겠다. 내가 중심이 되어 버린다면 그건 죄로 향하는 겁니다. 지금 직장 생활하는 여러분들도 내가 열심히 해가지고 어떤 결과물을 얻겠다. 근데 그 목적이 내가 되어 있다면 그게 바로 죄를 향해서 가는 거예요. 아니 내가 무슨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뭐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사는데 그게 죄라고요. 예 내가 중심이면 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우리 일상의 구체적인 변화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하는 상황에 있어서 그 결정에 과정의 기준이 나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묻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잠언 3장 5절에서 6절 말씀을 읽어드립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인도하시리라.
아멘 여러분 이번 성경 통독 기간에 이런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여러분들에게 정말 골수를 쪼개는 그런 말씀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요.
여러분 이 자언의 말씀이 실제로 삶으로 이루어진 성경의 예와 인물 한 명을 말씀드리면 바로 룻입니다.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남편 그리고 가족들 남자들이 다 죽은 상황에서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이스라엘로 가는 것. 어쩌면 젊은 룻에게 있어서는 인간적으로 볼 때 이건 미래를 포기하는 행동입니다. 고향과 가족과 안정적인 삶을 떠나는 미련한 선택이죠.
그런데 그 룻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분명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이다.
룻의 그 결정의 기준은 내 유익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선택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방 여인이었던 그 룻이 바로 훗날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는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 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는 것은요. 지금 당장 볼 때는 뭔가 손해 보는 것 같고 미련한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그러한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결코 손해 보는 삶이 아니에요.
두 번째로 그렇게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 큰 변화 중에 두 번째는 바로 지갑의 회심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큰 우상 중에 하나가 바로 맘몬 돈이에요. 돈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 돈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요소가 되게 하면 가장 큰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러분 마음의 회심이 반드시 지갑의 회심으로 나타납니다. 저는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마음에 회심한 자들은 시간의 회심으로 나타납니다. 내 시간의 우선순위를 점검해 보십시오. 내가 정말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 시간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모시는 과정 속에 그가 선언하죠.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삭개오가 지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런 고백을 한 것도 아니에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자기가 지금까지 잘못한 것들이 있으면 내 감자로 갖겠습니다. 이런 말을 했는데 예수님이 그런 표현을 한 이유가 뭘까요?
삭개오의 영적 변화가 그의 재정관에서 드러났다는 것을 예수님은 보신 겁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듣고 나니까 마음이 막 지금 무거워지고 뭐지 나는 지금 구원을 받은 사람이야 아니야 막 혼동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완벽하게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지금 이런 상태인데
여러분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단은 그러한 우리의 부족함 연약함을 계속 공격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너는 가짜야라고 말할 거예요. 오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 마음에 너는 가짜야, 너는 지금 진짜 믿음이 아니야라고 하는 그런 공격을 받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요.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진실함입니다. 여러분들한테 목회자들처럼 아니면 뭐 대단한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들처럼 꼭 그렇게 해야지만 신앙이 있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완벽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실함을 지금 한번 점검해 보자는 거예요.
훈련소에 가면 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총도 못 쏘고 앞으로 갓 뒤로 돌아 이런 것도 잘 못하고 용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데 훈련소에 입소하는 순간 그들은 뭐가 되는 거예요?
군인이 되는 거예요. 훈련소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들은 군인입니다. 병장도 군인이고 또 요즘 부사관, 장교들도 다 군인이지만 훈련소에 입소한 사람도 군인이에요. 중요한 건 출발점이 있느냐 훈련소에 입소했느냐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미숙하고 부족하고 연약해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출발점이 나에게 있는가 이걸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출발점이 분명하다면 지금 좀 연약하고 부족해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비록 여전히 부족하고 과거의 습관에 넘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내가 고백한 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삶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진심으로 양도하는 그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는가?
여러분 베드로는요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합니다.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그게 바로 베드로의 민낯이었어요.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셔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의 부족함보다 그의 진실함을 보셨습니다. 실패한 베드로 자기가 분명히 경고까지 해줬는데도 그대로 실패한 베드로를 내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주님 저는 아직 여전히 미숙하지만 당신은 제 삶의 주인이십니다.
주님 당신의 뜻에 따라 믿음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게 여러분들의 진실된 고백이라면 여러분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스스로 정직하게 점검해 보십시오. 문화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어렸을 때부터 또 수십 년 내가 교회에 머물러 있다고 나는 당연히 믿는 사람이야. 그리스도인이야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 평안을 위해서 가족들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있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적 없이 그저 교회에 와서는 평안을 구하고 밖에 나가서는 내가 주인 된 삶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분명히 점검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신앙의 출발점이 분명하지 않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고 아무리 성경의 지식이 쌓여진다 해도 내 삶의 진정한 변화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 부분이 모호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시간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고 왕 되심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우리의 인생을 양도하는 진정한 고백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이 시간 결단의 기도문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같이 읽습니다. 시작
주님 저는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았던 죄인입니다.
나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을 이제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셔드립니다.
이제는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
아멘 여러분 이 고백이 여러분들의 진정한 고백이 된다면 비로소 주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이 여러분들의 삶에 시작되게 될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러분들에게 더 풍성한 은혜를 얻게 하시는 그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여러분 진실된 고백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원하고, 또 여러분들이 품고 기도하고 있는 그 한 영혼들이 바로 이러한 고백으로 신앙의 출발점에 설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속히 올 수 있도록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