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주 사도행전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대표적인 두 교회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성경이 이 두 교회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떤 교회, 어떤 성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신학 잡지에서 강소 교회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룬 것을 보았습니다. 강소 교회란 작지만 강한 교회 그것을 줄여서 일컫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출석 교인 100명 이하의 교회를 소형 교회 100명에서 천 명 사이의 교회를 중형 교회 그리고 천 명 이상의 교회를 대형 교회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대형 교회 중에 교인 수가 1만 명 이상의 교회를 초대형 교회 흔히들 메가 처지라고 부릅니다. 이 기준에 따라 교회를 구분해 보면 한국교회의 약 72%가 소형 교회에 속하고, 중형 교회가 24%, 대형 교회가 4%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이런 현실에 맞는 목회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회 혹은 목회 신앙과 관련되어 소개되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 대형 교회 혹은 초대형 교회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교회 혹은 교인들에게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를 책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독자들 중에는 그런 책을 진지하게 읽는 분들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읽으면서 왜 우리 교회는 저런 일을 못할까?
왜 우리 교회는 저 교회처럼 저런 발전이 없을까?
우리 교회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런 식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 교회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거죠. 불만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교회를 옮깁니다. 그래서 지난 10년 사이에 한국 교회에서 교회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중형교회 중에 교인 100명에서 300명 사이의 교회를 중소형 교회라고 하는데요. 지난 10년간 이 중소형 교회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소형 교회가 소형 교회가 되었고, 소형 교회는 교인 30명이 안 되는 초소형 교회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 전체가 취약해졌습니다. 스스로 자립이 어려운 그런 교회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소형 교회 혹은 중소형 교회 다니던 그 교인들은 어디로 옮겼겠습니까?
대부분 자신들이 책으로 읽은 그 대형 교회 혹은 초대형 교회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교회 수로 보면 전체의 0.2%밖에 되지 않는 초대형 교회 메가 처지에 전체 교인 21%가 속해 있다고 합니다.
이 잡지에서 강서 교회 이야기를 다룬 이유는 한국교회 교인들의 인식 속에 큰 교회는 좋은 교회, 작은 교회는 그렇지 않은 교회 그런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지만 의미 있는 교회, 오히려 성경적으로 더 복음적인 교회 그런 교회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어서 강소 교회 특집을 다룬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대도시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큰 교회가 생길 수 있죠. 그러나 작은 마을에는 큰 교회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며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어떤 목사님이 결론처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교회들은 교회 수가 많은 메가처치가 되는 것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교인 수에 상관없이 주님이 최종적으로 원하시는 교회, 즉 오메가 처치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입니다. 그처럼 이 땅의 교회는 마지막 때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인데 그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그런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교회, 어떤 성도로 살아갈 것인지 그것을 우리 마음속으로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리아 안디옥 교회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리아 안디옥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시리아 안디옥 교회는 성도들 중에 유대인도 있었지만 다수의 성도들이 이방인인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시리아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 역사 최초로 그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 그런 뜻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다르다.
저 사람들은 정직하고 성실하다 사랑이 많고 착한 사람들이다.
저들은 정말 자신들이 믿는 그 신을 닮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부흥 역사가 있었던 교회입니다. 참된 의미에서 부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이방 선교를 진행하려고 하십니다.
사도행전 13장 이후의 내용을 보면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사 바울 사도가 지중해 주변에 아시아와 유럽 선교를 진행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안디옥 교회가 중심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 안디옥 교회는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생 교회가 어려움을 만난 예루살렘 교회를 부재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들의 모교회, 즉 어머니 교회입니다. 그런 어머니 교회를 생긴 지 얼마 안 된 안디옥 교회가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봅시다.
여러분 성경이 왜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 역사 최초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교훈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겁니다.
안디옥 교회는 어떤 일을 했습니까?
이아코니아의 일을 했습니다. 29절에서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금을 전달했다고 하는데, 구제금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코니아입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단어이죠. 섬김 봉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디아코니아는 아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여기서 섬김으로 번역된 이 단어, 이 단어가 디아코니아입니다. 그러니까 디아코니아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희생하는 것 그것을 가리킵니다. 희생이 디아코니아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6장 1절 예루살렘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그 교회에 소속된 어려운 분들, 특별히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날마다 구제 음식을 나눠줬는데, 그 구제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 이것을 디아코니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디아코니아는 물질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2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그 사명으로 번역된 말도 헬라어로는 디아코니아입니다. 그러니까 디아코니아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맡기신 일, 그것이 디아코니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 그리고 실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 이 모든 것이 디아코니아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기근을 만나 어려움에 처한 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자기를 희생했고, 또 헌신했으며, 헌금을 모아서 실제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가 돕고 섬긴 그 예루살렘 교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성경에 따르면 예루살렘 교회는 큰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4장 4절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많으니 남자 어른의 수가 약 5천 명이나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초기부터 교인 수가 남자만 5천 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21장 20절 형제여 당신이 보는 대로 유대 사람 가운데는 믿는 사람이 수만 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모두 율법의 열성적인 사람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한 말입니다. 이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 믿는 사람의 수가 수만 명이나 되었다는 겁니다.
사람만 많았습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재정적으로도 풍성했던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성도들 중에 자신의 땅과 집을 팔아 사도들 앞에 내놓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교회에 헌금이 많이 들어온 거죠. 그리고 사도행전 6장 구제를 함에 있어서 이 사 재정 사용과 관련해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재정 관리자 일곱 집사를 뽑았습니다. 재정을 관리하는데 7명의 집사가 필요할 정도로 예루살렘 교회는 재정이 많았던 교회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오늘날의 메가 처지와 비슷합니다. 성도 수가 많습니다. 재정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예루살렘 교회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사도행전 12장 1절
이 무렵에 헤롯 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행하였다.
안디옥 교회가 구제를 하려고 할 이 당시 정부가 교회를 핍박했다는 겁니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 결과 사도 야고보가 죽었고, 베드로도 죽을 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기근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교회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이것은 외부에서부터 오는 어려움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입니까?
교회가 민족주의 사상에 사로잡혀버린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꺼렸고, 복음을 전했더라도 유대식으로 할례를 받으라. 율법을 지켜라 그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예루살렘 교회의 내부적인 기류는 이방인 전도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메가처치였지만 하나님의 선교 역사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아십니까?
사역의 중심을 옮깁니다.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이 안디옥 교회로 하여금 어려움에 빠져버린 그 예루살렘 교회를 돕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식을 가지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당시에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것 이것이 단순하고 쉬웠을까요?
그 당시 안디옥교회의 재정 형편이 어떠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존심이 센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이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이방인들이 자기들에게 구제를 했을 때 그 구제에 대해서 감사했을까요? 기뻐하면서 넙죽 받아들였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안디옥 교회 교인 중 일부는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하는 것을 반대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구제하고도 욕 먹습니다. 어쩌면 돈 낭비입니다. 차라리 그런 돈이 있으면 기금을 모아서 예배당을 건축하고 우리 교회가 좀 더 성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합시다.
그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돈을 써서 내가 처치가 되도록 하자 그렇게 주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로 결정했고 그것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메가 처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는 오메가 처치가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 현실에 한번 적용해 봅시다. 지난 수요일에 한독연합예배 준비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6월 28일 한독 연합 예배 때 어떻게 예배할지를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가 끝난 후 독일 교회 공사 현황과 그로 인한 공간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어려움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지금 독일 교회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독일 국가 교회는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고 교인들이 계속 감소하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국가 교회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준비는 재정 적자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재정이 많이 나가는 건물을 매각하고 교회를 통합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교회를 통합하면 목사 숫자가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인건비가 줄어들 거라는 계산입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어쩌면 10년 내에 우리 교회가 있는 이 슈테글리츠 지역에 한 두 교회만 남기고 모든 교회가 통합될지도 모른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통합 이후에 그 나머지 교회 건물들은 어떻게 될까요?
유럽 다른 나라에서 보듯이 극장이나 공연장, 박물관, 카페 그런 식으로 매각되고 용도가 변경될 겁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묘하게도 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와 오늘의 독일 교회 모습이 자꾸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교인 수가 많았습니다. 모든 교회의 어머니 교회였습니다. 그처럼 독일 교회 역시 모든 개신교 교회의 어머니 교회입니다. 이 땅에서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그 종교 개혁 사상은 이 교회를 통해서 독일 교회를 통해서 퍼져 나갔습니다. 그 당시 독일 교회 교세는 강했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가 바로 이 독일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어려움을 만나서 교회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독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종교세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탈퇴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트 세대에서 하나님의 부흥 역사가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독일 교회는 계속해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사회는 세속주의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도 복음 그 자체보다 정치 사회적 이슈, 윤리적 이슈와 맞물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신앙인도 정치 사회적으로 행동하고 결단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될 부분은 사회 현상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복음은 잊혀지고 진보 혹은 보수적인 정치 철학과 이념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미국의 미국 교회는 복음주의 신앙을 잘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보면서 대응했죠. 대응하면서 교회 신앙과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마치 정치 집단처럼 힘을 모아서 싸웠습니다. 그 상황은 이해되지만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보며 그 행동에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엔 기억 속엔 교회가 정치한다 정치만 남았습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반공 운동이나 반동성애 운동만 하는 곳으로 기억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율법을 강조하다 유대 민족주의로 기울어졌던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우리 더 잘 믿어봅시다. 그런 의도로 율법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런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정치 속에서 유대 민족주의가 일어났고, 이 율법주의 신앙과 유대 민족주의는 하나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자 교회 안에 유대 민족주의만 남고 복음은 사라져버렸던 겁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이 이방인들 교회를 찾아다니면서 방해를 합니다. 이방인들 신앙의 걸림돌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지금 서구 유럽 교회가 이런 상황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현실을 이야기하다가 복음을 놓쳐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우리 교회가 안디옥 교회가 한 일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독일에서 작은 교회입니다. 전통도 얼마 되지 않은 그런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이 땅의 교회를 위해서 안디옥 교회처럼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요?
우리 형편에 맞는 일을 하면 됩니다. 오늘 말씀에 안디옥 교회 성도들도 자기 형편에 따라 구제 헌금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예배하는 것,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의 즐거움을 독일 교회가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매주 독일 교회 예배 자리를 찾아가서 채워주기는 어렵지만 한독 연합예배가 있는 날만큼이라도 열심히 예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함께 찬양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그 신앙의 기쁨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 영적 파워를 보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한독 연합 예배 드리는 날을 예배 쉬는 날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날은 한 주 예배 빠져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독일 교회를 위한 섬김과 봉사의 일입니다. 그리고 한독 예배를 할 때마다 우리는 예배 후에 음악회를 하려고 합니다. 음악회를 해서라도 좀 더 많은 독일분들이 교회로 오도록 유인하고 싶습니다.
처음에 이 아이디어를 내신 분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 음악회를 선교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독일 교회를 섬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이 땅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디옥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독일 교회를 대할 때 계산적인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독일 교회와 이야기하다 보면 섭섭할 때가 있어요. 우리는 이곳에서 40년 넘게 예배를 드린 신앙의 친구요 신앙의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독일 교회는 자기들은 집 주인이고 우리는 셋방살이 하는 사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섭섭하기도 하고 화가 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도우려고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그런 반응입니다.
그러나 오늘 안디옥 교회를 보십시오. 바울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전체를 볼 때 예루살렘 교회가 이 이방 교회에 감사하기는커녕 구제 현금을 전달했던 바울 사도를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공격하며 이곳저곳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니며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자신이 개척한 이방 교회들을 설득합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구제 헌금을 모읍시다. 저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움을 당한 교회를 돕는 것은 우리에게 좀 더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에 있어서 이득을 따지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어떤 그리스도인, 어떤 교회로 사느냐 그 문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운행하시며 자신의 뜻에 맞는 교회, 자신의 뜻에 합당한 성도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께 쓰임 받은 그 안디옥 교회처럼 때로는 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희생할 필요가 있고 때로는 인내해야 하고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섬김과 봉사의 삶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설교를 정리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교회 그리고 자신의 삶이 큰 교회, 위대한 성도 그렇게 불리기를 원합니다.
후원하는 교회를 원치 않는 목사가 있을까요?
저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메가 처치가 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 섬기고 또 자기를 희생해서 봉사하는 그런 교회와 그런 성도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수긍이 되지 않아도 그런 삶을 살기를 우리가 결단해야 하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 함께 찬양하고요. 주님 내 삶이 안디옥 교회 같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