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은혜의 찬양 감사합니다.
5월을 은혜롭게 잘 보내고 또 오늘 6월 첫째 주 3부 예배로 올라오신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시간 말씀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 거룩한 낭비라는 제목을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 보니까 가성비를 따져가면서 식당에 가거나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그래서 식당마다 나름 착한 가격표를 붙여놓기도 하고, 또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가격 대비해 나름 괜찮은 식당, 괜찮은 물건을 구입하려고 합니다. 즉 사람마다 손해를 보지 않고 잘 사는 법을 따지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효율성입니다. 손해 보지 않고 사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낭비 낭비한다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할 실패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낭비 없이 사는 것, 딱 맞게 사는 것을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선한 낭비, 거룩한 낭비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읽다 보면 우리가 세상적인 계산법이 아닌 완전히 다른 차원의 말씀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말씀의 세계, 이 복음의 세계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선한 낭비, 거룩한 낭비가 많이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탕자의 비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서 자기 재산을 다 탕진해 버리고 가난하게 찾아왔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완벽한 실패자입니다. 인생을 허비한 낙오자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기 때문에 비로소 아버지의 품, 아버지의 집 얼마나 그리웠는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인생 바닥을 치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조건 없는 그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세상 저거 돈으로 다 탕배했는지 몰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 그 물질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 보면 비참한 낭비였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안에서 보면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거룩한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거룩한 낭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것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다 부어 드렸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분노하기를 왜 그런 비싼 것을 왜 비싼 것을 그렇게 허비하느냐고 고함을 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좋은 일이었다. 좋은 일이었다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씀이 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6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아멘 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무슨 일을 했다고요?
좋은 일을 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낭비하느냐 너 문제 많다. 너 심각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일에 대해서 좋은 일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이 행한 일도 전파가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때로는 낭비가 있고 비효율적인 낭비가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선한 낭비, 거룩한 낭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전에 불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만일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성전에 불을 밝히면 안 됩니다. 전기세가 많이 나옵니다. 낭비입니다. 하지만 성전에 불을 밝히는 이유는 성전에 불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여러분 무조건 신난다. 무조건 낭비해라 낭비하자. 그렇게 생각하면 한 사람도 없을 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낭비는 어떤 낭비일까요?
첫 번째로는 자신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낭비는 자신의 중심이 아니라 누구 중심이라고요?
하나님 중심이었다. 우리 3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3절 말씀 시작
아멘 여러분 오늘 여인이 들어간 곳은 바로 시몬의 집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잔칫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여인의 관심 목적은 누구였죠?
예수님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대화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여인의 눈동자는 오직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사역할 때에 때로는 왜 지치고 마음이 상한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중심이 예수님께 두지 않고 나에게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기분이 꿀꿀해서 내 기분이 안 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게 되고,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거기에다만 관심을 갖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곤하게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난주 교회 항정직 선거를 했지 않습니까? 귀한 분들이 정말 많이 뽑혔습니다. 혹 그런 분들이 안 계실 줄 믿습니다.
내가 이만큼 헌신했는데 왜 날 좀 뽑아주지 않는가?
내가 이 정도로 시간을 낭비해가면서 열심히 사역했는데 왜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는가?
여러분 열심히 봉사하고 나서도 마음의 상처가 남는다면 그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왔는가 주님을 바라봐야 될 그곳에 내 생각, 내 고집, 다른 사람의 비위, 그것이 인간적인 세상적인 그런 것을 하고 있지 않은지
오늘 이 여인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했습니다. 그 비판 속에서도 향유를 부어드리기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것이 세상의 눈에서 보면 영락없이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주일에 쉬지 못하고 교회에 와서 아이들 가르치죠. 차량 운행하고 식당 봉사하고 안내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미련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효율성으로 따져보면 정말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피곤합니다. 다 손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오직 예수님께만 고정이 된다면 그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나를 구하는 만족의 신앙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기쁨을 구하는 거룩한 낭비, 거룩한 열매가 되는 줄 믿습니다.
두 번째 거룩한 낭비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낭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뭐 하며 기억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 8절 말씀 한번 읽겠습니다. 8절의 말씀 시작,
그 힘을 다하여 내 몸에 강요를 부어 내 장대를 들이 준비하는
아멘 그는 뭘 다하여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무엇을 장례를 미리 뭐 했다고요?
준비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나 드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포함한 그 많은 똑똑한 사람들은 왜 이 여인을 비난했을까요? 그리고 왜 이 여인은 자신의 전재산인 이 옥합을 지금 이 시간 깨뜨릴 수 있었을까요?
그 차이는 바로 기억함에 있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다고요?
기억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누누이 당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뭐냐고 하면 인자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인자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이 말씀 이 죽음의 예고를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오직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왕이 되면 우리는 좌의정 우의정 하면서 한 자리 차지할 것이다. 이런 세상적인 성공만 계획만이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두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주님이 죽으실 것이라는 그 슬픈 예고를 그 마음에 담았던 것입니다. 이제 그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영적으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 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그 정확한 타이밍에 자신의 전부를 올려드릴 수가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거룩한 영적 낭비, 아름다운 헌신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이 나야 됩니다. 뭐가 기억이 나야 된다고요?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이 나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은 기억하지 않고 기억나지 않고 내 어떤 감정에 따라서 주변의 사람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헌신, 거룩한 낭비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고 생각이 날 때에 내가 하는 길이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돌봐주시는구나,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유익이 되는구나 하나님 나라에 귀하게 쓰임 받겠구나 그것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할 때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겁니다.
요즘 어려운 시대를 살다 보니까 많은 우리 청년들도 그렇고 장년들도 우리 성도님들도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젊은 세대들이 이 재테크에 특히 주식의 어떤 타이밍 또 부동산의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 밤낮으로 이 차트를 분석하기도 하고 뉴스를 검색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의 타이밍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도 예민하면서도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타이밍에 대해서는 얼마나 여러분이 집중하고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타이밍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기도에도 기도에도 타이밍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피곤해서 잠만 자고 있는 겁니다. 또다시 예수님 찾아와서 기도해라. 또 역시 자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와서 말씀하기를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여러분 기도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 물질도 타이밍이 있다는 것 아십니까? 물질을 사용하는 것도 여러분 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타이밍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학교 다닐 때 등록금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부모님도 가난해서 등록금을 보태줄 여유가 없었다는 겁니다. 늘 부모님이 가난하게 살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부모님이 돌아가 버렸습니다. 나중에 장례를 치르면서 집에 유품을 정리하다가 구들장 밑에 수국의 돈이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하는 말이 정말 돈이 필요할 때에는 안 주시더니 이제 이 돈이 자신이 그리 필요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기억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이 타이밍을 다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잘합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하겠습니다.
돈을 좀 많이 벌면 헌금하겠습니다.
은퇴하고 시간이 좀 남으면 그때 봉사하겠습니다
라는 핑계를 댑니다. 하지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원하시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것이지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언제 하면 좋을까요?
여러분 언제 하면 좋을까요?
그렇죠 주님은 널 언제나 니 마음이 결단이 서거든 지금 해라 오늘 해라고 하지 주님은 너 다음에 해라 다음에 해라고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의 은혜를 통해서 주님이 멈추시는 곳에 나도 멈추고 주님이 눈물 흘리시는 곳에 내 삶을 드릴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거룩한 낭비는 그럼에도 그럼에도 낭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4절 5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4절 5절의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자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흡입하는가 이 향유를 300대나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뭐 하는지라 책망하는지라 여인이 옥합을 깨뜨리는 순간 그 방 안에는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향기와 동시에 사방에서 거친 비난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비난을 주도한 인물이 가룟 유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가룟 유다는 아주 논리적이고 타당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왜 그 비싼 것을 길바닥에 쏟아붓느냐 그것을 팔면 300데나리온이나 되는데 그 돈이면 수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지 않느냐
얼마나 유다의 말이 틀리지 않지 않습니까?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주장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지 맞아 맞아 그렇게 동의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여인을 책망합니다. 고함을 치고 면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결단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여러분 세상의 계산기로 두드려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세상의 계산으로 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를 때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가룟 유다와 같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야 적당히 믿어라. 뭐 그렇게 유난히 믿으려고 하느냐 그냥 교회 한 번만 가지.
뭘 그렇게 열심히 가려고 하느냐 그 시간에 재테크 공부하거나 자격증을 따는 게 더 너에게 유익할 거야.
그 돈 교회 바치지 말고 니 미래를 위해서 저축해. 그게 더 현명한 거야.
여러분.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신앙의 본질은 계산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여러분 연애를 할 때 여러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사고 이벤트를 준비할 때 여러분 가성비를 따집니까?
내가 이 사람에게 10만 원짜리 선물을 주면 나중에 더 비싼 것으로 내게 해주겠지 이렇게 계산하는 순간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비즈니스가 될 것이고 그것은 거래가 될 겁니다. 거래가 되는 순간부터는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아깝지 않습니다.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멀리서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잠깐 보기 위해서 왕복 몇 시간을 온전히 달려가는 그 수고를 우리는 낭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수고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여인은 정말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판단을 알면서도 주님 앞에 거룩한 낭비를 부어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오늘 이 여인처럼 세상의 계산기를 집어던질 필요가 있을 때는 던져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계산기를 두들겨서는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믿을 수도 따를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때로는 사람들의 판단이 두려워서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을 머뭇거리고 계신다면 오늘 여러분 결단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미련하다, 너 어리석다, 너 부족하다 말해도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인정해 주신다고 하신다면 우리는 그 길을 묵묵히 갈 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이 이렇고 저렇고 평판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지적이는 사람들의 손이 여러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고 주님 기뻐하시는 길이라고 한다면 용기 있게 이 길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 여인을 통해서 거룩한 낭비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보다 비교할 수 없는, 정말 비교할 수도 없는 더 위대한 낭비를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어떻게 낭비하셨습니까?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 말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그 품으로 하나님게 보태사 나 문제를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 우리라고 자기를 들어 주님의 명치를 받으사. 사람들과 같이 소고 사람의 모양으로 미사 를 쓰시고 죽기까지 걱정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시리라.
아멘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고작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이요 자신을 배신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경제학적으로 보면 우주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무모한 최악의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지옥에 가도 마땅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시겠다고 하나님은 당신의 가장 고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셔서 피와 물을 다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그분의 덕분인 줄 믿습니다. 그 엄청난 사랑의 낭비 때문에 낭비 덕분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허비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주님을 위해서 낭비를 하고 있습니까? 그 은혜와 그 사랑을 깨달은 자만이 작은 것이라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헌신해야 되겠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고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자신을 올려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뭐라 말해도 누가 나를 말하고 어떻게 말해도 내가 가는 길이 하는 일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그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다 이런 칭찬받는 그런 거룩한 낭비의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