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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구미목장교회 2026.06.14. 주일오전예배 설교 전문: 내 몸 사용 설명서(고전6:12-20)

작성자박성병|작성시간26.06.15|조회수33 목록 댓글 0

스님 이야기를 자주 해서 죄송한데 지난주 스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꼭 할 말이 있는데 저한테 부탁한다는 거예요. 이게 맞나 싶었어요. 자신이 지난 주일에 교회에 헌금을 했어요. 제가 제 앞에서 이렇게 헌금하는 걸 봤습니다. 많은 건 아니지만 어떻든 하셨어요. 이것도 웃기죠 스님이 교회에 헌금하는 것도 웃기고 근데 헌금을 하고 난 이후에 많은 돈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그래서 이것도 엄청 웃겼습니다. 어쨌든 그리고 하는 말이 하나님께 드리는 곳에서는 축복이 있으니까 성도들에게 열심히 권면해서 하나님께 잘 드리게 하라고 저를 권면하셨어요. 이 소리도 들으면서 제가 좀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예화를 짧게 드는 건 저도 권면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든 그 소리를 스님에게 들으니까 되게 당황스러웠어요.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스님보다는 나은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예 우리가 스님보다는 나아야 되죠. 그렇죠? 

 

저는 요즘 운동을 합니다. 조금 동력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이렇게 노력을 해요. 열심히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조금 드는 마음이에요. 막 이게 많이 드는 마음은 아니고 내가 이 시간에 다른 뭔가를 하면 더 많은 걸 하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내가 너무 내 몸을 관리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건 아닐까 이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근데 지난주에 새벽에 말씀을 나누면서 이런 저의 부담에 대한 자유를 좀 누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새벽에 나눴던 말씀들을 제가 좀 잘 첨가해서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는 것을 좋아하실까요?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몸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을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그런 것들을 다 이렇게 좀 터부시해서 음식도 좀 저렴한 걸 먹고 옷도 좀 싼 것을 입고 또 개인을 위해서 시간을 쓰는 것을 극도로 제한하는 이 금욕주의가 맞는 걸까요?

 

이런 고민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 몸은 음란을 위해서 있지 않고 주를 위해서 있다고 합니다. 13절 하반절에 보면 뭐 먼 음란을 위하여 잊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그러니까 우리 몸이 음란을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있다고 우리 몸의 사용 목적을 성경은 명확하게 기록을 했어요.

 

13절 전반절에 보면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이 구절은 그냥 읽으면 잘 이해가 안 돼요. 이게 어떤 의미냐 하면 그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음식이 배를 위에 있고 배는 음식을 위에 있다고 그러니까 배와 음식의 필연성을 엄청나게 강조했어요. 그러니까 배와 음식이 필연적인 것처럼 이 고린도 교회에는 몸과 성욕도 필연적이라고 되게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거죠. 배가 음식을 요구하듯이 몸이 성적인 기쁨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예요.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라는 이 문장의 의미는 몸과 성욕의 관계가 필수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치 고린도 교회는 몸과 성욕이 음식과 배처럼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음란한 일들을 하는 일에 대해서 별 주저함이 없었던 거예요. 사도 바울은 명확하게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몸은 성욕과 음란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있다고 명확하게 못을 박습니다.

 

이런 의미가 됩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주를 위해서 먹고, 그리고 주를 위해서 성욕도 통제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거예요. 성욕을 부인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욕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때로는 잘 통제되어야 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몸은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여러분 배가 원하는 대로 몸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말라는 거예요. 내 눈이 원하는 대로 내 손이 원하는 대로 내 발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말라는 거예요. 주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런 것들을 통제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몸과 성욕이 되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합니다.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교회 안에도 많이 들어오고 세상은 이미 다 점령을 했어요. 여러분 성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성욕도 분명히 있고 때에 맞지 않는 성욕도 분명히 있고 절제되어야 하는 성욕도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여러분과 저에게는 주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라는 우선적인 삶의 과제가 있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우리는 성역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주를 위해서 통제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고린도 교회는 제한이 없는 도시였어요. 모든 것이 가하다는 생각을 가진 도시였어요. 그래서 성도들이 성욕에 휩쓸린 것에 대해서 제재를 하지 않고 제한을 두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교회 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 편지를 쓰면서 우리의 몸은 성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있다고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우리의 몸은 부활을 입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여야 할 그리스도의 지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살아서도 그리스도의 지체지만 죽어서도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거예요.

 

14절 말씀을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살리시리라.

 

아멘 우리의 몸은 단순히 썩어 없어지는 것들과는 구별된다는 의미인 거예요. 세상에 그냥 썩어 없어지는 것이 있어요. 이렇게 원래 이렇게 무질서 증가의 법칙이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다 썩어지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썩어지는 것들과 우리의 몸은 분명히 다르다는 거예요.

 

이게 사도 바울의 주장이자 또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몸은 어떠냐 하면 부활을 입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될 거룩한 지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거룩한 지체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 없어지는 것과는 반드시 구별되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좀 고민이 생각해 볼 것이 있어요. 우리의 몸과 부활 후에 우리의 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성경이 밝히 밝히지는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의 우리의 몸과 우리가 부활체의 우리 몸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좀 더 고민도 하고 또 연구도 해봐야 될 내용인 거예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명확하게 지게 우리의 몸과 우리의 부활체 조금 어려운 말로 불연속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 선상에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을 음란을 위해서 먹을 것을 위해서 살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의 부활체가 지금 우리의 몸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면 성욕도 절제할 필요가 없고, 음식도 절제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무엇도 절제하지 않았대요. 왜 우리의 몸은 부활체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인 거예요.

 

근데 사도 바울은 연관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하라. 음욕에 맡기지 마라 세상에 맡기지 말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에 영원히 동참해야 할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음욕을 방치하거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몸은 우리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당시에 로마인들의 생각, 모든 것이 과하다는 생각으로 몸을 함부로 돌리거나 놀리면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따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대 정신에 우리의 몸과 삶을 맡기지 말자.

 

할렐루야 한 번 더 따라합니다. 

 

시대 정신에 우리의 몸과 삶을 맡기지 말자.

 

할렐루야 시대의 흐름과 시대의 문화와 시대의 정신과 시대의 사상에 우리의 몸을 맡기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육체와 우리의 삶이 쓰임 받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의 몸을 이 시대의 정신에 맡기고 시대의 문화에 맡기고 시대의 가치관에 맡겨 방치하는 삶을 살아가요. 

 

과연 이 몸이 우리가 살아있을 때 우리가 몸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있을까요?

누가 부활체를 덧입고도 그러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때론 우리의 몸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철저히 절제되어져야 하는 시간도 있다는 거예요. 스스로 넘어서면 안 되는 선을 지키고 그 선 안에서 자기의 몸을 둬야 되는 그때도 있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돌아보면 우리의 몸과 또 우리의 신앙과는 크게 연관을 짓지 않아요. 우리의 몸과 이후의 천국의 삶도 크게 연관을 짓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생각에 대해서 바울이 엄격하게 다시 규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시대의 정신이나 시대의 문화에 우리의 몸을 함부로 맡겨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19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시작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의 몸은 단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의 몸이 아니라는 거죠. 그 정도의 수준의 육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모로 물려받았다고 하잖아요. 부모가 나를 낳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몸은 단순히 그 정도의 가치가 아니고 성령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정결한 집에 거합니다. 우리의 몸이 성결하지 않으면 성령이 거하는 전이 될 수 없어요. 오히려 반대로 마귀의 집이 되는 거죠.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 아니라 마귀의 집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귀신은 더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여러 종류에서 더러운 것들 좋아하고 우리의 생각, 우리의 삶의 환경도 더러운 것을 좋아해요. 그럼 우리가 마귀가 거하는 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 또한 성결하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의 몸을 세상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의 몸을 세상의 흐름에 맡겨서도 안 돼요. 우리의 몸을 세상의 문화에도 맡겨서도 안 됩니다. 흠뻑 쇼나 야구장과 축구장 콘서트 각종 동호회 저는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에 대한 대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어요. 

 

참석은 하지만 광란은 하지 말자.

 

내가 세상의 콘서트에 그리스도인으로 참여할 수 있지만 광란은 하지 말자는 거죠. 내가 어떤 취미에 미칠 수는 있지만 좋아할 수는 있지만 광란은 하지 말자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어떤 문화가 있어요 그래도 광란은 하지 말자는 거예요.

 

왜 제가 이런 생각을 하냐 하면 최고의 열정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되기 때문인 거예요. 그러니까 내 인생의 최고의 열정, 내가 젊었을 때 내가 하나님께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는 누구에게 드려야 되느냐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참석은 하되 광란을 하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사역을 할 때 우리의 에너지의 분출을 세상 방식으로 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성도들의 에너지를 세상의 방식으로 이렇게 분출할 때가 있어요. 우리 교회가 무턱대고 세상과 이렇게 대적 할 필요는 없어요.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성도들의 에너지를 세상의 방식으로 분출하는 거에 대해서는 저는 조금 염려가 돼요. 왜냐하면 그렇게 성도들의 에너지를 세상 방식으로 분출하고 나면 가는 곳이 술집이에요. 저는 그렇게 자기 에너지를 세상의 방식으로 다 방출하고 교회 기도실에 들어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어요. 술집을 가는 성도는 봐도 자기 에너지를 다 분출하고 다시 교회에 돌아와 기도실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성도들은 있었겠지만 저는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거죠. 우리가 에너지를 너무 세상적으로 분출을 하면 에너지의 방향이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도들이 가요를 부를 수 있어요. 너무 가요에 몰입돼 있어요. 그래서 찬송가도 가요로 부르시고 복음 성가도 트로트로 부르시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찬송가 메들리 곡 중에 이 가요랑 비슷한 것들이 있어서 부르다 보면 이렇게 가요로 이렇게 넘어가는 그런 찬송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한 번쯤 좀 생각해 생각을 권면하고 싶어요.

 

내가 과연 이렇게 세상에 나의 에너지를 분출하듯이 하나님을 내가 예배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이렇게 세상에 정말 열심히 사는 이 열정으로 주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일해본 적이 있는가 성도는 한 번쯤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어야 돼요.

 

누가 이 땅을 살면서 가장 작은 에너지를 하나님께 드리고 내 생의 모든 의제제를 세상에 다 쏟아부어버려요. 

 

과연 이게 맞는 태도일까요? 

 

세상은 내가 살아야 될 공간이고 내가 원수로서는 살 수 없는 공간이잖아요. 당연히 내 에너지를 쏟아붓고 내 가치관을 쏟아부어야 될 공간이 세상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한 번쯤은 내가 세상에 열광하듯이 내가 복음에 열광해 본 적이 있냐는 거예요. 내가 세상 문화에 열광하듯이 내가 예배에 그렇게 열광해 본 적이 있냐는 거예요. 내가 세상의 것들을 가지려고 소유하고 하는 것처럼 내가 성령의 은사들을 받으려고 그렇게 발버둥쳐본 적이 있냐는 거죠. 하나님께 나의 이런 에너지를 드린 적이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해 본 적이 있는지 저도 종종 종종 생각이 좀 들 때가 있어요.

 

제가 지난주에 우리 제가 섬겼던 교회를 다녀왔어요. 공식적으로는 17년 만인 거죠. 비공식적으로는 코로나 때 제가 온라인으로 한번 주일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이 있었고, 공식적으로는 어쨌든 17년 만에 처음으로 제가 섬겼던 교회를 갔어요. 네 성도들이 일단 제 변한 모습에 깜짝 놀라고 그때와 저의 모습이 많이 변했죠.

 

두 번째로는 오랜만에 봐서 이런 말을 하면 여러분이 안 믿겠지만 제 앞에 너무 많은 성도들이 서 있어서 본당을 나오는 데 한참이 걸렸어요. 인사하니라고 남의 이야기도 좀 믿어주시고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아무튼 그랬습니다. 

 

근데 제가 오면서 감사한 게 있었어요. 왜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기억할까라는 생각에 제가 정말 그 교회에서의 사역은 후회가 되지 않아요. 제가 병이 걸릴 만큼 내 온 에너지를 다 쏟아내기도 했고 그래서 후회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그냥 좋더라고요. 내가 다시 이렇게 한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 돌아와 보면 그때 제가 30대였으니까 여기는 40대 왔잖아요. 30대 에너지와 40대 에너지가 달라요. 그래서 제가 내려오면서 피곤했지만 그래 내가 한 교회에 이렇게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성도들 17년이 지난 거잖아요. 많은 것에 대해서 한편으로 되게 감사해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최고의 절정은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할렐루야 한 번쯤은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내 인생의 최고의 절정은 하나님께 드려봐야 되죠. 저는 그래서 이미 연세 드신 분들은 기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최고의 절정은 아니죠. 그러니까 그런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의 최고의 절정은 드릴 수 있으니까 한번 해보시고 이 젊은 분들에게 권면하고 싶어요.

 

여러분의 에너지를 젊었을 때 그 최고의 에너지를 한번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예배하는 일에 기도하는 일에 봉사하는 일에 선교하는 일에 그 에너지를 한번 써보십시오. 하나님 여러분의 인생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속 좁은 목회자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말씀이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이 말이 너무 행복해요. 내가 온 에너지를 쏟아 주를 섬기는 내 이 몸의 기억들이 불연속성상의 선상에 있지 않고 연속성상에 있어서 내가 부활절을 입고 난 이후에 하나님을 찬양한 일에 내 지금의 이 열정이 사용될 수도 있을 수 있다는 이 생각이 되게 기쁘게 해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열정을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열정이 주를 위해서요. 기억과 하신 바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직 안 늦었어요. 권사님들 허리 아파도 한번 교회에 봉사해 보세요. 다리를 끌고도 한번 해보세요. 그게 최고의 열정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20절입니다. 시작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게 우리의 예배와도 연관돼 있죠. 예배 학교 강의와도 그러니까 입술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게 아니라 삶으로 행위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인 거죠. 그러니까 내 몸이 아닌 거죠. 내 재능과 재산이 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 몸도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인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감추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입술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되지만, 몸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됩니다. 영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되지만 우리의 몸으로도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됩니다.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는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몸에 담고 살아야 될 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몸에 담고 살아야 될 우리의 몸이에요.

 

그분의 몸과 영혼을 잘 관리하셔서 우리의 배와 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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