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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구미목장교회 2026.06.14. 주일오후예배 설교 전문: 예배학교6주차 제5강 성령의 역사(촉각)

작성자박성병|작성시간26.06.16|조회수36 목록 댓글 0

저는 예배 학교 6주 차입니다. 

 

성경책이 식당에 계속 놓여져 있어서 주인을 찾습니다. 이름도 없고 아무 표시도 없는데 유일하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는 게 돈이 들어 있습니다. 5만 원 그리고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이게 2006년 2026년 축복의 말씀이라면 이제 찾아가시면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제 구미대에 다니는 외국인 친구들이 교회를 와요. 그래서 점심을 왜 안 먹냐고 이렇게 물었어요. 아마 아침에 배부르게 먹고 와서 뭐 그럴 수도 있고 그 옆에 있던 한국인 여 청년 한 명이 뼈때리는 말을 했어요. 우리 집사람이 ‘니네 한국 음식 좋아하니까 왜 점심 안 먹었어?’ 그랬더니 ‘오늘은 너무 한국적이었어요.’ 그러더라고요. 

 

농담인데 아직 못 알아들으시는데 너무 한국적이어서 그랬습니다. 조금 신경 쓰셔서 너무 한국적이지만 않게 이제 외국 아이들 잘 먹을 수 있도록 배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분 나쁘지 않으시죠? 그렇죠 이거 막 막 표정이 굳어지는 분이 있는데 

 

오늘은 예비 학교 6주 차 성령의 역사 촉각에 대한 거예요. 촉각 그러니까 성령의 임재를 우리가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영으로도 또 육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완전한 앎은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일부를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예배 안에 이런 경험이 있어야 되는 거죠. 찬양을 통해서든 말씀을 통해서든 이 경험이 있어야 돼요.

 

그 밑에 한글로 쓰여져 있는 게 좀 긴 구절이 있죠. 이거 같이 한번 교재에도 있는 건데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성령의 역사는 오감을 이루는 전인격적인 반응이다. 예배 안에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예배드릴 때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거룩하심이 나타나야 한다. 만약 성령님이 함께 계시지 않고 일하심이 없다면 우리의 예배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의 영혼은 변화되지 않는다.

 

많은 예배가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는 이유는 예배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거죠. 체험하지 못하는 거예요. 

 

꽃동산교회 여름 캠프의 이름이 성령 체험 캠프인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 성령을 체험하게 하자 저희 딸 아이가 성령 캠프 때 정말 눈물을 흘리고 뜨겁게 기도했어요. 아이가 몇 살 때인지 기억나지 사진이 제가 있어서 이번에 꽃동산에서 그 사진을 보여주고 우리 딸 아이가 여기서 이렇게 성령을 만나고 체험했다 이렇게 잠깐 어필한 적이 있었어요.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완전히 별개의 분이 아니에요. 예배를 통해서든 자연만물을 통해서든 사건을 통해서든 그분의 일부는 온전함은 결코 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거나 알 수 없지만 그분의 일부는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거죠. 내 예배 안에 그런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분인가? 

 

구약에는 르아흐라고 하고요. 신약에는 퓨류와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요. 다른 말로 하면 성경에 보면 아버지의 영 고예사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 대신 보냄을 받은 영이라고 해서 보혜사라고 하기도 하고요. 진리의 영, 은혜의 영, 생명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이 성령이 우리가 예배 가운데 임하시고 역사하심이 있어야 예배가 온전해지고 그 예배 안에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과 삶의 변화를 예배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 충만함이라면 뭘까요?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성령이 내재하고 계셔요. 내 안에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시죠 함께하심이 있어요. 근데 이 성령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그래요.

 

이게 이 지배가 어떤 현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방언을 한다든지 아니면 등등 여러 가지 현상으로 인해서 저 사람이 지금 성령 충만한 상태이구나라고 알 수 있는데 이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내가 성령에 의해서 온전히 지배받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언제 우리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시냐 하면 그게 이제 예배 때인 거예요. 예배 때 성령께서 가장 강하게 역사하신다. 참된 예배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거룩하심을 통해서 성령의 충만하심과 역사하심과 만지심이 있어야 된다. 성령의 만지심이 없다면 우리의 영혼은 변화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의 변화와 성령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거죠. 내가 바뀌어지는 것, 내가 내 내면이 변화되는 것 내 행위가 변화되는 것은 성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령은 도대체 우리 안에서 교회 안에서 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시느냐 첫 번째 큰 글씨로 같이 읽습니다. 시작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요한복음 14장 17절 18절인데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으로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진리의 영인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고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오전 예배 때 배웠죠 뭐라고 해요? 성령의 전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성령의 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성령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하시죠. 

 

그런데 함께하심의 모양이 차이가 있죠. 하나님도 이런저런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아들 그리스도도 이런저런 모습과 함께하시고 성령은 또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로 아들과 아버지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함께하시고 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거예요. 

 

두 번째 성령은 어떤 분이냐 하면 읽습니다. 시작 성령은 밝히 보여주신다. 에베소서 1장 18절에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러니까 성령은 보여주시는 영이에요. 그러니까 깨달아서 알게 하시기도 하시고 실제로 보여주시기도 하시고 이제 여러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제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도 다른 목사님들이 겪는 어려움만큼은 아니지만 중간에 조금의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도 감사한 건 하나님은 저를 궁밀히 여겨주셔서 어려움에서 벗어날 방법은 늘 알게 하신 거예요. 그게 바로 기도인 거죠. 

 

여러분이 알다시피 저는 어떻든 힘들고 어려우면 기도의 자리에 엎드려요. 기도 시간을 더 늘리고 기도를 통해서 내 안에 가르쳐 주고 깨닫게 하는 것을 내가 철저히 순종하고 그럴 때 하나님이 내 안에 역사하신 나를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을 수없이 많이 경험했어요. 성령이 하시는 역할이 두 번째로 뭐냐 하면 우리의 마음 눈을 밝히신다는 거 깨닫게 하시고 제가 그때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새벽 기도 드리는데 이렇게 이런 장면들이 내 컷이 제 앞에서 탁탁탁탁 이렇게 지나갔어요. 그리고 그 내 것에 대한 해석을 이제 기도 중에 하나님이 좀 깨닫게 하셨어요. 실제로 그 이후에 우리 교회 안에서 그와 같은 일들이 그대로 일어났어요.

 

제가 이 내용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적이 없을 거예요. 아마 그리고 제 아내에게도 다 이야기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1번 이야기했는데 정말 이런 거죠. 우리 교회의 현재를 보게 하시고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일을 보게 하시고 그냥 정말 눈에 선명하게 제 눈에 보여주셨어요.

 

저는 그때 깨달았죠. 성령은 우리가 눈을 떠서 뭔가 깨닫게 하고 알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뭔가를 보게도 하시는 분이시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세 번째로 성령의 역할은 같이 읽습니다. 시작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신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성령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르치시기도 하시고 또한 생각나게도 하시는 분인 거죠. 그러니까 내가 성령 충만함,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때에 맞는 말을 내가 하게 된다는 것이고 때에 맞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인 거예요. 왜냐하면 성령이 나를 가르쳐 주시니까 그러니까 성령 충만은 단둘이 막 방어를 하고 막 찬양을 크게 하고 이런 개념이 아닌 거죠. 내가 온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성령은 나에게 가르쳐 주기도 하시고 또한 생각나게도 하시는 영입니다.

 

네 번째로는 읽습니다. 시작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요한복음 16장 13절 말씀인데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유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장래에 일어날 일을 알게 하신다.

 

제가 어떤 이제 요즘 쇼츠를 많이 보죠. 아무래도 목회자들도 쇼츠에 요즘 연예인들 관상을 봐주는 대개 유명한 관상가가 있어요. 이 사람을 이제 크리스찬인 연예인들이 자기 집에 데려와서 그 사람의 이제 아주 이제 관상을 자기 관상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렇게 듣는 거죠.

 

물론 성령이 우리를 알게 하신다는 개념이 반드시 그런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가 왜 좀 더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아야 되냐 하면 성령은 때로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인 거예요. 굳이 우리가 누군가에게 물을 필요가 없을 만큼 성령은 여러분과를 충분히 가르치시는 분이에요.

 

근데 우리가 왜 그 가르침을 못 받냐 하면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지 않아서인 거죠.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으면 우리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저 또한 여러분을 성령의 깨달음을 통해서 가르침을 통해서 가르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너무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이 돼서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미래를 말해주고 이런 것 자체는 반대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금보다는 지금보다는 성령의 더 지배를 받아서 장례나 교회의 일들이나 나라에 대한 것들에 대한 더 많은 영적인 지식이 필요는 하다. 그런 영적인 거장이 교회에 필요하죠. 

 

제가 군에 갔을 때 군종병 한 명이 이름들 기억나요. 제가 군종 이름들을 거의 다 잊었는데 이 친구만 이름이 기억나요. 특이하기도 하고 이름이 소리. 소리. 성은 잘 몰라요. 이름은 소리였어요. 

 

근데 이 친구가 제가 군에 가자마자 하는 말이 목사님 기도하셔야 됩니다. 당연히 기도했죠. 근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은 이런 거죠. 목사님 이 곳은 이 곳은 지금 우리가 하는 기도보다는 훨씬 더 많은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라는 의미겠죠.

 

근데 당연히 저는 초임지고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깊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근데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왜 그 형제가 그렇게 이야기했는지를 충분히 안 사건들이 우리 부도에 막 왕창 일어났어요.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청년들도 저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일들을 그러니까 이런 일들이 교회에 있어야 되는 거죠.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장래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성도들의 삶을 좀 절세시키는 일도 있어야 하고, 성도들끼리도 무당처럼 하지 않고 그런 일들이 꼭 있어야 돼요.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다섯 번째 성령의 역할. 시작 

 

성령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신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일하심에 대한 확신이 성령을 통해 갖게 되는 거죠.

 

여섯 번째로는 읽습니다. 시작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신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서 친히 간구해 주시는 분이라는 거죠.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그래서 성령을 보혜사의 영이라고 그래요. 대신 보내심을 받은 영 그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시는 분이 성령인 거죠. 

 

예수 그리스도도 중보자이지만 동일하게 성령 또한 중보자예요. 그래서 친히 간구해 주신다. 

 

그다음에 성령의 역할 일곱 번째 읽습니다. 시작 

 

성령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신다. 

 

요한복음 17장 23절의 말씀인데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그러니까 성령은 여러분과 저의 부족함을 메워주셔서 온전한 말을 하게 하고 온전한 결정을 하게 하시니 성령과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성령 충만해야 될 이유를 예배 때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 내 삶을 성령께서 온전케 하시는 거예요. 말의 부족함을 온전히 메워주시고, 결정의 부족함을 온전히 메워주시고 인생의 약함을 온전히 메워주시는 게 성령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됩니다. 

 

근데 성령이 어떤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느냐 밑에 짧게 적어놨죠.

 

순종하는 사람 그리고 겸손한 사람들 가운데 일하신다.

 

그다음 세 번째는 우리가 성령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할 내적인 준비가 있어요. 이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주님께서 나를 다스리고 있다는 주권을 인정하는 걸 리더십을 인정하는 걸 말하죠. 두 번째로는 겸손한 마음, 세 번째로는 정결한 마음 그래서 이 마음의 상태가 있어야 성령께서 우리에 임하시고 또 역사하신다 이런 거죠.

 

우리가 성령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할 때 이미 내 안에 내주하셨고 보통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 이렇게 말할 때는 성령 충만함이라고 이해하시면 훨씬 더 수월할 것 같아요. 내가 언제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을 수 있느냐, 내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는 내가 얼마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느냐, 내 안에 겸손이 있느냐, 정결한 마음이 있느냐가 이것을 좌우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네 번째로는 성령이 임하도록 준비되는 작업이 있어요. 세 가지인데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기다리라 기도하라 믿음으로 아들아 사도행전 1장 4절에 보면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고요. 그다음에는 기도하라 사도행전 1장 14절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그러니까 전혀 기도에 힘쓰다는 것은 여러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거예요. 내가 기도하고 있는 그 내용 외에는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는 상태를 전혀 기도에 힘쓰는 상태로 봐요.

 

그리고 네 번째로는 믿음으로 받으라. 성령이 하나님이 나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어떤 성령의 역사든 내가 의심하지 말고 받아야 돼요. 

 

여러분 성령의 일하심이 너무 다양해서요. 이런 거죠. 이분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일하심이 다르고 이분에게 역사한 성령의 역사함이 달라요. 근데 나는 내가 경험이 없으니까 이분이 경험한 성령의 역사만 있어요. 그래서 다른 성령의 일하심이 내게 나타나면 깜짝깜짝 놀라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죠. 성령이 이게 정말 악한의 영을 통해서 받는 것이 아니면 내가 성령의 일하심을 받아들여야 내 안에 성령의 일하심을 우리가 경험하게 된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낯섬 앞에 자기를 주저주저합니다.

 

여러분 정말 영적인 낯섬이 있어요. 또 한 번은 제가 이렇게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데 내 머리 이 뒤에 히브리어 글자들이 새겨지더라고요. 저는 히브리어 글자를 잘 몰라요. 그러니까 일부야 알긴 알겠지만 막 성경 구절이 이렇게 쓰여진다고 해서 제가 그걸 다 해석하거나 이렇게 하지는 잘 못해요. 그 단어를 좀 이렇게 패싱하고 이런 걸 좀 알고 겨우겨우 어떻게 이 분석하는 것을 배워서 조금 아는 정도지. 제가 그냥 히브리어를 딱 보는 순간 이게 패싱이 되고 다 이런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그게 잘 뭔가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때 제 기억에 제 인생에서 듣는 분은 잘 모르겠지만 제 내적인 내적인 말씀에 대한 확신이 가장 충만했던 그게 언제냐 하면 홍바 기도회 때였어요.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어요. 성령의 일하심은 정말 다양하게 나타나요. 근데 여러분이 제안하면 그 낯섬 앞에 제안을 하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어요. 보통 우리는 일단 주변으로부터 많이 듣지도 않아서 그 성령의 일하심을 자꾸 제한하는 거죠. 그래서 방언도 제한하고 어떤 성령이 충만하게 하셔서 내 안에 어떤 영적인 변화들이 일어났을 때 이렇게 제한하는 성량이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있었어요. 그래서 성령의 일하심이 딱 멈춰지는 거죠. 주려고 예비하셨던 것을 주시지 않게 되는 거죠.

 

어쩌면 이 땅에 많은 교회가 성령의 은사나 성령의 성품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건 이 성령의 일하심의 낯섬 앞에서 머뭇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인 거죠. 이제 이후로 여러분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분별이 필요하면 저에게 오십시오. 목사님 내가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이게 바른 경험인가요라고 저에게 오십시오. 그럼 저도 기도해 보고 어쨌든 또 주변에 도움도 구해서 그게 바른 성령의 경험인지 아닌지 가르쳐 줄 테니까 그 대신 막지는 마시라고요.

 

저는 우리 교회 안에 좀 이렇게 영적인 거장들이 성도들 중에 많았으면 좋겠어요. 나보다 더 뛰어난 영적인 거장들이 우리 교회에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교회가 아닌가요? 

 

여러분 배가 파도를 만났어요. 선장이 죽으면 난파되는 배는 정말 이 무가치한 배예요. 선장이 죽으면 갑판장이 물려서 하고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목사에게 모든 영적인 것들을 맡기는 교회는 좋은 교회는 아니에요. 우리가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어떻든 예배의 마지막 단추는 성령이거든요. 성령이에요. 말씀도 있어야 되고 찬양도 있어야 되지만 예배의 마지막 단추는 이제 성령인 거예요. 이 성령의 역사들을 제안하지 않는 낯섬 앞에서 제안하지 않고 또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그런 영적인 경험들이 있고 또 우리가 영적인 거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우리에게 오는 능력 성령의 성령이 나를 온전히 지배할 때 우리에게 오는 첫 번째 능력은 권능을 받아요. 병을 고치고 비신을 내쫓고 하는 권능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이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여러분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어찌 할 수 없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상담을 전공했잖아요. 그래도 잘 안 돼요. 물론 우리 교회에 와서 우리 교인 아닌 분들은 좀 성공한 케이스가 몇 명이 있어요. 진짜 상담으로만 해서 그냥 앉아서 상담적인 스킬을 가지고 상담하려고 해서 회복된 분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일부고요. 진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람에 대한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아서 우리가 능력을 받아야 된다. 그래서 이 능력으로 우리가 사역하고 일하는 거죠.

 

두 번째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할 때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까 그 성령이 바른 영이라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거예요. 교회가 성령 충만했어요. 이 에너지가 어디로 가요? 복음으로 가는 거죠. 영혼 구원한 대로 가는 거예요. 이 에너지가 우리가 더 재미있게 놀고 우리가 더 화목하게 노는 건 바른 방향이 아닌 거죠. 정말 성령이 온전히 그 교회를 지배했다면 그 교회는 교회 사역의 방향은 영혼 구원으로 가야 돼요.

 

여러분 목회자가 성령 안에 있다는 증거 영혼을 위한 간절함을 끝까지 놓지 않은 거예요. 제가 이제 기도의 제목을 이제 제가 노트에 늘 적어서 이 핸드폰 노트에 적어서 새벽마다 한다고 하잖아요.

 

요즘 새벽도 하고 여기 좀 일찍 올라오면 여기 와서도 계속 읽으면서 기도하고 해요. 그중에 하나가 끝까지 영원 구원한 자리에 있는 것. 이게 제 마지막 제 기도의 제목 중에 하나예요. 제가 이렇게까지 하려면 어떻게 해요?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지배 아래 있어야 가능한 거죠. 내 육신의 힘으로는 끝까지 복음을 위해 살 수는 없어요.

 

여러분이 가진 여러분의 에너지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어요. 그리고 성령 충만해야 전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긴 장정에 6주간의 이제 예배 학교를 마치고 하나만 권면하고 잠깐 기도하려고 합니다.

 

저는 예배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이런 거죠. 예배를 정말 잘 드리고 싶다 그게 제 꿈이에요.

근데 어떻든 그래도 우리 교회가 다는 아니겠지만 어떻든 많은 교회들보다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회는 맞아요. 어떤 찬양단도 잘 세팅해서 하고 또 우리처럼 예배 전에 한참 전에 와서 이렇게 예배를 기도하고 있고 이렇게 하는 교회가 흔하지는 않아요.

 

저도 일단 본당에 일찍 와서 계속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고 여러분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게 예배여야 되는 거죠. 가장 전문적인 게 예배여야 돼요.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여러분과 저는 예배의 전문가가 되어야 내가 하나님의 세우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요. 예배케 위해서 부름 받은 존재니까 하나님을 찬송케 하려고 부름받은 존재인 거잖아요. 그 찬송의 집합체가 곧 예배인 거예요. 그럴 때 이 이후로도 마찬가지로 

 

제가 예배를 위한 많은 좀 에너지를 쏟아부을 거예요. 그때마다 여러분의 마음을 좀 모으셔서 우리가 더 나은 하나님이 받으신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이 더 기뻐한 예배를 드리자 이렇게 마음을 모으시고 또 여러분에게 권면을 하고 이렇게 할 때 잘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예배를 마칠 때마다 여러분의 영혼의 만짐이 있고 예배를 드리고 나면 지난 한 주간의 삶에 대 요독이죠. 인생의 독들이 다 이렇게 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막 고민하던 문제가 예배를 통해 해결을 받기도 하고 예배를 통해서 정말 하늘 문이 열리는 것도 경험을 하고 갑자기 막 말씀이 확 깨달아 여러분 정말 예배를 통해서 신기한 일이 일어나요. 

 

어떤 선교사 후보생이 이제 선교가기 싫은 거예요. 그때 이제 그래서 그때는 교회가 고정적이지 아니라 가지고 계속 이 교회 다니고 예배하고 저 교회가 예배하고 그런데 이 교회를 가도 선교에 대한 말씀이고 저 교회를 가도 선교에 대한 말씀이고 그래서 결국 이분이 선교의 자리로 갔어요.

 

여러분 예배에는 이런 답이 있어야 돼요. 근데 그거는 우리가 예배의 마지막 단추인 성령 충만해서 예배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우리 안에 우리 교회 안에 이런 예배가 드려지고 또 올려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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