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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대구신은교회 2026.06.14. 주일예배 설교 전문: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살전4:13-18)

작성자박성병|작성시간26.06.17|조회수30 목록 댓글 0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차고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눕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참 이상한 마음이 한 가지 있습니다. 좋은 것을 10가지를 들어도 걱정거리가 하나 생기면 좋은 것 다 사라지고 그 걱정거리 하나만 본다는 것이죠. 

 

여러분 누군가가 나에게 칭찬을 아홉마디 해준다 할지라도 나에게 비판 한마디가 쏟아지면 9마디의 칭찬은 다 사라지고 비판의 소리만 내 귓가에 들리게 되는 것이죠. 그것만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요. 감사보다는 염려가 더 오래 남아 있습니다. 감사가 오래 남으면 좋은데 그건 짧아요. 염려는 굉장히 오래 남죠. 행복이라는 것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뉴스를 틀어 놓고 보면 경제가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라가 어렵다고 이야기하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저쪽에서는 전쟁이 이제 마무리되어 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제나 불안한 상황 가운데 있으니 또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나름대로 건강을 챙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바라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죠. 노후 대책도 세워야 됩니다. 등등 우리가 해야 될 일들 생각해야 될 거리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늘 말하는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괜찮을까 잘 되겠지 뭐 이런 염려 걱정 속에서 사는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요즘 사람들이 만나면 하는 인사가 무엇인가 이렇게 보았더니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요. 

 

별일 없으시죠? 여러분 별일 없으시죠? 별일 있으신가요?

 

여러분 별일 없으시지요라는 이 인사의 속에는 뭐가 담긴 줄 아십니까?

 

별일 없는 것이 복됩니다.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하도 별일이 많으니까 별일 없는 것이 복되다. 

 

여러분 옛날에 우리 어른들 만남의 인사가 뭐였습니까?

밥 묻나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이유가 뭡니까? 

 

그때 먹고살 길이 없으니까 밥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었다. 그래서 밥 먹는 걸 서로 챙겨주면서 밥 먹어야지 밥 못나 그러면서 우리가 살아갔던 것이죠. 

 

그런데 요즘은 그렇다는 거예요. 건강이 괜찮으시냐 아니면 요즘 별일 없으시냐 그만큼 시대가 불안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을 이렇게 펼쳐놓고 보면 순간순간 흔들림이 없는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죠 과거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시절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또 앞으로 살 날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흔들림이 없을 거라고요?

 

아니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들로 인해서 우리는 자꾸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억해야 될 것은 성경은 단 한 번도 세상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말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죠 오히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더 많이 흔들릴 것이다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흔들리느냐 안 흔들리느냐가 아니라 세상이 흔들려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거. 그렇죠 세상은 아무리 흔들려도 예수 믿는 우리는 흔들리지 않아야 되는 것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하나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우리는 어떻게 안 흔들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바울은 그 답을 재림 신앙에서 찾아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신다는 사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이 사실을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않는 인생으로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래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준은 그거예요. 세상은 흔들리지만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면 죽음 앞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우리 13절 말씀을 한번 큰 소리로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꼽는다면 소망 우리 한번 따라해 봅시다.

 

소망 

 

여러분 바울은 그냥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말아라.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도도 슬픕니다. 여러분 목회자도 슬픕니다. 그렇죠 예수를 믿어도 사람하고 이별하는 그 순간을 슬프지 않다. 누가 말할 수 있겠어요? 사람과 이별할 때는 슬픔의 눈물이 흘러야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장례식장에서 우는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믿음과 결부될 수 있습니까?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는 것 그것 믿음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도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 가장 짧은 구절인데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그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그러면 예수님은 믿음이 없으셔서 우셨을까요? 

 

아니죠. 예수님도 죽음 앞에서 슬퍼하셨기 때문에 오셨다는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바르게 알아야 됩니다. 죽음을 대하는 성도와 세상의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대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대하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대하는 것이 다르다. 눈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거예요. 눈물은 다 같이 있어야 돼요. 

 

얼마나 슬픕니까? 얼마나 마음 아픕니까?

 

울어야죠. 그러나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소망이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오늘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죠. 슬퍼할 수 있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같이 슬퍼하지는 말아라. 같은 슬픔이지만 소망이 있는 슬픔과 소망이 없는 슬픔은 다르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다를까요? 

 

여러분 소망이 없는 슬픔은 그냥 슬픔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소망이 있는 슬픔은 무엇입니까? 슬픔으로 시작했지만 기쁨으로 변화되어지는 것 여러분 이것이 바로 소망 없는 자의 슬픔인 것이죠. 

 

당시 데솔로니카 교회 성도들에게 혼란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재림 신앙이 있었어요. 주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살아 있을 때 오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주님 곧 오시지. 우리 주님 곧 오시는데 이렇게 살면 안 돼. 믿음으로 살아야지. 그래서 자신들이 생명이 있을 때 주님 가신 그대로 오실 거라고 기대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고 내가 지나가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성도들의 가족들이 죽기 시작합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죽기 시작합니다. 성도들이 죽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자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흔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먼저 죽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주님 재림하시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 함께 주님께로 가야 되는데 먼저 죽은 사람들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재림 때 저들은 죽었는데 참여하지 못하는 거 아니야?

 

여러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거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것이 없으니까 

 

야 내가 살아있을 때 주님 오시면 이대로 내가 천국 가면 되는데 도대체 죽은 이유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들에게 바울은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왜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오늘 본문에 뭐라고 말합니까? 죽은 자들이라고 합니까? 

 

아니죠 

 

뭐라고 돼 있어요?

 

잠자는 자들 자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동묘지 공동 묘지 알죠? 그 영어 단어가 세머테어리라는 단어인데 여러분 이것은요. 헬라어 코이메테리온이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 잠자는 곳 잠시 쉬는 곳이라는 뜻이라는 여러분 그들이 왜 그렇게 불렀을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무덤을 인생의 마지막 장소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부활의 몸을 잊고 일어나 그래서 잠시 쉬는 곳, 잠시 잠자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잠자는 자의 특징을 생각해 볼 필요 있죠. 잠자는 자는 무슨 특징이 있습니까? 끝이 아닙니다. 잠자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죠. 잠시 쉬는 상태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 안에서 잠자는 성도들은 영원히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부활의 아침에 모든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여러분 예수님 공생애 당시의 사역들을 이렇게 쭉 살펴보면 여러 가지 사건이 있지만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의 그 사건을 여러분 기억하시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던가요? 

 

다 비웃었습니다. 아니 죽은 거지 어떻게 잔 거야라고 말하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달리다굼 소녀여 일어나라. 

 

소녀여 일어나라. 그 주님의 명령 앞에 죽었던 아이가 어떻게 됐어요?

 

일어났다는 거예요. 나사로도 그랬죠.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사람들이요. 썩은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했어요. 다들 웅성웅성거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덤 앞에서 외쳤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러자 죽었던 나사로가 몸에 칭칭 감긴 채로 걸어 나오시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죽음보다 크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한마디로 죽었던 자가 일어나는 은총이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그 주님의 능력을 바라봐야 되는 거죠. 우리 주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첫 열매 되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래서 바울은 14절에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우리가 믿을진데 그것을 기초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 우리의 소망은 천국이 먼저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망이 천국에 있지만 천국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의 소망이 부활하신 예수께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도 살아날 것을 믿는 것 거기에 소망이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무덤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무덤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 신앙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바뀌는 신앙 할렐루야 따라서 성도는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 너머를 보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장에 가보면 세상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 곡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이제 가면 언제 옵니다 언제 옵니까? 

 

주님 오시는 날 옵니다. 다 함께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는요 이제 끝이다가 아니라 다시 만날 날이 있다고 고백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가족 중에 먼저 보내시고 아직도 마음 가운데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재림 신앙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에요. 다시 만날 그날을 소망하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자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은 흔들려도 우리가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은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 너머에 있는 소망을 보기 때문이 바라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의 여정 죽음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 있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가지고 사는 존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세상은 변해도 주님의 약속을 더 믿기 때문이 세상은 변합니다. 이걸 인정하자고요. 그러나 변하지 않는 주님의 약속을 믿자는 것이죠. 

 

16절 말씀 우리 한번 읽어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여러분 이 구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다면 진희라는 바울은 그냥 주님이 오신다고 말하지 않고 주께서 친히 강림하신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대단히 의미 있는 표현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천사를 대신 보내겠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죠 누군가를 대표해서 보내겠다 말씀하지 않고 친이 직접 강림하시겠다.

 

여러분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친히 오십니까? 

 

약속 때문이죠. 약속 여러분 2주 전에 우리가 보았던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으로 너희를 있게 하리라 내가 온다고 말씀을 해 주셨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너희가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오시겠다 약속을 하셨던 것이죠. 이처럼 예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들은 약속을 잊습니다. 그렇죠 약속하고도 못 지킬 때가 부지기수고요. 또한 약속하고도 임의로 바꾸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약속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친히라고 표현한 이 말씀은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오시겠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흔들리지 않는 이유 눈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나 크게 보이지만 그 현실보다도 약속을 믿을 때에 이길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사실 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많이 불안하세요?

 

그러죠 앞으로 도대체 뭘 해 먹고살아야 되나 아니면 뭐 AI가 다 하는데 그렇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제는 더 없는데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면서 우리는 불안해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죠. 이게 눈에 보이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재림 신앙은 이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는 자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재림 신앙을 가지고 이 세상의 현상, 이 세상이 변화되어지는 모습보다도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존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저쪽에서 걸어오실 때 그 배 위에서 이야기하시 주님 주님이시라면 나로 걷게 하옵소서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가 그 물 위로 갈 수 있었던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가 수영을 잘해서였을까요? 그가 뱃사람이었으니까 너무나 담대해서 거기에 뛰어들었을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풍랑 때문에 사네 죽네 막 그러고 있었잖아요. 왜 그는 그 자리로 갈 수 있었던가 예수님의 말씀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어요? 

 

오라 예수님이 오라 하신 그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발을 내딛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빠졌습니까? 예수님보다 파도를 봤을 때 예수님을 보았을 때는 빠지지 않아요. 그런데 파도를 보기 시작합니다. 바람을 보기 시작합니다. 상황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는 물속에 빠져들게 된 것이죠.

 

여러분 실제적으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파도는 우리를 흔듭니다.우리 인생 가운데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를 흔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터지는 문제 문제들은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의 법칙이라는 거예요. 따라서 신앙은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보는 것.

 

할렐루야 여러분 환경 속에 살지만 그 환경 속에서 주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을 붙잡고 사는 존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앞에서 죽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빈자리가 보이는 거예요. 불안한 현실이 그들의 삶 가운데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주님 친히 오신다.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하실 것이다.

 

이 말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있던 그 시선을 하나님께로 볼 수 있도록 선포해 주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시선이 바뀌어야 돼요. 우리는 평소에 일주일 동안 살면서 세상 보면서 삽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세상을 보던 그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릴 수 있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따라서 재림 신앙은 현실을 부정하자. 이런 신앙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큰 약속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이것을 붙잡는 것이죠. 

 

그래서 깨어 있는 사람은요. 세상이 흔들리면 어떻게 합니까? 거기에 막 흔들리는 게 아니라 말씀을 붙잡아야죠.

 

할렐루야 세상이 흔들릴 때 말씀을 붙잡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불안하면 어떻게 해야 돼요? 거기에 불안해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거죠. 이 불안함이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내가 깨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죠. 세상이 우리의 상황을 어렵게 할수록 어떻게 해야 됩니까?

 

더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으로 나에게 약속하셨던가 그래 상황은 이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이러니 이 말씀 붙잡고 내가 이기리라.

 

왜 그렇습니까? 

 

변하는 세상보다 변하지 않는 주님의 말씀이 더 확실하기 때문에 그래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삶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나는 무엇 때문에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까? 

 

어떤 분은 경제 때문에 나에게 어려움이 찾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의 문제, 어떤 분은 자녀의 문제, 어떤 분은 미래의 문제가 있겠죠. 이 시간을 통해 여러분 그렇게 찾아오는 파도 앞에 무릎 꿇고 넘어져 있지 마시고, 그 파도 앞에서도 그 바람 앞에서도 약속하신 주의 말씀을 붙잡는 그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그 나의 삶 가운데 상황 앞에 지쳐 있는 인생 되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번에 월드컵 송 DNA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 가사가 나와서 다시 일어나 다시 일어나 이렇게 하는데 우리 인간의 DNA가 다시 일어나는 DNA다. 이제 그렇게 해서 노래를 만든 것 같은데 여러분 그것은 세상의 가치지만 우리는 뭐 때문에 내려갑니까?

 

예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상황 가운데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이 고백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한 주의 삶이 평안할 것이고 기쁨이 넘칠 것이고 찬미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성도님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분명히 말씀합니다. 주께서 치니 강림하시리니 할렐루야 이 약속을 온전히 믿음으로 세상이 아무리 나를 흔든다 할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거 우리 18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니다. 시작.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오늘 본문에 보니까 재림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 짓지 않았던 거예요. 바울이요. 아주 중요한 명령으로 마지막을 내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바울이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쭉 쓰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뭘 할까 매우 중요한 말이거든요. 고민되지 않았겠어요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이 성도들에게 뭐라고 권면해 주면 가장 좋을까를 생각했겠죠.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쓴 것이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그렇게 말합니다.

 

참 놀랍죠. 재림의 때가 있으니까 잘 준비해라. 이게 더 어쩌면 가까울 수 있고요. 깨어 있어라. 이것도 될 수 있고 아니면 날 수를 계산하면서 살아라. 그렇잖아요. 우리의 인생 끝이 있고 재림할 때가 있는데 그런데 희한하게도 서로 위로하라 그렇게 권면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여러분 재림 신앙의 목적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재림신앙은요 혼자 버티는 신앙이 아닙니다. 함께 붙드는 신앙이고 함께 위로하는 신앙이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그 길고 긴 여정을 가면서 믿음의 성도들이요.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세워가면서 하나님의 그 거룩한 자리에 갈 때까지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공동체가 되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뭐든지 그래요 혼자면 외롭고요. 혼자면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와 함께하고 나를 도와준다면 나를 위로해 준다면 우리는 일어날 힘을 얻게 되는 것이죠.

 

초대교회 성도들은요. 정말 어려운 시대를 살았어요. 그런데 그들이 서로를 향해서 했던 인사가 무엇이냐 마라나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 힘을 얻은 거예요. 힘드냐 말아놨다. 어렵냐 말하나 다 낙심되냐 마라나타 주님이 오신다. 그러니 우리 이기자 이기며 살 수 있다. 그렇게 서로를 세워간 것이죠.

 

그러니까 그들이 여러분 핍박을 받아도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마라나타 고난이 있어도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마라나타 죽음이 찾아와도 가장 극한 상황 아닌 그 가운데도 말합니다. 이제 졸릴 때가 됐으니까 제가 선택을 하면 여러분들은 후창으로 마라나타만 외치시면 됩니다. 

 

아셨죠? 

 

어려운 건 아니니까 제가 선창을 하면 여러분 마라나타를 외쳐주십시오. 여러분 핍박이 있어도 할렐루야 고난이 있어도 시험이 있어도, 아픔이 있어도, 낙심이 있어도, 실망이 있어도 죽음이 있어도 이 신앙 가지고 사는 거예요.

 

여러분 옆에 성도가 힘들어 하니까 나 주님 오십니다. 우리 함께 힘써 봅시다. 일어나 봅시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 이게 신앙인의 삶의 모습, 공동체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다른 이유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그것을 붙잡아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죠.

 

여러분 누구나 혼자 있으면 쉽게 흔들립니다. 쉽게 낙심하게 됩니다.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 함께 예배하라고 할렐루야 함께 기도하며 함께 위로하라고 우리를 모아주셨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여러분 위로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힘들 때 내 영적으로 힘들고 마음적으로 고난이 있을 때 아무리 돈을 많이 가져다 줘도 그거 위로 안 됩니다. 물론 잠깐 위로될 수 있겠지만 여러분 그것은 위로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옆에 우리 성도님들, 우리 집사님 권사님들 집사님 괜찮으세요? 제가 기도할게요. 힘냅시다. 위로할 수 있어 그 한마디가요. 여러분 생명을 살리는 거예요. 그 어려움 가운데 그래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우리 권사님이 계시네, 나를 위해서 그렇게 눈물 흘리는 우리 장로님이 계시는 분 여러분 그 마음 때문에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공동체의 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2026년도 우리 교회 주제 무엇입니까?

 

함께 울고 함께 즐거워하는 이 말씀이 너무나 마음 가운데 떠오르기도 여러분 함께 천국을 바라보는 공동체, 함께 재림의 소망을 붙드는 공동체 여러분 이 공동체가 힘들 때 붙들어주고 넘어질 때 일으켜주고 낙심될 때 위로해 주는 공동체가 될 수만 있다면 그런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까?

 

저는 기도합니다. 소망합니다. 

 

하나님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힘들 때 찾는 곳, 어려울 때 붙잡는 곳, 낙심될 때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면서 힘을 실어주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이 흔들릴지라도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더욱 교회에 보이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세상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시고, 세상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서로를 더 붙잡아줄 수 있는 정말 사랑과 겸손과 은혜가 풍성한 그러한 우리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주님 다시 오십니다. 주님 다시 오십니다. 그날까지 우리 함께 세워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래서 바울이요 마지막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면서 야 그래 이것도 중요한데 너희 서로 위로하면서 살래 낙심대면서 힘들어하지 말고 서로 위로해 줘. 그러면 그 위로의 힘으로 우리 함께 승리할 수 있어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그렇죠 그 분명한 말씀 앞에 우리가 서로 위로하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세 가지 단어를 제가 알려드릴게요. 기억하십시오. 첫 번째 뭐예요? 

 

따라 합시다. 소망, 소망, 두 번째는요? 다 잊으셨죠? 가르쳐드릴게요. 

 

약속 약속 세 번째는 뭐예요?

 

마라나타 한마디로 위로 우리 위로합시다. 위로 소망과 약속과 위로 이 말씀이 오늘 핵심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소망이 있어야 됩니다. 죽음 너머에 있는 소망을 보십시오. 약속을 붙잡으십시오.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서로 위로하십시오. 그러면 어려운 시대에 우리 힘 있게 살 수 있게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나타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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