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 귀한 찬양 불러주신 기드온 찬양대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주일마다 예배드릴 때 또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이 울려퍼질 때 우리는 우리 영혼은 새롭게 회복되고 또 어둠의 세력, 사단의 세력은 무너집니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확장될 뿐만 아니라 이게 한 번 두 번 반복되면서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문명이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가지고 찬양을 하고 예배를 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주기도문 미셔널 주기도문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기도는 생존과 관련된 기도입니다. 우리의 생존 주로 생존이라 하면 이제 육체적 생존입니다. 먹거리 문제 좀 고상하게 말하면 경제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실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경제로 귀결됩니다. 전쟁도 국가 간의 전쟁도 여러 가지 명분이 있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경제입니다. 이란과 같은 철권 통치, 종교적 신념으로 다스리는 나라도 경제가 무너지면 저항을 받습니다.
전쟁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경제 패권 그것이 더 중요한 직접적인 요인입니다.
우리도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이런저런 인생의 과제들이 있지만 가장 기초적이고 또 매우 중요한 것이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먹거리 문제 이게 해결이 돼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스도인은 이 문제를 기도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기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응답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너희는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 달라는 기도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을 넘어섭니다. 기독교인의 경제관이 어떠해야 하는가 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 이 기도 안에는 기독교의 확장의 요소, 기독교가 부응하고 확장됐던 그 요인, 또 문명의 변화, 하나님 나라의 선교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의 경제적 비밀 등에 관한 다양한 요소들이 오늘 이 짧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한마디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생존을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이 생존을 위한 그 기도조차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번 그 말씀을 살펴보면서 오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일용할 양식. 간단히 말하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과 같은 거예요. 그리스도인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양식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일용할 양식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 주님은 그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서 공급 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라. 하나님을 믿으라.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먹고살 만할 때는 믿어져요. 그런데 절박한 상황 벼랑 끝에 섰을 때도 과연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그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하나님이요?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근데 이게 어렵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키셨어요.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40년 광야 생활 거기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가르치신 것이 뭡니까?
40년 동안 광야를 돌리시면서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누누이 가르치셨던 그것이 뭐냐 일용할 양식을 내가 너에게 주겠다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책임진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는
그래서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난에서 나는 소출을 먹기 전까지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셨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주신다고는 하시지 않았어요. 어느 나라든지 어느 백성이든지 부자도 있고 중산층도 있고 또 가난한 자도 있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그 약속을 하시지 않은 거예요.
예수 믿어라 그러면 모두 부자 될 수 있다.
그것은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예수 잘 믿는 사람 중에도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부자를 만들어주지는 모두를 부자로 만들지는 않지만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겠다. 그게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굶어 죽을 염려는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매일의 양식, 일용할 양식은 생존의 기반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생존이 위협받습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난 광야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이것저것 챙겨 가지고 왔지만 자신들이 챙긴 걸로는 멀리 가지 못해요. 조금 지나니까 물도 떨어지고 고기도 떨어지고 먹을 양식도 다 떨어집니다. 그리고 앞으로 39년을 살아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삽니까?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일용할 양식이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만나가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며칠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39년을 어떻게 살아요?
하나님께서 39년을 만나로 먹이셨어요. 그게 오늘 주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만나로 먹이셨던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에는 일용할 양식으로 먹여주신다. 주님의 제자들이 제자들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겠다 기도하라고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 백성의 생존을 책임지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없어요. 참 신기하잖아요. 농사 지을 곳도 없고 거기는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죽은 것은 불순종 때문이에요. 범죄했기 때문이에요. 우상숭배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어떤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어떤 소출이 없는 그 광야에서 그들 중에 그 누구도 굶어 죽은 사람은 없어요. 왜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반이 흔들릴 때 먹거리 문제로 여러분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건 책임져 주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거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지 않고 우리가 굶어 죽는다.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을 수 있을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성경 말씀대로 믿자면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은 주신다.
저는 30년 전에 파리에 왔어요. 빈손 들고 왔습니다. 제 아내가 고등학교 선생이었는데 그 연금 교원 연금을 털어가지고 다 와서 써버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대로 놔둘걸 그것보다 좋은 연금이 없다는데 근데 알아서 해야지 그걸 있는 거 다 털어 써야 되는 그런 시절 IMF가 오고 정말 벼랑 끝에 섰습니다.
개척을 할 때는 이 캄캄했어요. 다음 달 월세는 어떻게 내는가 다음 달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해야지 한국에서 저를 후원하던 교회에서 3개월 연장해 줬어요. 3개월 그러면 다 끊어지는 거예요. 애도 있죠. 막막한 거예요. 어디 여기서 땅을 팔 수도 없고, 교회를 개척하면 누가 교인들이 어디 온다는 보장도 없어요. 어디 가 전도할 수도 없어요.
그러던 중에 제 서재에 있던 로닝 커닝 엠 예수전도단 창립자의 벼랑 끝에 서는 용기라는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옛날에 읽다가 덮었어요. 맨 돈 얘기밖에 없어 무슨 얘기냐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벼랑 끝에 세우시고 믿음으로 발을 내딛으면 하나님이 그때부터 채우신다. 얄밉잖아요. 내딛기 전에 채워주셔서 하시면 좋은데 내딛으면 다 그런 얘기라 덮었어요.
근데 그때는 절박하니까 그걸 펴서 읽는데 믿음이 쑥 들어온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내 인생을 진짜 책임지시는 걸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한 달이 뭡니까?
바로 내일 일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알았던 어느 집사님이 연락이 왔어요.
어느 목사님도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그 집사님이 목사님이 개척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국에서 50만 원씩 보내겠다고 또 어떤 분은 20만 원 보내겠다고 이렇게 하면서 채워지는 거예요. 너무나 막막했는데 저는 그때 제가 요청한 것도 아니고 편지를 보낸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것을 그때 보게 됐어요.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남 얘기 같지만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큰 부자가 되게 하지는 그렇게 하시면 좋겠죠. 그러나 혹시 안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으로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는 거예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건 주시겠다. 또 일용할 양식 속에는 그 양식을 나누며 살라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 플러스 알파가 있어요. 우리가 살다 보면 아무리 부자라고 10끼 먹는 거 아니잖아요. 뭐 재벌 회장님이라고 하루에 20기 먹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에게 일용할 양식 플러스 알파를 어떻게 하라는 거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은 나누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게 일용할 양식의 의미입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여러분 기도할 때는 내게 필요한 것을 주세요라고 끝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조심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 기도를 하는 순간 일용할 양식 플러스 알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라는 나누겠다는 그런 기도이기도 합니다.
아멘 이게 잘 아멘 나오기가 일부 예배 때도 이 부분은 아멘이 안 나오더라고 주시옵소서 여기까지는 좋은데 플러스 알파는 나누라고 하니까 그게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러나 그걸 나눠야 나눠야 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쌓아두면 곰팡이 같습니다. 만나는 일용할 양식을 주셨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플러스 알파를 갖다가 챙겼더니 그것이 벌레가 생겨가지고 곰팡이가 나가지고 자신도 못 먹고 그 공동체를 더럽게 만드는 거예요.
초대교회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는 공동체였습니다. 사도들은 그것을 다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줬습니다. 누구도 강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플러스로 하나님이 주신 것은 기꺼이 나누는 삶을 산 거예요. 사도행전 4장 35절에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에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그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복음을 향해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구제 이웃을 향한 나눔은 그것은 육체의 필요를 채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해요. 그래서 생명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경제학이에요.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 일용할 양식을 주시면 그것을 가지고 사용하고 플러스 알파는 나누기 위한 계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자신들의 양식을 삼았을 뿐만 아니라 남은 것은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서 내어놓고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스콧 라트렛이라는 예일 대학의 선교 역사학 교수는 이분의 제자가 연세대학의 백낙준 박사입니다. 그분이 들어와서 연세대학교의 사관을 만들었어요. 근데 이분이 이 라트레 박사는 그는 역사학자이면서 선교학자이기도 해요. 이분이 초대 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분석을 해봤더니 마지막 내린 결론이 이거예요.
초대교회의 파워가 어디에 있었느냐 나눔에 있었다.
그들의 경제 구조는 경쟁이 아닌 공동체적 상호 보완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이 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가난한 자도 없고 부한 자도 없는 거예요. 부한 자들이 자기 것을 나눠서 가난한 자들의 것을 채우고 또 그것을 이웃에게 나누는 역사가 있었어요. 그것이 초대교회 파워였고 그것이 기독교가 복음이 확산되는 요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많이 소유한 것을 성공으로 보지 않았어요.
오늘날 우리는 성공의 기준을 뭐라고 봐요? 얼마나 많은 자산이 있는가 많이 있으면 좋겠죠.
그러나 그것이 결코 인생의 성공은 아니라는 거예요. 많은 자산이 없어도 때로는 경제적으로 가난해도 성공한 인생이 있다는 거예요. 많이 가졌어도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성공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냐? 자신의 것을 기꺼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됐고 그것에 의해서 로마가 그리고 유럽이 뒤집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일용할 양식, 매일 필요한 양식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약속이에요. 이것은 하나님께 그렇게 안 하시면 따져도 괜찮아요. 주님의 약속이에요. 너는 이렇게 기도해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주님이 가르치셨어요. 우리는 그렇게 해서 받은 것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이 주셨는데 자신을 위해서도 못 쓰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도 투자할 필요가 있어요.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서 살고 학기 말을 보냈다든가 아니면은 어떤 자기가 계획했던 과업을 완수했다든가 그런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걸 가지고 자기를 위로하고 선물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또 사보기도 하고 야 너 그동안 수고했어 이렇게 하면서 자신을 누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누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면 안 돼요.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을 자발적으로 이웃을 생각하면서 흘려보내야 돼. 내가 누릴 때 누구하고 이걸 같이 누리고 싶다 하는 생각이 번뜩 들어야 그게 크리스천의 스피디시라는 거예요. 그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멋있어요? 우리 선한 교인들은 그런 교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미국 갔다가 저희 사촌 가족들을 만났어요. 근데 제 여동생 사촌 여동생은 옛날에는 그렇게까지 신앙생활을 잘한 것 같지 않은데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부부가 너무 신앙생활을 잘하는 거예요. 너무 이뻐 죽겠어요 만나면 대화가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교회에 대한 헌신
근데 큰누님이 계신데 거기는 정말 부지런하게 일을 해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아주 성공한 사람이에요. 아들도 라스베가스에 와서 여러 개의 식당을 하고 막 빌딩까지 구입했대요. 그래가지고 아들이 엄마한테 한 달에 천만 원씩 용돈을 준대요. 부럽더라고 그거 그 대목은 부럽더라고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아들 말해놓고 나니까 좀 그러네. 괜찮아요. 하나님이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거니까 주고 계시니까 뭐 누구를 통해서 주시든 하여튼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이분은 이제 우리 누님은 큰누님은 80쯤 되신 분이에요.
근데 지금도 일만 해 그렇게 예수 믿으라고 해도 교회는 몇 번 갔는데 아이고 예수 믿어야지 교회 가야지 이러면서도 못 가는 거예요. 그리고 너무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돈이 많이 있는데도 자기를 위해서는 뭐 좋은 거 하나를 못 먹어 몸이 망가졌는데도 지금도 그 시장에 나가서 일을 해야만 되는 거 예수도 안 믿죠. 죽은 후에 미래도 준비 안 됐죠. 그 많은 돈 자기를 위해서 하나도 쓰지 못하죠. 자기를 위해서 못 쓰는 분이 어떻게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겠어요? 쌓다가 가는 거예요. 너무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돌아왔어요.
첫째는 예수 믿게 해야 되겠다 하여튼 만나서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라고 얘기를 해놨어요. 자신을 위해서도 쓸 줄 알고 또 이웃을 위해서도 쓸 줄 알아야 돼요. 그것만이 내 거예요. 원래 그 은행에 쌓아놓으면 다 은행 거예요. 은행이 다 그거 가지고 자기들끼리 이자 놀이하고 나중에 내가 죽으면 누가 가져갈지 몰라요. 내 확실한 내 것은 내가 쓴 거야. 나를 위해 썼던 이웃을 위해 썼던 내가 쓴 것만 내 겁니다. 꼭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일용할 양식의 의미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실천할 때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내 삶도 윤택하게 되고 또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발생하고 그 힘으로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기적이 일어나는 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고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라고 말씀하신 우리에게 이 기도는 철저하게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조차도 나만을 위한 것이 되면 안 된다. 내 양식, 내 건강, 내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양식, 우리의 건강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돼야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기도를 우리가 드릴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개인적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개인적으로 받아야 돼요. 우리 어머니가 잘 믿었다고 내가 천당 가는 거 아닙니다. 언젠가는 각자 자기가 고백해야 돼. 그래서 철저하게 개인적입니다. 그러나 더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공동체적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 얻는 순간 우리는 공동체 안에 속하게 되는 거예요. 개인이 잘 되는 목적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고 또 공동체가 잘 되어야 개인도 행복해지는 거예요.
이건 동전 앞면 뒷면과 같은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선택을 하지만 우리가 그 이후로 살아가는 모든 것은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 잘 되는 것을 너무 부러워 하는 건 괜찮은데 시기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요. 그 사람이 잘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복이에요.
근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나는 프랑스 분들은 잘 모르겠어요. 한국 사람들은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대요. 여러분 그렇습니까?
사이 사촌이 땅을 샀는데 왜 내 배가 아프지? 그게 우리가 너무 좁은 땅에서 살면서 지나친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지나친 경쟁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닌가 아마 프랑스 분들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근데 우리는 하여튼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렇죠 이분들은 하여튼 우리는 그래 누군가가 잘 되면 그걸 가만두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모두에게 공격의 대상이 돼버 사람이 태어났는데 부자 부모에게 태어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죄예요? 그렇죠 열심히 살았는데 어떤 사람은 열심히 살았는데 부자가 못 될 수도 있어. 근데 어떤 사람은 다 이게 맞아가지고 부자가 돼요.
그럼 죄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상한 성숙하지 못한 시민사회가 돼가지고 부자를 죄인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요. 부자 교회에서는 부자 얘기도 못 꺼내게 해. 부자는 부자가 천국 가는 건 바늘귀로 낙타가 들어가는 것 같아 그만큼 어렵다는 거예요. 부자가 자기 마음을 지키기가 그렇다고 해서 부자를 예수님이 저주하신 건 아닙니다.
어느 날 태어났는데 강남에서 태어났어 이게 무슨 죄야? 그런데 공격을 받을 수 있어요. 그게 하여튼 묘한 사회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는 자신도 부자 되기를 원해요. 그러면서도 부자를 보면 부덕구덕한 것처럼 대하고 저주합니다. 사실 못난 사람이고 또 그런 사람은 복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 이제 가령 교인 중에도 그렇고 우리 공동체 우리가 한인 공동체 중에도 어떤 사람은 나보다 잘 살 수 있어요. 이럴 때 축복해주고 부러워하고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얼마나 그걸 위해서 노력했습니까? 또 참 나는 저도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당신은 금수저로 태어나서 참 좋겠습니다. 이렇게 축복하는 멋있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돼요.
또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지 말아야 됩니다. 졸부들은 또 조금 경제적으로 피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람 취급을 안 해요. 그것도 되게 웃기는 일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지면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한 100억 있다고 인생의 가치가 올라갑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 앞에 가서 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돈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아닙니다. 거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깨끗한 부자, 겸손한 부자,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책임감을 책임을 지는 부자가 돼야 돼요.
미국은 그런 부자들이 꽤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보니까 릴리라는 재단이 있는데 그 재단은 크리스천 재단이에요. 그런데 이분이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어떤 일을 하냐면 여러 신학교라든가 아니면 어떤 공공 단체라든가 이런 것들을 매년 선발을 해가지고 그 기업에서 계속 100만 불씩 막 이렇게 지원을 해요.
이번에 어느 학교도 작년에도 지원을 받았고 금년에도 지원을 받으려고 서류를 넣었다고 들었어요. 자기들이 번 그 재정을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또 선한 일을 위해서 기꺼이 쓰려고 하는 그런 책임감 있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이런 부자가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조금 있다고 그거 가지고 힘주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그것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그런 부자가 진짜 부자예요.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그런 재물을 허락하셨다면 이웃과 나누며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을 실현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 그런 초대교회 공동체였습니다.
나트렛 박사가 초대교회를 이렇게 분석했어요. 기독교는 공동체적 삶의 방식 자체가 복음을 확장시키는 선교의 도구가 되었다. 자기 혼자 살지 않고 서로 나누는 삶이 복음을 이에 이방 땅에 전달하는 그런 도구가 되었다는 겁니다. 가난한 자는 부자를 존중하게 되었고 부자는 자신의 것을 풀어서 가난한 자들을 도왔습니다. 그게 초대교회고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선교의 동력이 거기서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앞으로 더 축복하실 거예요. 골드만 삭스에서 2050년에 세계 순위를 먹였더니 우리나라 2위가 됐다고 하잖아요. 여러 가지를 다 따져서 하여튼 그렇게 수산을 했어요. 그러니까 미래가 밝아요.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축복하실 걸로 믿어요. 왜 축복하시느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이웃과 부지런히 나눠서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누가 공급하느냐 하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일했지만 그것을 공급해 주시는 이가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계획하고 관리하지만 공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삶의 주도권, 우리 경제의 주도권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다윗도 성전을 위해서 그 헛물을 봉헌한 다음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것 같지만 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리면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변인이었고 약자였습니다. 가진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통해서 세상이 변화되었어요. 부자들은 자신들의 것을 기꺼이 나눴고 가난한 자들의 삶이 회복됐고
또 안디옥교회는 자기들도 힘들었거든요.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종교적 난민이에요. 뭘 가지고 왔겠어요? 그런데 거기 모여서 열심히 살다가 그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들은 부지런히 헌금을 해서 지금 고통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줬어요. 선교사를 파송해서 그리고 위대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기도와 재정의 후원과 선교사들의 헌신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이 변화됐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문명이 소아시아와 유럽 땅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오늘 이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시옵시고 그리고 그 은혜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우리의 양식을 채워주시는 아버지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 누릴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통로가 돼야 됩니다. 여러분 하실 수 있겠어요? 정말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거 한번 해보시라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그분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시면서 부지런히 흘려보내는 통로로 한번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평생의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졌다고 하는 증언자가 될 것이고,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물 붓듯 부어주시는 누르고 흔들고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저와 여러분들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냥 설교 듣고 끝나지 말고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한번 부지런히 실천해 보세요.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놀라운 경제적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