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읽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짧으니까요.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런데 모든 길이 그 사람에 있으면 새로운 옵니다. 세월은 지나갔으니 뭐라 새것이
아멘 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 나눌까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우리가 합심 기도하면서도 우리 동력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렸지만 정말 기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여러분들 각자도 다양한 기도 제목들이 있으시죠? 그런데 그 기도 제목에다가 우리 사랑하는 동력자들이 또 다양한 기도 제목이 있으니까 더 우리 함께 합심으로 기도하면서 주님 안에서 정말 함께 위로가 되고 힘을 얻는 귀한 여정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서 가끔 신기한 일 소식을 접할 때가 있어요. 어떤 소식이냐면 안타까운 소식이기도 하고 신기한 일이기도 한데, 가끔 평생을 몹시 가난하고 좀 어렵게 생활하던 어르신들이 그 가족들이 이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정리를 하는 과정 속에 구들장 장판 밑에 이렇게 깔아놓은 돈 또는 김치 냉장고에 돈덩어리 이런 거를 발견하면서 언론에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습관적으로 돈을 모으다가 그냥 쓰지 못하고 가셨기도 했겠지만 또 그 돈을 직접 수 쓸 방법을 잘 알지 못하기도 하고 쓰지 못해서 결국에는 가난하게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다가 돌아가시고 그것들이 나중에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들을 우리가 가끔 들을 때가 있습니다.
참 안타깝죠. 그것들을 평생 이렇게 사용하시고 풍요롭게 더 나누고 베풀었으면 그런데 여러분 어쩌면 지금 제가 말씀드린 그러한 내용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발견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믿음과 동시에 놀라운 것들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치 구들장 밑에 그냥 보관하고 전혀 있는 것 같지 않게 살아가는 무엇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꺼내 쓰는 방법을 몰라서 영적인 빈곤함 속에 살아가는 그러한 경우들이 있다는 거예요.
이미지로 이렇게 만들어 봅니다. 침대 저 밑에 구들장 밑에 금은보화를 저렇게 쌓아놨는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네 안 믿으시나요?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이미 임해 있는데 이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마치 저런 모습하고 똑같은 거 아니에요?
구들장 밑에 잔뜩 모아놓고 저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계속 그냥 쌓아놓기만 하고 나는 빈궁한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성경 지식은 있는데 우리의 삶에 그 성경 지식이 적용되지 않고 그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복음을 머리로만 알지 가슴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가 이미 제공돼 있대요.
오늘은 말씀을 통해서 그게 뭔지를 함께 다시 한 번 점검해 가려고 합니다. 두 번째도 이미지를 보세요. 이미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불충전 받았어요. 저 충전은 그냥 떨어졌다가 일어났다 떨어졌다 일어났다 하는 그러한 충전이 아니라 풀충전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은 늘 아무것도 없고 부족한 방전 직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있다면 왜 그럴까?
오늘 한번 이 부분을 고민해 보자고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그 과정 속에 주신 놀라운 은혜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인생에 숨겨져 있는 부활을 발굴하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 가지를 말씀을 드릴 거예요. 첫 번째 우리 한번 따라 해볼까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완전히 용납하셨다.
여러분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우리의 원래 상태 원래 우리는 어떤 상태였냐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원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한마디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였고 또 진노의 자녀였던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다요. 그런데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셨어요.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첫 번째 축복 우리는 진노의 자녀였던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의 영을 받았다라고 로마서 8장 15절에서 말합니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입양하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여러분 입양된 자녀는요. 기존에 있었던 모든 것들은 다 청산된 상태입니다. 새 아버지가 법적 이제 상속자로서 주어집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이미지를 사용해서 우리의 신분의 변화가 이렇게 놀라운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진노의 자녀였던 사람 그런데 하나님의 영을 받아 입양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다시금 머릿속에 꼭 기억하십시오. 이 내용을 이렇게 묵상하는 가운데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분은 이미 두 명의 자녀를 둔 상태였는데 셋째 자녀를 입양을 했어요. 입양도 참 쉬운 결단이 아니죠.
그런데 이 아이가 처음 집에 왔는데 입양된 아이가 처음 집에 오니까 뭔가 낯설고 또 불안함이 이렇게 가득하다 보니까 막 뭔가 불안해하고 막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갑자기 구토를 막 하는 겁니다.
근데 여러분들 아이들 키울 때 이렇게 애들이 막 아프다고 고통하면 그 냄새가 굉장히 비릿하고 굉장히 역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이제 처음 입양한 아이가 갑자기 자기 품에 이렇게 있다가 구토를 탁 하니까 순간적으로 손이 낮은 거예요. 근데 이 아이의 표정을 보자마자 자기가 생각할 때 아차 싶어서 얼른 그 아이를 안았답니다.
그 순간 깨달은 게 뭐냐면 내가 바로 이 아이의 아버지지 그러면서 이 원리가 생각이 나더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떤 조건도 상관없이 나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나를 안아주셨는데 나는 순간 움찔했잖아요. 그 엮여온 냄새와 그 상황 약간 움찔한 그 순간이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의 용납하심에 조건이 없는 것을 감사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 냄새, 실수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뭔가 대단해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자녀가 된 거예요. 이건 놀라운 은혜입니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혹시 이 놀라운 보화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러분 가치를 우리가 보통 평가할 때 뭘로 가치를 평가하냐면 얼마냐 이렇게 평가를 하잖아요.
요 기타는 얼마예요? 이 스피커는 얼마예요?
이렇게 얼마냐에 따라서 가치를 우리가 평가하지 않습니까?
조금에도 이게 비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 이게 귀한 거구나 이렇게 우리가 여기잖아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얼마입니까? 여러분들은 얼마짜리냐는 거예요. 난 1년 연봉이 얼마니까 난 얼마짜리 그렇게 혹시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니죠 원래 우리는 죄에 팔려 있는 존재였는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된 존재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얼마짜리 예수님 자리 우리가 따라 해볼까요?
예수님 자리 이것도 많이 들어봤는데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치가 예수님 자리라고요. 여러분들의 가격표에는 가격이 예수 그리스도로 찍혀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귀하게 여기셔서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면서까지도 우리를 사랑하셨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실까요? 우리를 방치하실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어요.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사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들에게 속삭일 거예요. 니 요즘 이런 상황들을 겪고 있는데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는 것 같아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너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사단은 우리에게 속삭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진리의 말씀을 기억해야 돼요. 하나님은 이미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으면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셨어요. 이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축복이 뭐라고요?
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용납하셨다. 받아들이셨다고 하는 사실, 두 번째 축복은 우리의 정체성의 변화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한번 따라 해볼까요?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포도나무 비유가 있는데요.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멘 여러분 포도나무를 보십시오.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느냐 붙어 있지 않느냐 그거는 너무나도 중요한 거예요. 아주 예쁜 포도나무가 있어요. 네 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저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절대 맺을 수가 없습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는 거는 그 가지의 능력일까요? 아니라는 거예요. 뿌리에서부터 올라오는 수분과 영양분을 그 나무로부터 봤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도 우리가 뭔가를 잘해서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지혜와 용기 때문이 아니라 뿌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가끔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더 노력하면 돼, 더 기도하면 돼, 더 착하게 살면 돼. 물론 그런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것만이 우리의 동력이 된다면 마치 가지가 저 나무를 떠나서 그래도 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시도를 보이는 모습과도 같다고 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를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만드심, 바라 포이에마 바로 걸작품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시시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하시고 만드신 걸작품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 보면서 당신은 걸작품입니다. 걸작품이세요 외모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네 걸작품이에요. 하나님이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걸작품들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창조하신 걸작품이에요. 실수로 어쩌다가 만든 존재가 아닙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빚으신 걸작품입니다. 대량 생산, 대충 대충 찍어낸 그러한 대량 생산물이 아니라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만드신 작품 걸작품들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그런 분도 있을 수 있어요. 나 같은 사람이 걸작품이라고 이렇게 상처 투성이고 이렇게 실수 투성이고, 과거의 실패와 상처가 너무 많아 나는 죄를 너무 많이 지었어.
내 인생은 이미 끝났어. 이생만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번 생은 망했어. 요즘 젊은 아이들이 쓰는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나를 걸작품으로 만드셨다고 내 인생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혹시 이런 생각이 드는 분들 계십니까?
어떤 큰 시련을 겪고 있는 한 사람에게 친구가 다가와서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네 킨을 깔아놓고 그 위에 잉크를 몇 방울을 이렇게 떨어뜨립니다. 그러니까 검은 잉크의 점이 이렇게 냅킨 위에 생겼어요.
근데 그것을 보면서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이 지금 떨어져 있는 이 잉크 자국을 지우는 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이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여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길 원하죠.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셔. 그러니까 지금 니가 받은 그 상처와 아픔들이 너무 힘들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너를 더 작품으로 만들고 계셔.
여러분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죽이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과거의 그의 모습은요.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보면 죄인 중에 죄인이에요. 자기도 그런 식으로 표현하잖아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과거에 씻을 수 없는 죄의 얼룩들이 그의 삶에 가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그를 통해 그 과거의 그 상처와 아픔들을 극복하고 그 위에다가 새로운 일을 행하셨어요. 바울은 그래서 신약 성경의 절반을 기록하고 유럽의 선교의 문을 연 위대한 사도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디모데전서 15장 1장 15절과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왼중에 내가 왼손이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은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예 사도 바울도 이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나는 죄인 중에 개수와 같은 사람인데 이런 나 같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아까 우리 합신 기도하면서도 우리 동력자들에게 지금 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힘들고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픔과 실패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들을 통해서도 우리를 빚으시고 특별한 작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연약함 실패,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을 때 무의미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이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계속 묻고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우리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속감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살게 되었다는 거예요. 에베소서 2장 19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왜인도 아니오, 나그네도 아니오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기서 외인 외인들은 도시 밖에 사는 외국인들을 말하고요. 나그네는 일시적으로 살아가는 여행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지금 바울이 에베소서 말씀을 기록할 당시의 독자들, 특별히 이방인들 출신 성도들은 신앙의 공동체에 들어와 있지만 그들은 외인이자 나그네 취급을 당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권속 즉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라고 하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이곳의 원장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아 같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불러 모아주신 거예요. 그리고 이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정제할 것이 없어요. 과거의 힘든 과거를 정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도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서로 힘을 주는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를 성경에서는 다양한 것들로 비유하는데요. 그리스도의 몸으로도 비유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오 각 지체의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와 같은 몸이라는 것이죠. 우리 안에 하나도 필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지체 가운데 필요 없는 게 어디 있어요?
물론 떼어넣고 살 수도 있는 지체들도 있지만 개도 어떤 역할을 분명히 하는 애입니다. 떼어놓는 순간 우리의 몸은 불편해지고 연약해지는 거예요. 내가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우리는 서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엮여져 있다는 사실이에요.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여러분들은 유기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나 한 사람 좀 빠져도 괜찮아 아니요. 아니 여기서 내 손가락 하나가 나는 좀 잠깐 쉬다 올게. 그러고 뒤로 빠져 있으면 어떻게 돼요?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요즘 우리 권사님 고생 많이 하시는데 손에 이 혈관 안개가 끊어지고 이 조직이 끊어지니까 지금 온몸이 지금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잖아요. 우리 몸은요 정말 유기체입니다. 나 혼자 신앙생활할게요. 요즘 그런 개인주의적인 신앙생활을 많이 하는 분들 계십니다. 그래서 그냥 수시로 온라인 예배를 드려요. 그리고 그냥 내가 혼자 예배드리고 살아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절대로 영적인 독립군 스스로 혼자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손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어떻게 될까요?
끝나는 거예요. 딱 잘라놓으면 얘가 혼자 자기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얘는 끝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도 공동체에서 분리되면 영적인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또한 교회에 대하여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죠. 에베소 2장 2장 21절부터 22절 말씀을 보면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아멘 아까 전에 말한 몸이라는 것과 약간 비슷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좀 특징적인 포인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는요 완성된 건물이 아닙니다. 함께 지어져 가는 함께 지어가고 있는 공동체라고 하는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하는 여정 속에 연약함이 발견되고 좀 부실함이 발견되면 그거를 막 누구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함께 지어져 가는 과정이니까 함께 세워가는 거예요.
우리 교회 밑에 할머니 사시는 그 건물 요즘 새로 지어진 거 보셨죠?
할머니 지금 전혀 우리하고 관계없는 이웃이지만 그 건물 외벽이 그렇게 새로워지는데 얼마나 기분이 새로운지 근데 그 건축 하는 과정을 이렇게 지켜봤는데요. 철저히 계산돼서 하나하나 세우더라고요. 그리고 조금만 문제 있으면 다시 재점검하는 거를 이렇게 보게 됐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한 분 때문에 모인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가슴 뛰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있어야 돼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내 시선이 있다 보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좋을 때도 있지만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상처받고 어려울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해 놓으면 그런 흔들림이 일어날 이유가 없어요.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정말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뛰고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더욱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제가 세 가지를 이렇게 길게 느려서 말을 하니까 좀 정리가 안 됐을 수 있는데요. 이 이미지를 보면서 세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이제 있는 자가 되면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하는 세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용납하셨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값으로 나를 사셨고 조건 없이 나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입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 걸작품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존재가 바로 나다 우리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걸작품이에요. 요즘 시대가 뭔가 자기 중심성이 강하다 보니까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너무 상대방을 평가하고 상대방을 자기의 기준으로 잣대를 댈 때가 참 많아요.
근데 여러분 먼저 이게 전제가 돼야 됩니다.
저 사람은 걸작품이야.
하나님이 만드셨어.
평가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걸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세워져 간다라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세 번째 나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낙은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자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의 일부분이 바로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경은 선포하고 있어요. 새 것이 되어 줄래 새 것이 되어 갈 거리라고 말하지 않고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선언의 말씀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사단은요. 이 놀라운 사실을 계속 여러분들이 헷갈리게 잊어버리게 여러분들을 시험할 겁니다. 속일 겁니다. 이렇게요. 거짓말로 하나님은 너를 미워해 너 인생 볼품없어 너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망했어. 너는 혼자야 누구도 너에게 관심 갖지 않아. 혹시 이런 마음들이 여러분들을 짓누르는 여러분들의 혹 상태가 있지 않습니까? 저건 거짓말들이에요. 오늘 세 가지의 그 놀라운 축복의 이야기 속에서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한번 저 위에서부터 하나씩 읽어볼까요? 첫 번째 시작.
하나님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셨어.
두 번째,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빚어지고 있는 특별한 작품이야.
세 번째,
아멘 여러분 이 사실을 오늘 이 시간 다시금 말씀을 기준으로 기억하고 이것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두에 말했던 구들장 밑에 그렇게 금 보화를 가지고 있으면 뭐 해요? 쓰지도 못하고 활용하지 못하면 누리지 못하면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냥 돌덩어리랑 뭐가 다릅니까?
근데 중요한 한 가지 또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는 사실이에요. 우리 한번 따라해볼까요?
이미 일어난 일이다.
오늘 말씀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미 이루어졌다는 거예요. 이제 더 이상 지나버린 옛 시대, 옛날에 메인 삶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나라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놀라운 특권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더 이상 구들장 밑에 보물을 쌓아놓고 빈궁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하신 그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고,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세월만큼 여러분들이 더 기쁘고 즐겁고 풍성해지는 삶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