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달성교회 2026.06.14. 주일예배 설교 전문: 다시 살아나는 신앙(겔37:1-10)

작성자박성병|작성시간26.06.21|조회수35 목록 댓글 0

네 귀한 은혜의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다시 살아나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삶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진다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릴 때나 또 청소년 때에는 마냥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삶이었다고 한다면 어른이 되어 가면 갈수록 삶의 무게가 커지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해야 할 일도 많고 또 내가 책임져야 할 일도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로는 그 일이 너무 커질 때에는 포기도 하고 싶고 때로는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열정이 있었습니다만,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 50대 60대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문득 이런 탄식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제 내 인생도 저물어 가는구나, 열정도, 건강도 꿈도 이제는 점점 더 약해져 가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자녀의 앞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것 같고, 또 부모님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고, 평생을 바쳐 일해온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도 나의 자리가 좁게 느껴질 때 우리 영적인 메마름 이 가뭄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기도는 메마르고 또 예배의 감격은 또 무너지고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전부인 상태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이 마른 뼈의 상태와도 같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에스겔 선지자의 상황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는 조국 유다가 처참하게 망하고 지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먼 이국 땅의 절망 속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에스겔을 부르셔서 한 골짜기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었습니까?

 

수많은 뼈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것도 금방 죽은 시체가 아니라 뜨거운 광야의 햇빛을 받아서 바짝 마른 뼈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곳에는 소망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찾을 수도 없고 완전한 죽음과 허무가 가득 차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에스겔을 그 끔찍한 죽음의 골짜기로 인도를 했을까요?

왜 하나님은 굳이 그 마른 뼈들을 일일이 다 보여주셨을까요?

 

그것은 그곳이 바로 귀족의 기적의 시작의 장소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적이 시작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능성이 제로 제로인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역사는 자신의 메마른 심령 그 상태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메마른 심령 그 자체를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우리 1절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절 2절 말씀 시작

 

음으로 그에게 인지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마사 골짜기 왕께 주셨는데, 거기 가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먼저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이 많고 아주 말랐더라

 

아멘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 적,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이 많고 아주 뭐였더라 말랐더라.

 

성경은 왜 이렇게 아주 말랐다고 강조를 하고 있을까요?

 

그곳은 인간의 의학으로도 또 과학으로도 어떤 노력으로도 다시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이런 메마름 연약한 시기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식과 대화가 끊긴 지 오래되어서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산도 옮길 것 같더니 이제는 몸이 아픈 곳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통장의 잔고는 비어가고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면 내일이 오는 게 두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형편에 처하게 되면 대개 두 가지 반응이 보입니다. 원망하거나 포기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지금 이러십니까?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원망하거나 아니면 결국 내 인생 이제 끝났다고 결론을 지어버립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3절에 보니까

 

인자야 이 뼈들이 능이 살 수 있겠느냐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이 질문은 상식을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믿음을 묻는 질문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생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죽은 지 수십 년이 되어 보이는 저 뼈들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살 수가 없습니다. 그게 정답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는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말씀은 내 경험으로는 내 상식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가능합니다.

 

할렐루야 내 경험으로는 내 지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면 될 줄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여러분 회복의 첫 단추는 바로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무엇을 인정한다고요?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내 자신의 시선을 사실을, 내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로 옮기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 상황은 지금 마른 뼈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은 창조주의 손임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헬런켈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헬런 켈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그야말로 마른 뼈와 같은 마른 뼈와 같은 그런 아이에 불과합니다. 주변 모든 사람들도 저 아이는 안 된다. 저 아이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일찌감치 포기해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헬런켈러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분노 속에서 괴물처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헬렌 켈레의 스승인 설리반은 달랐습니다. 이 설리반은 하나님의 눈으로 헬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만드셨다면 분명히 목적이 있을 것이다.

내 눈에는 마른 뼈 같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보석일 것이다.

 

정말 설리반은 절망적인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 현실 위에 하나님의 가능성을 덮었던 것입니다. 수천 번 수만 번 손바닥에 글씨로 새겨가며 포기하지 않았던 그 마음의 시선이 결국 세계적인 작가이자 사업가인 헬렌 켈레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상황이 아무리 메말랐어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 상황 위에 하나님의 가능성을 덮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상황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능성으로 믿음의 눈으로 덮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의 삶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살 수 있겠느냐 너 할 수 있겠느냐 물으실 때 아니요 안 됩니다. 못합니다. 그렇게 답하지 마시고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답을 내어놓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대언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뭐 한다고요?

 

대은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입술의 고백 너 뭐라고 말했느냐 너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느냐 그 입술의 고백을 굉장히 중요시 여깁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병자를 고치시거나 기적을 베푸실 때도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 믿음이라는 것이 바로 니가 뭘 말했느냐 뭘 고백했느냐 그런 말이거든요.

 

우리 4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4절 말씀 시작

 

아멘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뭐 하여 뭐 하여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말은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대은이라는 말입니다. 대은 여러분 대은이 뭡니까? 대언은 내 생각, 내 감정, 내 현실을 말하는 것이 대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에게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내 생각은 내 감정이 지금 좀 안 좋아서 내 기분이 꿀꿀해서 내 현실이 안 좋아서 여러분 이것은 대언이 아닙니다.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대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 그걸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대원입니다.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여전히 세상의 언어, 패배의 언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예배 때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고 하지만 예배가 끝나자마자 안 된다. 힘들다 죽겠다 망했다.

 

여러분 이것은 마른 뼈를 더 마르게 하는 불신앙의 대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은요 내 형편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내가 상황이 좋지 않아서 우리 형편이 어떻고 저떻고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교회에 와서 세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 돈 얘기, 자식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 경제가 어떻고 경기가 어떻고 굳이 교회에 와서 이런 것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에스겔 선지자가 순종해서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렇게 외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우리 7절의 말씀도 같이 읽겠습니다. 7절의 말씀 시작

 

아멘 자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뭐 하니 대어하니 태어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뭐 해지더라 연결되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무질서가 질서의 세계로 바뀝니다. 끊어졌던 관계가 연결이 되고 어그러진 삶의 구조가 정상적인 삶의 구조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 특히 자녀, 또 남편을 향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야 너는 누구를 닮아서 그 모양이냐?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서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서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마른 뼈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과 똑같습니다. 대신 이렇게 선포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너를 반드시 사용하신단다. 너는 하나님의 존귀한 존재란다.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야. 우리 가정의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지어다.

 

할렐루야 내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서 선포하는 그 순간에 그 말은 단순히 공기를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했던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상황이 나중에 되면 바뀌겠지. 지나보면 달라지겠지. 그렇게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여러분의 상황이 삶이 바뀌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나는 부족하고 나는 연약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이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선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여러분이 내뱉는 믿음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 한마디는 누군가 마른 뼈 같은 그 영혼을 치유하고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주의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새롭게 한다고요? 주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태어나자 놀랍게 뼈들이 맞물리며 연합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겉모습은 완벽한 사람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8절에 보니까 안타까운 지적이 나옵니다. 그게 뭡니까?

 

우리 8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무엇이 없더라 생기는 없더라. 겉모습은 가장 완벽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 자식도 잘 되고, 또 좋은 집도 사고, 또 건강도 나름 회복이 되었고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번듯번듯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마음이 허전합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도 않고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명도 열정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영적으로 생계 없는 시체와 다를 바가 뭐가 다르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때 다시 명령합니다. 9절에 보니까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할렐루야 하나님 말씀을 대언 했더니 생기가 들어감으로 그 사람이 살아 움직이고 군대가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생기가 뭘까요?

 

이 생기는 바로 히브리어 루하허라고 하는데, 바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냥 내 생존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내가 밥 먹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열정적인 강한 믿음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들은 너무나 무서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방문을 꼭꼭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모양은 제자였지만 그 알맹이는 마른 뼈처럼 무기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니까 어떻습니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밖으로 문을 차고 나와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제자들이 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물론 돈도 있어야 됩니다. 집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거룩한 백성이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처럼 살게 되면 아무런 희망도 꿈도 소망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인생의 바람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억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안에 성령의 바람, 성령의 은혜가 강권적으로 역사할 때에 우리가 사 사명의 바다로 나아갈 수가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귀한 주의 자로 세워질 줄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유대에서는 광야에서는 이 부활초라고 하는 아주 작은 풀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가뭄이 심해지면 이 식물은 수분을 모두 잃어버리고 바짝 말라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뿌리를 뽑고 몸을 공처럼 둥그렇게 말아서 바람에 굴러 다닙니다. 겉보기에는 영락없이 죽은 나무 조각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수년을 죽은 채로 황무지를 떠돌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단 한 방울에 물기만 닿아도 불과 몇 시간 만에 갈색 잎을 활짝 피고 초록색 생명 뿜어내는 살아있는 생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의 씨앗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예수의 생명, 예수의 씨앗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때 그 능력도 그 모든 삶도 결코 부끄럽지 않는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죽은 것 같으나 살아있고 지혜 없는 자 같으나 지혜 있는 자가 예수의 생명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혹 여러분 인생의 골짜기에서 나의 마른 뼈들을 보면서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이에 이제 늦었어 스스로 혹 사망 진단서를 끊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강력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은혜인 줄을 믿습니다. 이 시간 함께 이렇게 한번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메마른 영혼나 기쁨으로 살아날지어다. 내 자식들의 막힐 무화 활짝 열릴지어다. 내 연약한 육체야 강건할지어다. 어 예수의 생명, 예수의 능력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