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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연 시집 {주남도서관} 출간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26.06.21|조회수39 목록 댓글 0

임창연 시집 {주남도서관} 출간

 

 

임창연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나 1998년 무크지 《매혹》으로 시 등단하고, 2015년 《한비문학》으로 평론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아버지 뿔났다』(2017,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 『사차원 놀이터』(2022,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 외 4권이 있으며, 디카시집으로는 『화양연화』(2016)가 있다. 전 경남문인협회 부회장과 마산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남시인협회 부회장을 비롯해 경남문인협회, 마산문인협회, 경남문학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방가르드》 발행인이자 창연출판사 및 창연문장 넥서스 대표로 있다.

주남저수지에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우주적 상상 혹은 인문적 사유이다. 작은 벌레 한 마리, 사소해 보이는 풀꽃 하나가 모두 드넓은 우주와 속 깊은 인문학적 깨달음의 세계로 안내한다. 임창연 시집 {주남도서관}은 비록 종이책도 건물도 없지만,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

 

이 백과사전에는/ 부록도 없고, 판권도 없다/ 해설자는 사라졌고/ 철새들 스스로가 발행자이며 저자이다

―「해설자 없는 백과사전-철새」 부분

 

주남 도서관은 책이 한 권도 없는 도서관이다. 점토를 굽거나, 대나무를 엮거나, 숲을 베어서 만든 책이 한 권도 없다. 우리가 아는 도서관이 생명의 터 무늬를 지우고 세운 것이라면, 이 도서관은 뭇 생명들이 쓰는 몸짓 언어로 가득하다. 도서관을 나와야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 책을 덮어야 보이는 문장들이 도도하게 펼쳐진다. - 시인 반칠환

 

나는 이제야 알았다. 주남저수지에 이토록 멋진 도서관과 사서가 있다는 사실을. 재밌는 것은 주남도서관에는 종이책이 한 권도 없다는 점이다. 그 흔한 논어, 맹자도 없고, 성경도 불경도 없다. 김수영의 시집도 없고, 한강의 소설책도 없다. 종이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듯한 도서관 건물도 없다. 주남저수지에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우주적 상상 혹은 인문적 사유이다. 작은 벌레 한 마리, 사소해 보이는 풀꽃 하나가 모두 드넓은 우주와 속 깊은 인문학적 깨달음의 세계로 안내한다. 주남도서관은 비록 종이책도 건물도 없지만,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 --이형권 문학평론가, 충남대 국문과 교수

 

해 질 무렵/ 청둥오리들이 모여든다/ 물풀 사이, 잔잔한 둠벙 옆/ 그들만의 독서모임이 열린다// 낮 동안 읽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하늘의 구절, 수면의 비유/ 철새가 흘리고 간 낱말의 잔해들// 수컷은 목을 흔들며 표현하고/ 암컷은 날개로 문장의 리듬을 짚는다/ 때로는 물장구로, 때로는 짧은 울음으로/ 비평 아닌 공감의 독서를 나눈다

--「청둥오리의 독서모임」 부분

 

이 시는 “해 질 무렵/ 청둥오리들”이 “물풀 사이, 잔잔한 둠벙 옆”에 모여 있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시인은 이것을 “공감의 독서”를 위한 “모임”이라고 한다. 하루의 먹이 활동을 마친 저녁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청둥오리들”을 의인화하여 “독서모임”이라고 한 것이다. 의인화의 절정은 청둥오리 한 마리가 물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돌아와/ 이건 식탁의 은유다”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식탁의 은유”는 “청둥오리”의 먹이 활동을 인간의 식사나 정신세계에 비유하는 셈이다. “낮 동안 읽은 것들”이 “하늘의 구절, 수면의 비유/ 철새가 흘리고 간 낱말의 잔해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둥오리”가 인간의 비유라면, 이 시구는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종이책 없어도, 자연책과 함께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하여 “서가 없이도 책은 읽힐 수 있으며/ 목소리 없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한다. 사실 종이책 독서는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행위일 터, 자연책을 읽는 것은 자연과 생명을 직접 경험하면서 삶의 지혜를 얻는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청둥오리의 독서모임”이 있던 “주남의 저녁”이 오랫동안 “가슴 어딘가에 남아 흔들렸다”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마음의 흔들림, 그것을 우리는 “공감” 혹은 감동이라고 한다. “청둥오리”는 자연을 벗 삼아 더불어 살아가는 공감 공동체인 셈이다.

이 시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본문 앞에 서지사항으로 “도서명: 청둥오리의 독서모임/ 저자: 주남저수지 남쪽 둠벙 연합/ 분류번호: 598.33-MALL/ 대출일: 2024.11.05./ 반납예정일: 다음 비가 오기 전/ 비고: 주남도서관 야외 대화형 열람구역”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 내용을 보면 도서관에 있는 실제 종이책의 서지 정보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서지 정보가 아니라 시 문맥에 동참하고 있는 시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도서명”은 그렇다고 해도 “저자”가 “주남저수지 남쪽 둠벙 연합”이라고 한다. 이 저자는 인격체가 아니라, “청동오리”가 잠시 머물렀던 장소인데, 그 장소를 저자로 내세우고 있다. “반납예정일”도 일반 도서관과는 전혀 다르다. “다음 비가 오기 전”이라고 하여 시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인 서지 정보가 하는 역할은 시의 본문을 위한 프롤로그로서, 시의 배경과 의도를 미리 제시하면서 시 전체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점은 이 시집 전체가 주남저수지 혹은 주남도서관의 가이드북 역할을 하는 것과 연동된다.

 

8조, / 습지는 생명체의 서식처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람사르 문서 속 그 문장은/ 한때 사람들의 책상 위를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 그 문장은 읽히지 않는다/ 개발의 이름으로 덮인 땅/ 도로 아래 파묻힌 물길/ 그 안에 실려 있던 다섯 개의 계절// 철새는 돌아오지만/ 서명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펜 끝의 책임은 종이 위에만 남고/ 저수지의 침묵은/ 그 문장의 진심을 대신한다

--「람사르 각서 8조-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 부분

 

이 시의 제목에 등장하는 “람사르 각서”는 이란의 카스피해 연안 도시인 람사르(Ramsar)에서 채택된 국제 규약이다. 세계적으로 황폐화되어 가는 습지와 그곳의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체결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세계 101번째로 이 협약에 가입하고, 강원도 인제의 대암산 용늪이, 경남 창녕의 우포늪, 전남의 순천만과 벌교의 갯벌 등을 등재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 협약의 “8조”는 람사르협약이 선언적 원칙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운영되도록 하는 집행 체계를 정한 조항이다. 그 내용의 핵심은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협약 내용을 제시한 이유는, 습지 혹은 자연의 보호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라는 부제나, “지금/ 그 문장은 읽히지 않는다”라는 본문의 표현은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습지를 보전하는 데 관심이 없다. “개발의 이름으로 덮인 땅”에서는 “도로 아래 파묻힌 물길”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생명의 “물길”이 사라진 땅에서는 자연의 건강한 순환 원리인 사계절은 사라지고 “다섯 개의 계절”이 펼쳐진다. 인간의 “개발” 욕망으로 자연은 생태 리듬을 잃고 죽음의 세계, 비정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그러한 행동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회복한다. “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는 습지의 갈대가 대신 필사하고/ 물고기들은 구두점 없이 해석한다”라고 한다. 인간이 잃어버린 자정 능력을 자연이 되살리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습지 보호의 실천을 강조한 “8조”의 “그 한 조항이 갈대 사이로 읽힌다”라는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인간들처럼 “이 책을 펼칠 수 없”는 존재지만, 적어도 그러한 현실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고 있다. 자연 보호의 실천 문장인 “8조”가 “끝끝내 살아남는다”라는 것에 동조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공정은/ 언제나 제본이다/ 주남저수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흙탕물로 엮인 문장이 있다// 모든 것이 섞이는 시간/ 갈대의 뿌리, 낙엽의 조각, 사라진 날갯짓/ 그리고 어제의 기억이/ 진흙 속에서 묶인다// 그곳에서는 언어가 눌리고/ 색이 무너지고/ 침전된 침묵이/ 문장을 붙잡는다// 가장 단단한 이야기들은/ 깨끗한 물에서 나오지 않는다/ 흙탕물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흔들림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인다// 그 책을 펼칠 수 없지만/ 발밑에서 느낀다/ 물의 저항, 생의 압력/ 눈으로 읽을 수 없는/ 진흙의 문단들// 제본된 이야기들은/ 저수지 아래 잠들어 있다/ 때로는 썩고, 때로는 발아하며/다음 장을 준비한다

--「흙탕물 제본소」 전문

 

이 시는 책을 만드는 “제본소”에 관해 이야기한다. “제본소”는 일반적으로 “책의 마지막 공정”을 하는 곳이다. 저자가 원고를 써 오면, 표지 디자이너가 표지를 만들고, 편집자가 원고 편집을 한 다음에, 여러 차례의 수정 보완 절차를 거쳐, 인쇄를 마친 종이들을 가지런하게 묶어서, 비로소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곳이다. 이 시에서 “제본소”의 비유적 의미는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이 시에서 생명 탄생의 공간은 “주남 아래, 보이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서 “흙탕물로 엮인 문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연책 즉 생명의 씨앗이라고 한다. 하나의 씨앗에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응축되어 있는 존재일 터, “갈대의 뿌리, 낙엽의 조각, 사라진 날갯짓/ 그리고 어제의 기억” 등 “모든 것이 섞이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진흙 속에서 묶인다”라고 한다. 이때 진흙은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는 장소로서 연꽃의 뿌리인 연근이 존재하는 곳이다. 진흙탕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듯, 진정한 생명은 온갖 시련을 극복하면서 존재한다. “물의 저항”이나 “진흙”으로 “때로는 썩”는 것조차 감내하면서 “발아”를 한다. 이 역설의 메커니즘이 자연책 혹은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고 존재하게 하는 원리이다.

언제나 진리와 생명은 역설의 힘으로 존재한다. 자연의 도처에서 그런 힘이 작동하면서 생명은 존재한다. 가령 “가장 깊은 문장들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물 아래의 뿌리처럼/ 흔들림 없는 침묵의 유희/ 책을 지탱하고 있다”(「수련의 표지는 물속에서 써진다」 부분)라는 부분을 보자. 생명의 진리를 표상하는 “가장 깊은 문장”은 “조이지 않는 곳”, “물 아래의 뿌리”처럼 존재한다. 또한, 시인은 “책을 읽다 보면/ 가끔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각주에 숨어 있다”, “생의 본문 아래, 조용히 일렁이는 의미”(「물비늘의 각주」 부분)를 강조한다. 진정한 생명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낮은 “물속”과 사소한 “각주”에 있다고 한다. 주남도서관은 이처럼 역설의 가치로 존재하는 진리의 책, 생명의 책을 사람들에게 성심껏 대출해 준다. 오염된 세상에서도 맑은 영혼을 찾아 헤매는 시인 사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임창연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주남도서관을 고샅고샅 안내해 주었다. 그는 시인이지만 친절하고 기발한 상상을 할 줄 아는 유능한 사서이자 북 가이더이다. 그는 주남저수지에 식생하는 다양한 생명에서 발견한 자연의 책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서지사항을 정리해 놓고, 사람들이 대출해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계절을 따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을 변하는 자연의 책들을 소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남저수지의 진흙 밑바닥에서 수면의 물결, 하늘의 허공에까지 분포되어 있는 자연의 서가에는 장서가 너무 많다. 이 시집은 그 책들 가운데 고르고 골라서 60권을 소개하고 있다. 60만 권도 넘을 주남도서관의 자연책들 가운데 60권을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임창연 시인은 60권으로써 주남도서관이 품고 있는 자연과 인간, 생명과 우주의 신비를 고스란히 함축해 내고 있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자연을 배개로 한 시적 비유와 암시로 채워져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임창연 시집 {주남도서관}, 도서출판 지혜,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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