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다이나마이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 속에는 어떤 종교의 창시자와 같은 사고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란 천한 하류배들의관심사이다. 나는 신앙을 갖고 있는 무리들과의 접촉 뒤에는 손을 닦고 싶다.
----니체, {이 사람을 보라}에서
“현대는 바로 비판의 시대이며, 모든 것이 비판받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칸트가 비판철학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면, 니체는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다이나마이트이다”라고 비판철학의 시대를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자라는 이름의 인간의 육성자, 이 비범한 존재들은 이제까지 스스로를 지혜의 친구라기보다는 위험스러운 물음표, 불쾌한 바보로 생각해 왔다”({선악을 넘어서})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동시대의 미덕에다가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비판철학의 칼날을 들이댐으로써, 동시대를 비판하고, 동시대를 비판함으로써 다이나마이트와도 같은 그의 삶을 살다가 갔던 것이다.
짜라투스트라, 즉, 초인이란 되어감의 존재이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그 초인이 신이 될 때, 그러나 그 초인은 한낱 우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니체는 되어감의 존재, 즉, 가능성의 존재로서 살아가고 싶어 했지, 종교창시자로서 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종교창시자란 우상숭배주의자이며, 천민 중의 천민의 무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 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
니체의 추종자, 혹은 니체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페터 가스트는 니체의 장례식에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세대에 당신의 이름은 고귀하리라”고 외쳤다고 한다.
--반경환 {니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