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상은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의 근거가 ‘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거기에서 유한성과 죽음을 터득하게 된다. 존재의 무, 유한성, 죽음 등은 우리 인간들에게 삶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안겨주고, 그 공포와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적인 장치로써 수많은 신화와 종교가 탄생하게 된다. 신화와 종교가 우리 인간들의 최고급의 지혜의 저장소라면, 우리 인간들의 지식의 축적은 자기 자신의 한계와 그 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한 안간힘의 소산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삶의 본능을 옹호하고 삶의 활력과 윤기를 더해 주는 것은 최고급의 지혜로써 성화되어 온 반면, 우리 인간들의 삶의 본능을 깎아내리고, 메마르고 건조하며, 우울하고 쓸쓸한 그 모든 것들은 배척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우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며 곧 바로 죽어버리는 것이 차선’이라는 염세주의마저도 우리 인간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낙천주의를 양식화시켜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소유와 무집착을 역설하고 있는 종교들, 부의 공정한 분배와 만인평등의 공산주의, 그리고 모든 ‘생의 철학’ 등의 근본 과제가 고통의 극복이라면 염세주의자들은 죽음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염세주의자들은 이 세상에서는 고통의 극복이 가능하지 않고, ‘죽음’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염세주의자들은 이 세상에서 더없이 커다란 실패와 패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생을 위로하고, 삶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죽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던 것이다. 모든 사상은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며, 생명부정에의 의지인 염세주의의 유효성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나게 된다. 모든 사상은 ‘미학’으로 꽃 피어나며, 모든 ‘미학’은 ‘사상의 결정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경환, [상승주의의 미학]({행복의 깊이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