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의 서문
프리드리히 니체
1
머지 않아 나는 인류로 하여금 역사상 가장 어려운 요구를 직면케 하리니,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가를 이미 알고 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나 스스로를 입증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사업의 위대함과 현대인의 비천함 사이에 놓인 불균형은 곧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심지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사실로 표현된다. 나는 내 자신이 발행한 어음으로 살고 있으니 내가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단순한 편견일지도 모른다.
피서차로 어페 엔가딘----니체가 1879년부터 1888년까지 거의 매년 여름을 보냈던 스위스의 알프스 계곡----에 온 어느 지식인과의 대화만으로도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 진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나는 나의 습관, 심지어 나의 본능에 대한 자존심이 근본적으로 거부하지만 다음과 같이 말할 의무감이 있으니 ‘나의 말을 들으라!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그러하니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나를 혼동하지 말라.’
2
나는 예컨대 결코 요괴가 아니요, 도덕적 괴물도 아니다. 나는 사실 덕망이 있어 존경받는 사람의 유형과는 정반대되는 사람이다. 몰래 말하자면 내게는 이것이 틀림없이 나의 자부심의 일부분이리라.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다.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반인반수의 숲의 신. 말의 귀와 꼬리를 가졌고 술과 여자를 좋아함----가 되겠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한다. 아아! 나는 성공적으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이 에세이는 이러한 대조를 즐겁고 정이 어린 방법으로 표현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인류를 개선하고자 한다는 약속을 나와 같은 사람이 할 리는 결코 없다. 나는 결코 우상을 만들지 않는다. 케케묵은 우상들로 하여금 진흙으로 만든 말이 겨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게 하라. 우상파괴----나에게 있어 ‘이상’을 표현하는 말----, 이것이 바로 내 직업의 일부이다. 인간이 허위로 이상세계를 창조한 만큼 꼭 그만큼 인간은 현실세계로부터 현실세계의 가치와 의미와 진실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참된 세계’와 ‘가상의 세계’가 있는 바 가상의 세계는 허구로 창조된 세계이며 현실이다.
이상이라고 하는 ‘거짓’은 여태까지 현실에 있어서는 하나의 저주스러운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인류는 그 자체로서 저 본능 밑바닥까지 거짓말장이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인류의 건강, 인류의 장래, 장래에 대한 숭고한 ‘권리’를 보장해 줄 가치의 ‘반대되는’ 가치를 숭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3
나의 저서의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이 높은 산에 있는 공기이며, ‘강렬한 공기’임을 알고 있다. 독자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공기에 감기걸릴 염려가 적지 않으리라. 얼음은 가까이에 있고 고독은 처절하다. 그렇거늘 어쩌면 그렇게 삼라만상이 햇빛 속에 고요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렇게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을까! 이토록 많은 것이 자기 ‘밑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니! ----내가 이제까지 철학을 이해하며 살아온 바로는 철학이란 얼음과 고산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생존 속에서 괴이하고 의심스러운 모든 것들, 도덕에 의해 이제까지 금지되어 온 모든 것들을 찾아내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금지영역을 방황하며 얻은 오랜 경험 덕택으로 나는 도덕화와 이상화를 촉진시킨 원인을 종래 바람직하다고 여겨온 것과는 전연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철학자들의 비사秘史, 철학자들의 고명한 명성이 갖는 심리를 나는 불을 보듯 분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정신은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디어’ 내는가? 하나의 정신은 얼마나 많은 진리와 과감히 맞부딪칠 수 있는가? 점점 더 그것이 나에게는 진정한 가치기준이 되어버렸다. ‘이상을 믿는’ 오류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한 오류는 바로 비겁한 짓이다.
지식을 얻는다는 것, 지식을 넓힌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용기로부터, 극기克己로부터, 자신에 대한 결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상들을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상 앞에서 장갑을 낄 뿐이다.
우리는 금단의 것을 찾으려 애쓴다. Nitimur in vetitum, 이 가치 하에서 나의 철학은 승리하리라. 왜냐하면 원칙적인 문제를 따진다면 오로지 진리만이 항상 억압을 받아 왔으니.
4
나의 작품 중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으로 나는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물을 안겨다 준 것이다. 앞으로 수 백년 동안 퍼져나갈 목소리를 가진 이 책은 현존하는 최고의 책이며 그것은바로 저 높은 산의 공기이며 인간에 대한 모든 사실이 고산의 저 아득한 밑바닥에 놓여져 있다. 그것은 또한 가장 심오하고 진리의 가장 깊숙한 보고에서 탄생하였고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은 샘이며, 그 샘에 두레박을 내리면 황금과 선善이 가득 담겨져 올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어떠한 예언자도 없으며, 종교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질병과 권력에 대한 욕구, 이 양자가 합쳐진 소름끼치는 혼혈아도 없다. 이 책에 담긴 지혜의 뜻을 왜곡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요한 가락을 똑똑히 들어 보아야 한다.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가장 조용한 말이다. 비둘기의 발로 오는 사고 思考만이 세계를 이끈다.”
무화과 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다. 그 열매의 달콤함, 그리고 향기로움이란! 그 열매가 떨어지면 붉은 껍질은 터진다.
나는 무르익은 무화과 열매처럼, 나의 가르침이 너희들에게 떨어지리라. 나의 벗이여, 그것의 즙과 그것의 향기로운 살을 먹어 보아라. 맑은 하늘 어느 오후에, 그것이 우리 곁에 떨어지고 있다.
여기서 하는 말은 광신자의 그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설교’도 아니다. 어떠한 ‘믿음’도 강요받지 않는다. 한량없이 풍부한 햇빛과 행복의 심연으로부터 한 방울, 한 방울, 한 마디, 한 마디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의 템포는 부드러운 아다지오adagio이다. 그 말은 가장 선택된 자에게만 들린다. 그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하나의 특권이다. 짜라투스트라의 말을 누구나가 자유로이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짜라투스트라는 이런 점에서 ‘유혹자’인가?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고독 속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는 무어라고 독백하였는가? 분명코 ‘현인’이라고 하는 자, ‘성인’이라고 하는 자, 구세주, 모든 다른 데카당이 그 위치에서 말하였을 법한 것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였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다르게 말할 뿐만 아니라 실로 다른 ‘존재’이다.
나는 이제 홀로 가려 한다. 나의 제자들이여, 이제는 너희들도 홀로 가거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바이니.
나를 떠나가거라! 그리고는 짜라투스트라를 거부하라, 아니 차라리 더 좋은 것은 그를 부끄러워하라, 그는 너희를 속였을 테니.
너희가 진정코 지식을 가졌다면 자기의 적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자기의친구를 미워할 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언제나 제자인대로 있다면 너희는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너희들은 나의 월계관을 빼앗고 싶지 않으냐?
너희들은 나를 공경한다. 그러나 어느 날 너희들의 공경심이 무너진다면 어찌하겠는가? 조심하라, 넘어지는 조상彫像에 깔려 목숨을 잃을 염려가 있느니.
너희는 짜라투스트라를 믿는다고 말하느냐? 그러나 짜라투스트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너희는 나의 신자이다. 그러나 신자가 되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너희는 아직 너희 자신을 찾지 못하였을 때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는 나를 믿는 모든 신자가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믿음이라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명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너 스스로를 찾으라, 너희가 나를 부정하였을 때 나는 너희에게 다시 돌아가리니.
----프리드리히 니체
이 완벽한 날, 포도송이가 갈색으로 물들고 만물이 무르익는 이때, 막 한줄기 햇살이 내 인생을 환히 비춘다.
나는 앞뒤를 둘러본다. 이 풍요롭고 훌륭한 것을 한눈에 보기에는 벅차다. 오늘 나의 마흔 네 번째의 한 해를 묻어버리지만 그것은 헛수고는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묻어버릴 ‘권리’를 갖고 있었다. 이 한 해 동안에 생명 있는 것은 모두 구원을 받았으며 영원불멸의 것이 되었다.
‘모든 가치전환’의 ‘짜라투스트라의 노래’, 우상에게 해머로 내려치려고 시도했던 ‘우상의 황혼’----, 이것은 올 한 해, 더욱이 마지막 세 달 동안의 선물이다. 그러니 어찌 나는 나의 전생애에 감사하지 않으랴. 그러함으로써 나는 나 스스로에게 나의인생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1844년 프러시아 삭손州 뢰켄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일생내내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정신으로, 모든 가치들의 전복을 기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超人을 가르친다. 인간은 초극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다”라고 그가 부르짖었을 때, 바로 그 부르짖음 속에는 ‘신의 사망선고’가 내려져 있었던 것이며, 따라서 그의 반기독교주의와 반형이상학주의, 그리고 그의 반이상주의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초인은 신을 섬기지 않은 사람이며, 하늘 나라의 이상적인 천국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초인은 우리 인간들의 미래의 인간이며, 그는 이 땅에 두 발을 튼튼히 내리고 있는 짜라투스트라이다. 짜라투스트라(니체)는 칸트 이후 비판철학의 완성자이며, 우리 인간들의 삶의 본능의 옹호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글은 김태현 역의 {이 사람을 보라}(청하, 1982년)의 서문이며,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꼭 구입해서 정독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