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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석의 늙은 지게의 이바구 외 1편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26.06.06|조회수65 목록 댓글 0

늙은 지게의 이바구 외 1편

김 행 석

 

근본 없는 내가 뭔 복을 타고났는지 주인어른 잘 만나 여태껏 호강하고 살았어.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는지 사립문 나설 때면 언제나 나를 업고 들로 산으로 시오리 읍내 장터로 세상 구경을 시켜 주셨지.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농사철에도 모내기 벼 베기 한번 시키지 않고 미루나무 그늘에서 구경이나 하게 하시더라구

 

철나고 보니 뭔가 잘못된 게 있는 거 같았어. 나와 동갑내기인 큰아들에게는 가끔 꾸중도 하고 회초리로 종아리 때리는 걸 본 적도 있는데 이날 이때까지 나를 혼내신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그동안 나라고 잘못한 일이 왜 없었겠어. 더 이상했던 건 오뉴월 땡볕에 피사리하고 돌아와 우물물에 등목하고 대청마루에 큰대자로 누웠다가 시원한 열무국수 한 대접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잖아. 그런데 헛간 기둥에 나만 덜렁 기대놓고 자기들끼리만 국수를 먹는 거 있지? 꼭 먹어야 맛은 아니지만 먹는 거 가지고 차별하는 거 같아서 서럽더라구

 

머리가 커갈수록 내가 밥값은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치가 보이고 등에 업힐 때마다 얼마나 맘이 불편했는지 몰라. 달 밝은 밤이거나 찬바람 불고 낙엽이 길을 잃고 헤매는 날이면 젊은 혈기에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밤을 새우곤 했는데, 이제 모두 지나간 일이야. 꼿꼿하던 주인어른 등 굽고 허리 아파서 더 이상 나를 업어줄 수 없게 되었거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실은 나도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니까. 평생을 한뎃잠 자고 일 년 열두 달 밖에서 눈비를 맞았으니 제아무리 무쇠라 한들 온전할 리가 있겠어? 이제 나도 늙었나 봐

 

내가 일자무식이지만 더 늦기 전에 서운했던 거 궁금했던 거 모두 풀고 잊기로 했어. 얼마 전 주인어른 웃통 벗고 등목할 때 보았거든. 그 넓고 두툼하던 등짝 어디 가고 늙은 소나무 껍질 덕지덕지 박혀 있더라구. 그건 다 나 때문이야. 내가 힘들 때면 어리광 부리듯 주인어른 등짝을 꾹꾹 눌러댔거든

 

요즘 주인어른 표정이 어두워서 걱정이야. 서울서 큰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구. 거기는 일등만 살아남는 정글과 똑같대. 으리으리한 빌딩에서 삐까번쩍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빵빵하게 연봉 받으면 최고일 거 같은데 그게 아니래. 선후배도 없고 모두가 적과 같아서 자나 깨나 불안하고 외롭대. 돈 있으면 그만이지 뭐가 걱정이냐고 하겠지만 불안하고 외로운 것이 춥고 배고픈 거보다 더 아플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구. 부럽기만 하던 큰아들이 안 돼 보이고 은근히 내 팔자가 상팔자라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겠나. 아침마다 뜨는 해도 그 자리가 매일 변하고, 밤하늘 달도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몸부림을 치잖아. 세상 법이란 것도 어제까지는 옳다던 것이 오늘은 그르다고 난리고, 내 속에 있는 내 마음도 이유 없이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걸 보면

 

지구란 녀석이 23.5도 삐딱하게 돌고 있어서 그런가 봐

 

아무튼, 근본 없고 일자무식인 내가 이날 이때까지 험한 꼴 안 당하고 평생 주인어른 등에 업혀 살았으니, 복을 덩굴째 끌어안고 살았지 싶어

 

 

모란꽃

김 행 석

 

얼굴 큰 여자에 반해

붉은 피 듬뿍 찍어

화선지 흠뻑 적시니

 

그 여잔 어디 가고

숫처녀 눈밭에 불이 났어요

 

진초록 잎새 급히 깨워

들러리 세웠더니

 

뜨겁던 손 숨 고르는 사이

떠났던 그 여자

사립문 열고 웃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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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호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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