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에 말아먹는 밥
이돈형
애인 없인 살아도
밥 없인 살 수 없는 이 굴종이 좋다
점심으로 싸 온 도시락을 풀어놓고 어떻게 먹으면 혼자 먹는 밥이 맛있을까 고민하다 찬물에 만다
말아먹는 일과는 근친이라 이제 신물 날 만도 한데
찬물을 부어 놓고 웃는다
말아먹는 것을 두고 오래 생각하지 않는 게 말아먹는 자의 특권이라 이 밥은 간단해서 좋고 싱거워서 좋고 목 넘김이 좋다
한때 애인을 말아먹고 미쳐 날뛰던 때도 떼지 못할 것 같은 정이 금세 떨어져 나가고 종일 쏟던 눈물도 쉽게 싱거워졌었다
물밥 한술 뜨고 계란말이 하나 입에 넣었는데 오늘따라 계란말이가 좀 짜다
뭐든 쉽게 말아먹는 사람인 줄 알고 간간하게 한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낮의 정사
이돈형
단풍 들어 아무도 모르게 장태산에 들었더니 내내 엎어져 있던 산이 바로 눕는다 무심한 척 아래부터 밟고 올라가다 가을빛에 미끄러져 엎어졌다
중턱이었다
--애지사화집 김선옥 외, {꽃밥}에서
약 력 : 2012『애지』등단 시집「뒤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나의 태몽은 나무랄 데가 없으니까요」 김만중문학상 애지작품상 선경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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