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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회원발표시

홍정미의 모네의 풍경 외 1편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26.06.23|조회수18 목록 댓글 0

모네의 풍경 외 1

홍정미

 

오늘 달이 물 먹었네

비가 올 거야

 

달이 구름을 두루고 있다 강은 조용히 입을 벌리고 하늘을 삼겼다 순간, 위와 아래의 경계가 흐려졌다 물가에 서서 내 마음이 어디쯤 잠겨 있는지 가름해 보았다 생각은 가라앉고 감정만 둥글게 떠올랐다

 

달은 천천히 물을 먹고 하늘은 내 안에 둥글게 고여 있었다 풍경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더니 경계를 허물며 하늘은 물색으로, 물은 달의 색으로 물들었다

 

달이 물을 먹는 순간 하늘이 내려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 멈추고, 어둠은 계속 밤을 덧칠하는 중이다 밤에서 퍼낸 풍경화는 몇 개의 선이 뒤틀리고, 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어머니의 달은 늘 고단했다 밭에는 뽑고 돌아서면 또 자라 아우성치는 풀이 있었고 어머니를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머니의 달은 울지도 못하고 흘러내리지도 못한 말로 가득 차 있었다 달을 보며 견딘 시간들, 달이 물을 먹었어, 그 말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내 그늘을 비추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보들레르가 보였다 거대한 날개로 걷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는 알바트로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별들이 보였다

 

오늘, 달이 물을 먹었다

구름과 강과 말하지 못한 생각들을 삼키며

자기 무게를 견디고 있다

 

 

 

 

이순(耳順)

홍정미

 

노을을 그렸어

붉은 물감을 칠하자 새가 날개를 적시며 바다를 달렸어

바다를 그리자 파도가 지워졌어

 

다정한 이름을 그렸어 이름을 그리자 당신의 얼굴이 지워졌어 다시 당신 그림자를 그렸어 그림자는 언제나 햇빛이 닿지 않는 벼랑 끝에서 끊어졌어 빛 속에 가라앉지도 않고 비단 옷에 갇히지도 않고 자유롭게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어 백만 개의 화살이 당신을 찌르는 모습을 그렸어 고통 속에서 당신은 낮게 웃었어 돌들이 따라 웃었어 파도를 그리자 바다가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어 조금만 선을 잘못 그어도 새들은 계절 박으로 추락했어 보내고 싶지 않아 주황을 덧칠할수록, 겨울이 한꺼번에 타올랐어

 

이제 바람 소리보다 노을이 번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 세상의 소란으로 뒤숭숭한 당신, 영원히 꺼지지 않은 햇빛 하나를 그렸어 저무는 게 아니라 하늘 전체를 당신 색깔로 물들이는 중이라고 중얼거렸어

 

어둠이 당신을 덮으려 할 때마다 더 큰 하늘을 그리며 새를 밀어냈어 구도 밖으로 당신이 걸어 나왔어 노을 속엔 아직 당신이 그리지 못한 그림들이 있어 이 뜨거운 색채가 식기 전, 당신은 이젤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갈 거야

 

당신이 그린 노을 속,

길은 언제나 계속되니까

--애지사화집 김선옥 외 {꽃밥}에서

 

 

 

 

 

 

 

 

약력; 2024년 애지 가을호로 등단

2025년 시삶문학상 수상

 

mril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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