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악기 / 송재학
레인스틱* 속의 비는 왜 고요하지? 비의 중력장에선 물질은 모두 형광이다 비는 익숙하고 놀라운 감정이다 천천히 레인스틱을 기울이면 맨발의 우각(雨脚)이 걸어간다 젖은 풀의 정강이가 빗줄기 닮은 것도 보인다 레인스틱으로 스콜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고 하지만 손바닥만큼 고이는 비의 고요가 좋다 모래와 자갈, 자갈과 조개껍질 부딪치는 소리이면서도 까칠까칠하면서 젖어가는 느린 파문이 좋다 느린 빗발은 그림자까지 소소하다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와 토닥토닥 비는 서로 극미립사의 혀를 건네고 있다 레인스틱은 물의 트럼펫이면서 물의 약음기이다 비와 레인스틱은 내 몸속 98퍼센트 수분을 재빨리 눈치챈다 우기의 레인스틱은 구름이 숨겨논 먹구름과 천둥의 순서도 잊지 않는다 한 번 젖어버린 레인스틱처럼 나도 젖어버린 기억을 흉곽에 채우는 중이다 내가 빗방울로 생각될 때까지
주)* 비를 가장 그리워했던 선인장 가지 속을 파내어 모래나 자갈 등을 넣어 뒤집어 세우거나 흔들면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칠레 등지에서 기우제에 사용된다.
[내간체를 얻다], 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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