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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범의 터널 속의 기린과 눈물이 마른 소녀들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20.07.05|조회수76 목록 댓글 0

터널 속의 기린과 눈물이 마른 소녀들

조동범

 

어둡고 무서운 오늘밤을 생각한다

터널은 끝이고, 끝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불운은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미칠 것 같은 오늘밤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의 다리는 모두 끊어진 채 폭풍우를 기다리고 있다

 

터널 속의 기린을 본 적이 있는가

머리가 천정까지 닿을 듯 느리게 걷는 기린의 오늘밤은 그러나

 

터널 밖의 세상을 모른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기린은 천천히 어둠이 되어가며 큰 눈을 껌벅여 어둠을 거두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터널 속의 기린은 터널 속의 기린일 뿐이고

물러설 수 없는 벼랑은 터널의 출구에 비명처럼 버티고 서 있다

 

눈물이 마른 소녀들이 터널의 출구에서 벼랑과 기린과 오늘밤의 어둠을 통곡하지만,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오늘밤은

깊고 푸른 악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려 한다.

 

마른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지나가면

세상은 경악을 거듭하며 불온한 소문을 웅성일 뿐이다

터널 속의 기린은 여전히 터널 속에 있고, 소녀들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지 못하며,

 

세상의 끝으로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고 믿고 있는 기린과

소녀들의 무서운 오늘밤은

추도할 수 없는 어젯밤이 되어

내일 밤의 마른번개를 향해 아득히 멀어져 갈 뿐이다.

 

어둡고 무서운 오늘밤을 생각한다

그것은 미칠 것 같은 오늘밤이고,

기린과 소녀는 세상의 끝을 향해 걸어 들어가며

모든 불행의 기원을 영원토록 복기하려 한다

----2020년 애지여름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힘찬 일터를 확보하지 못하고 먹고 살 걱정을 해야 되는 일일 것이다. 일터는 그 주체자의 생존의 영역이며, 이 일터가 없는 사람들은 떠돌이-나그네가 되어 거지짓을 하다가 절대빈곤의 선상에서 굶어죽게 될 것이다. 모든 전쟁은 영토싸움이며, 이 영토싸움은 너무나도 피비린내 나는 잔혹극으로 진행된다. 부자는 더욱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지 못해서 미치광이가 되어가고, 가난한 자는 최소한도의 영토를 확보하지 못해서 미치광이가 되어간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예로부터 탐욕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피비린내 나는 잔혹극을 멈추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은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를 해왔는 데, 공산주의와 자연주의가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공산주의는 만인평등에 기초하여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한다는 것을 말하고, 자연주의는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고 모든 문화적인 삶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공산주의와 자연주의가 다같이 일치하는 것은 인간의 탐욕을 억제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러나 오늘날은 자본주의라는 미명 아래 탐욕을 극대화하고 그 모든 것을 승자독식구조로 결정하게 된다.

지식은 사기치는 기술이며, 이 사기술은 대학제도에 의하여 생산되고 관리되며, 이 사기술을 배운 자만이 모든 자본을 독식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가령,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대기업이 전체 부의 90%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러나 전체 고용률은 11% 밖에 되지 않는다. 생산현장은 물론, 화이트 칼러들의 일자리인 사무실마저도 전산화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되, 고용은 최저 수준을 자랑하게 된다. ‘고임금- 저효율은 자본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고, ‘저임금- 고효율은 자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모든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들은 돈벌이의 도구이자 탐욕의 도구이고, 그 결과, 모든 자본은 소수의 부자들이 독점을 하게 되었다. 자본가는 너무나도 교활하고 뻔뻔하며, 이 자본가들이 사회적 약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굶어죽이는 일은 하루아침의 해장거리도 안 되게 되어 있다. 인류 전체가 먹고 살고도 남을 만큼 식량이 남아돌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가난하게 살고, 자본과 상품과 인간들이 실시간대로 전세계를 넘나들지만, 대부부의 인간들은 자기 자신의 일터를 확보하지 못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일류대학을 나오면 좋은 일자리는 물론,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지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삼류대학을 나오면 좋은 일자리는 커녕 먹고 살 걱정을 면할 수가 없다.

조동범 시인의 [터널 속의 기린과 눈물이 마른 소녀들]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생존의 영역, , 일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비가이며, 세기말적인 불행의 전주곡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실업은 터널이고, 터널은 어둡고 무서우며, 그 끝이 없다. 이 어둡고 무서운 터널을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의 다리는 모두 끊어진 채 폭풍우를 기다리고있는 것이다. 일자리는 태양이고 희망이며, 일자리를 찾아 터널 속의 기린이 되어 머리가 천정까지 닿을 듯조심조심 걸어가지만, “터널 속의 기린은 터널 속의 기린일 뿐이고/ 물러설 수 없는 벼랑은 터널의 출구에 비명처럼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출구가 벼랑이 되고, 벼랑이 단말마의 비명, , 터널의 입구가 된다. 출구가 벼랑인 터널, 벼랑이 입구인 터널, 모든 불운의 시작과 모든 불행의 기원인 터널,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어둡고 무섭기만 한 터널, 시적 화자인 기린이 이처럼 두렵고 무서운 터널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눈물이 마른 소녀들터널의 출구에서 벼랑과 기린과 오늘밤의 어둠을 통곡하지만”, 그러나 이제는 눈물조차도 흐르지 않는다. 이 세상의 삶 자체가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라면, 마른하늘에서는 최후의 심판과도 같은 번개가 이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을 경악하게 하며 불온한 소문들을 양산해낸다.

세상의 끝으로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되고, 세원의 기원으로부터 모든 불행은 또다시 시작된다. 불행이 불행을 낳고, 불행이 불행의 손을 잡고 더없이 친절하게 인사를 하면, 터널 속의 기린과 눈물이 마른 소녀들이 백수의 왕인 사자 앞의 제물처럼 부들부들 떨게 된다. 어둡고 무서운 오늘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생존의 벼랑끝에서 미칠 것 같은 오늘밤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최후의 심판과도 같은 마른번개 역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기적은 없다. 금수저에게는 태양이 떠오르지만, 흙수저에게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순간에 살고 순간에 만족하며, 배가 부르면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며, 그 모든 삶을 놀이로 삼는 자연주의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며, 모든 적대감을 청산하고 모두가 다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은 어디에 있는가? 부의 축적과 부의 대물림을 모르며 자연에 순응하는 동물들의 삶은 그것이 가능하지만, 악마 중의 악마인 인간에게서 탐욕을 제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하지가 않다. 인간은 본디 타고난 천성과 유전자마저도 조작하는 악마들이며, 만물의 터전인 자연으로부터 하루바삐 대청소해야 할 악마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상기온과 남극과 북극의 해동解凍, 대홍수와 대폭풍우와 불볕더위----. 드디어, 마침내, 대자연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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