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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의 멸치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23.04.22|조회수50 목록 댓글 0

멸치

박영

 

냄비에 육수를 끓이려 멸치를 넣는다

멸치들은 포기한 듯 순종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하얀 눈알의 백내장 멸치만

입을 얼굴만큼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은빛 날개 휘날리며 하늘로 오른다는 시인의 넋두리에 속았지

어망에 발 담그고 꿈도 꾸기 전

멸치털이에 놀라 날아오르다 꼬꾸라지고

 

눈알 빠진 멸치는 눈인사 못하고 지나친 멸치

목 댕강 내장 쏙 뺀 멸치는 친근한 멸치

눈알 흰 멸치는 기가 센 멸치

 

피 말리듯 온몸 물기 말리며

염원은 염장으로

햇빛도 소금도 멸치의 길

 

고등어 횟집 서비스로 나온 멸치회무침은 잊어

다음 생은 멸치회 전문점에서 만나는 걸로

 

잡놈들 다 모아놓은

한봉지 싸게 값을 치렀지만

근본 없는 멸치라고 하지 않을 게

 

기장멸치 외포항멸치 여수멸치 통영은 죽방멸치

맛있다잖아 봄멸치

 

그래요 그래요

눈알 내리깔게요

백내장 수술로 세상이 달라 보이면

악을 쓰던 입은 다물어질까요

----애지문학회 사화집 {북극 항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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