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애지의초점

이경수의 숨, 생명의 무게-조영심의 시세계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18.11.05|조회수382 목록 댓글 0

, 생명의 무게

  이경수

    

 

󰡔담을 헐다󰡕󰡔소리의 정원󰡕 두 권의 시집을 낸 조영심의 시는 시 쓰기에 대한 사유와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인식으로 관심의 방향이 향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시들은 밝은 귀까지 닿아야 할 소리를 위해” “연주하라연주하지 마라사이에서 흔들리며 쉼표를 연주하는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삼백예순날 도돌이표를 몰고 온, 숨의 박자에 고이는 숨결과 네 숨결의 무늬를 따라 오선지의 고저가 멈춘 바로 그 자리, 오직 박자만을 안고 있는 거기에서” “다시 연주해야 함을 조영심 시의 주체는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쉼표도 악보의 일부”(쉼표를 연주하라)임을 깨달은 시인은 한결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은 시선으로 인류의 방이라 불리는 입원실의 풍경을 그려낸 바 있다. “자동차에 치여 다리에 철심을 박고/ 일찍이 떠나온 투르카나 호숫가를 꿈길로만/ 누워서 오가는 할머니 호모눕다쿠스의/ 쉬 잠들지 못하는 현생 인류의 밤현기증 일으키는 스펙에 매달리다/ 3층 계단에서 발목 접질려/ 네발짐승이 된 젊은이 호모스펙타쿠스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에 맞추어 사느라/ 아예 한쪽으로 쏠려버축대를 곧추세우려 두 발로 절뚝거리는” “이 방의 유일한 호모에렉투스” ‘까지 함께하는 암울한 입원실의 풍경을 그리는 시인의 시선은 절망적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신작시에서도 시 쓰기와 이 고단한 삶에 대한 사유는 지속된다.

 

하늘 말고는 모두 오지겠지,

오지에서 오지게 살아가는 저 여자에겐

아니,

하늘과 땅을 제 섬에 한껏 들여놓고

비바람 야금야금 거름 치는 저 여자에겐

하늘마저 그렇겠지, 나처럼

나는 절대 아냐, 믿고 사는 그대처럼

 

제 둥지 밀어낸 사내 대신

밤낮 허리 못 펴고 살아온 인간

남일 마다 않고 발 벗고 나서는 상일꾼

남의 젖은 이야기에 제 설움 섞는 사람

말 못 하는 짐승 밥 먼저 챙기고

무릎으로 기꺼이 제 허물 헤아리는

허벅지 유난히 탄탄한 여자

제 섬 밖으로 나간 적 없는

살 날 받아 놓아 살짝 눈꼬리 흔들렸지만

 

아직도 뜨겁고 뜨거운 여자

오지게 오지에 사는 그 여자

—「오지의 여자전문

 

오지에서 오지게 살아가는 저 여자가 시의 주체의 눈길을 잡아끈다. 오지에 대한 시적 주체의 생각이 변화함에 따라 오지의 여자에 대한 생각도 변화한다. 오지에서 살아가는 저 여자에겐 하늘 말고는 모두 오지겠지라고 생각했던 주체는 이내 자신의 생각을 부정한다. “하늘과 땅을 제 섬에 한껏 들여놓고/ 비바람 야금야금 거름 치는 저 여자에겐/ 하늘마저오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시적 주체 와 오지의 여자의 삶은 분리되어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오지의 여자의 삶을 가늠하던 시의 주체는 이어서 오지의 여자의 삶과 자신의 삶이 사실상 그리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나처럼/ 나는 절대 아냐, 믿고 사는 그대처럼오지 아닌 곳이 없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시적 주체에게 온다. 오지에 사는 여자뿐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삶이 오지의 여자의 삶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주체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지의 여자는 제 둥지 밀어낸 사내 대신/ 밤낮 허리 못 펴고 살아온 인간이라는 것으로 보아 고된 노동에 평생 시달려온 여자이다. 그녀는 남일 마다 않고 발 벗고 나서는 상일꾼으로, “남의 젖은 이야기에 제 설움 섞은 사람으로 오지에서 오지게 살아 왔다. 누구 못지않게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남의 젖은 이야기를 그냥 흘려듣지 못하고 제 설움을 거기에 섞어 남의 아픔과 자신의 설움이 다르지 않음을 공감하며 살아온 것이다. “말 못하는 짐승 밥 먼저 챙기고/ 무릎으로 기꺼이 제 허물 헤아리는포용력을 지니게 된 것도 오지에서 오지게, 가장 고단한 삶을 살아온 체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몸으로 겪은 밑바닥 삶은 고된 노동 속에서도 말 못하는 짐승 밥 먼저 챙기고” “남의 젖은 이야기제 설움 섞어 들어주는 너른 마음을 갖게 한다. 조영심의 시에서는 생명을 지닌 존재를 보듬고 안쓰러워하는 마음결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조영심의 시를 시이게 하는 뜨거운에너지이기도 하다.

 

달리기 챔피언이 왜 맨날 연습을 허간디

 

아랫배에 숨을 실어 늘려봐 올챙이배가 될 때까지

드럼통에 기름이 가득 차 있을 때 차가 얼마나 심이 좋것어

그듯기 숨 쉬는 양을 심껏 늘려놔야 내 지르는 소리가 지름지거든

 

심 없이 숨으로만 말혀봐 입술로 깔딱거리는 거 말이여 근다고 맥없이 소리만 질러싸먼 듣는 귀가 껄끄러운 것이고

 

들고 나는 소리는 숨을 품고 나와야 보다닥허니

듣기 좋은 소리가 되는 벱이여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은 말이 있고 귀가 깔깔한 말이 있쟎여 지 숨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도 지 연습이고 다 지 노력이여

 

결승점서 안 넘어질라고 그런디야

자꾸 그런디야

—「레슨 일기전문

 

달리기 챔피언이라고 해서 연습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맨날 연습을 하며 몸을 단련하고 언제든 뛸 수 있는 상태로 몸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시의 주체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훈련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한 훈련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아랫배에 숨을 실어” “올챙이배가 될 때까지늘리는 훈련을 해야 내지르는 소리가 지름지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비법을 전수한다. “심 없이 숨으로만” “입술을 깔딱거리며 말하는 것이나 맥없이 소리만 질러대면 좋은 소리가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런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리 없음은 물론이다. “들고 나는 소리는 숨을 품고 나와야 보다닥허니/ 듣기 좋은 소리가 되는법이라는 시적 주체의 전언은 사실상 좋은 시를 쓰기 위한 훈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의 주체가 생각하는 좋은 소리, 즉 좋은 시는 심 없맥없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시의 언어가 힘과 맥을 지니려면 어떠해야 할까? “숨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라고 시의 주체는 말하는데, 그것은 결국 연습과 노력을 통해서 도달하는 경지이다.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은 말이 있고 귀가 깔깔한 말이 있듯이 숨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숨을 품고 나와야 보다닥허니/ 듣기 좋은 소리가된다는 것이다. “결승점서 안 넘어지려면, 다시 말해 끝까지 뒷심을 발휘해 좋은 시를 쓰려면 숨을 잘 써야 한다고 조영심 시의 주체는 강조한다.

 

브리즈번 피켓 거리 24번지 거실 벽에 시집 한 권 걸려 있다

이 위치에너지는

시간은 읽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시위하는 셈이다

 

첫 시집을 받아 든 어머니가

띄어쓰기도 행간도 없이 몇 달에 걸쳐

한 문장으로 베껴 쓴

육필 노트의 전언처럼

 

오감이 일시정지 된 레코더를 허공에 매달고

여린 숨결에도 흔들거리는

이 운동에너지는

사람은 들리는 마력을 감춘 세월이라고

말한 셈이다

 

시는 모르지만 네 정성은 느끼고 싶었어, 행여 때라도 탈까봐,

 

소리의 정원이 통째 뿌리내리고 물구나무선 이방인의 거리

뒤집힌 시집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가

백색 도화지가 되고 푸른 물감이 되고 물이 되고

날아가고 젖고 흐르고

—「거꾸로 보는 시전문

 

낯선 이국의 공간에서 자신의 시집이 거꾸로 뒤집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 시적 주체의 마음은 어땠을까? 언어의 차이, 문화의 차이를 제일 먼저 체감했을 것이고,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시집을 바라보게 됐을 것이다. 낯섦 자체가 만들어내는 공기가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시집의 물질성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의 주체는 호주 브리즈번 피켓 거리 24번지 거실 벽에 시집 한 권이 걸려 있는 것을 본다. 아마도 이 시집은 󰡔소리의 정원󰡕이라는 조영심의 두 번째 시집인 것으로 보이는데, 뒤집힌 채 거꾸로 벽에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이 위치에너지는/ 시간은 읽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시위하는것처럼 시의 주체에게는 여겨진다. 언어가 달라 시를 읽을 수도 없었고 그로 인해 제대로 보관되지도 못했지만, 오히려 뒤집힌 시집을 보며 시의 주체는 소리의 정원이 통째 뿌리내리고 물구나무선 이방인의 거리를 다시 체험한다. 이 거리에는 전에도 와 본 적이 있었겠지만 거꾸로 놓여 있는 시집으로 인해 이 공간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시집이 지닌 물질성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그 자체로 시집을 뿌리내리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뒤집힌 시집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가/ 백색 도화지가 되고 푸른 물감이 되고 물이 되고/ 날아가고 젖고 흐른다. 그 자체로 낯선 이방인의 거리에서 읽히면서 이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바꾸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시의 주체는 첫 시집을 받아 든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머니에게 딸의 첫 시집은 읽고 싶은 간절한 메시지였겠지만, 글을 모르는 어머니에게 딸의 첫 시집은 통째로 읽어야만 하는 그림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띄어쓰기도 행간도 없이 몇 달에 걸쳐/ 한 문장으로 베껴 쓴/ 육필 노트의 전언처럼이방인의 낯선 거리 거실 벽에 거꾸로 놓인 시집은 위치에너지운동에너지를 가진 읽히는 힘들리는 마력을 감춘 세월로 시의 주체에게는 통째로 각인된다. “시는 모르지만 네 정성은 느끼고 싶었어, 행여 때라도 탈까봐,” 시집을 소중히 벽에 걸어 둔 그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이다. 조영심의 시적 주체가 독자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방식도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온전히, 또는 샅샅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공감의 힘. “여린 숨결에도 흔들거리며 정성스럽게 몇 달에 걸쳐/ 한 문장으로 베껴 쓴어머니의 육필 노트의 전언처럼자신의 시가 그렇게 마음으로 먼저 독자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4시간 문을 개방합니다

사막성 기후 영향으로 동틀 무렵 느긋한 고요의 무게와 석양의 숨 막히는 노을 번짐으로 돌아서지 못하는 당신의 미련 때문에 다소 연장될 수 있습니다만, 시간을 보상하진 않습니다

 

일 년 삼백 예순다섯 날 공개합니다

새 바람결로만 높은 하늘 지붕을 열 수 있어 인도양과 태평양이 하나 될 때까지 연중무휴입니다 가끔은 중세와 현대, 미래를 혼용하는 당신의 시대초월성이란 병으로 인해 하루씩 단축 또는 연기될 수도 있지만, 입장료는 환불되거나 추가 징수되진 않습니다

 

모든 연령 모든 인종 입장이 허용됩니다 입장료는 본인 입장에 따라야 합니다

,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 누군가라도 탓하고 싶은 사람 누군가로부터 나가떨어진 사람 누군가를 다시 만날 것만 같은 사람 누구든지 다가 와 주기를 바라는 사람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 우리 시청광장 시계탑 종이 울릴 때 한 소식처럼 전송되는 탑 종소리를 해독한 분에게 전액 환불해 드리고 있습니다 호주 머니가 빈 사람은 무료입니다

 

주의사항

반드시 광장의 일은 광장에게로

—「어떤 광장 이용 안내전문

 

어떤 광장 이용 안내는 광화문 광장, 서울 광장에서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한 번쯤은 본 광장 이용 안내문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일 것이다. 굵은 글씨로 된 부분이 실제 광장 이용 안내문에 가깝다면 나머지 부분은 굵은 글씨로 된 안내문에 대한 일종의 주석인 셈이다. 광장 이용 안내문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24시간 개방하고, 일 년 365일 공개하고, 연령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입장이 허용된다는 것. “입장료는 본인 입장에 따라야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누군가라도 탓하고 싶거나 누군가로부터 나가떨어지거나 누군가를 다시 만날 것만 같거나 누구든지 다가와 주기를 바라거나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시청광장 시계탑 종이 울릴 때 한 소식처럼 전송되는 탑 종소리를 해독한 분에게는 전액 환불해 드린다는 것. “호주 머니가 빈 사람은 무료라는 것. 다시 말해 모두에게 일 년 내내, 24시간 내내 개방되고 공개된 공간이지만 그 중에서도 외로운 영혼들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어떤 광장 이용 안내문은 말한다. “반드시 광장의 일은 광장에게로라는 주의사항만 지킨다면 이곳은 많은 외로운 이들이 영혼을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외로운 영혼을 보듬어 안는 이 광장 이용 안내문이 시적이라고 조영심 시의 주체는 판단한 것이 아닐까. 시인 또한 그렇게 외로운 영혼들을 위무할 수 있는 시, 숨이라는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시를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

 

---------------------------------------

이경수 : 1999󰡔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주요 저서로 󰡔불온한 상상의 축제󰡕, 󰡔한국 현대시와 반복의 미학󰡕, 󰡔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 󰡔춤추는 그림자󰡕, 󰡔이후의 시󰡕,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다시 읽는 백석 시󰡕 등이 있음. 애지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젊은평론가상 등 수상.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