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를 까자 외 1편
정재율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당벌레 한 마리가
제 옷깃에 숨어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노르스름한 물은 새끼손가락을 타고
왼쪽 팔꿈치까지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손을 씻다
거울을 보고 알았고요
무당벌레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사실을
그건 살면서 가장 억울한 표정이었다는 것을
오렌지의 신맛을
혀에서 단맛이 나올 때까지 씹다 보면
어떤 맛인지 헷갈리게 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고
풀숲으로 뛰어들고 싶다고 생각할 때
무당벌레는 날개를 펼쳐 아주 조금만 이동하려 하고
왜인지 무당벌레에게서
신 냄새가 날 것만 같았습니다
오렌지를 까는 아주 잠깐에도
왜 아름다운 것들은 기다려주지 않는지
무당벌레 또한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작아서 아무도 몰랐겠지만
무당벌레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자
누군가 거짓말, 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진심이야
그런 말을 하고 뒤를 돈 마음이란
오렌지를 열심히 까 사랑하는 이의 입에 쏙하고 넣어주고 싶은 것
그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고 싶은 것
오렌지를 까자
단풍나무 냄새가 났습니다
오렌지를 까면서
누군가 건물 안을 비집고 들어갑니다
오렌지를 까는 동안
아름답게
무당벌레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갑니다
전국에 있는 양혜미씨들에게
정재율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대뜸 나에게 자신을 양혜미라고 소개했다.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내 이름을 말했다. 그는 이미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아는지 물어보았다.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고, 그는 우리가 진짜로 만날 것이라고, 앞으로 곧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은 왜 만났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커피를 마시며 기회가 왔을 뿐이라고 전했다. 커피의 원두 향이 점점 진하게 느껴졌다.
원두 갈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고, 누군가 뒤에서 주문을 잘못해 카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그와 나는 한 테이블에 계속 앉아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가 커피를 마시고 일어날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말했다. 카페 문을 열고 나가면서 그는 내게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금방 사라져버렸다. 바깥이 보이지 않는 창문이었다. 컵 안에 담긴 얼음이 천천히 녹아가고 있었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직장에 다니는 동안 나는 그와 벌써 세 번의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같은 카페에서 같은 커피를 마셨고, 그는 항상 먼저 일어났다. 나는 실제로 양헤미라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저번에 만났었죠? 라고 말할 것 같다. 길거리에서 분위기가 비슷한 사람을 보면 방금 지나간 그 사람 혹시 양혜미씨인가? 생각하면서 구파발행 열차에 올라탈 것 같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한쪽 발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반복되는 장면들 속으로 몸을 구겨 넣을 것이다.
프로필: 2019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 작품 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