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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의시인들

우리 젊은 시인들: 전문영의 [개의] 외 1편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15.02.05|조회수69 목록 댓글 0

개의

전문영

 

'개'라고 말할 때 우린 이미 조심스럽다

'뱀'이라고 말할 때도 장갑을 끼고 악수하긴 하지만

개가 안 보이면 아무래도 개조심이라는 말을 대문에 써 붙이게 되니까

그러면 개는 우리 집에 있는 셈이니까 안심이다

 

: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개가 없다

 

그런데 개가 없다고! 소리치면

언제까지 거기에만 매달려있을 거야! 아내는 소리 치고

우린 공원에 갔다가 개를 데려오려면 목줄을 동반하라는 경고문만 읽고 돌아온다

목줄이 동반자라면 애가 없는 부부에게 혀를 차는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

누군가는 우리에게서 개의 목줄만 질질 끌고 다니는 한 행려병자를 봤겠지

 

: 그러니 너를 개라고 하자

 

아 여러분 나는 개인가 봐요.

개의 요건은 무엇인가: 꼬리가 네 개 다리가 하나

아 여러분 기뻐하세요 저는 개가 아니었어요.

개는 장갑을 다 먹으면 죽는대: 니가 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면 이걸 다 물어라.

 

내가 장갑을 다문 사이에도

개들은 우리 곁을 지나갈 수 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내가 그 옆을 지나가도 딱히 상관은 없다

하나 둘 셋 넷... 아무 이유 없이, 개처럼

 

그 사이 목줄은 뱀의 허물처럼 수풀에 버려져있었다

누군가는 그걸 잡고선 뱀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매달릴 곳이 없어졌는데도

아내는 철봉처럼 비감한 얼굴로

적당히 장갑을 징거매고 있었다

 

이국취향

 

사격장에 가면 누구나 남의 권총으로 쏜다

가끔은 옆 테이블의 외국인을 위해 외국어로 대화하는 문명인

다소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그 모든 사태를 날씨라고 해도 좋다면

엿보거나 엿듣는 일 모두 이미 기후의 영역일 테고

 

남의 집 테이블은 늘 대륙처럼 넓고 항상 이국의 과일만 놓여있다

현관의 열쇠 접시처럼 딱히 먹으라고 둔 건 아니지만

네 입술은 벌어지고 그때 언뜻 비치는 치아는 제 온도에 떠는 유빙이다

대개 빙하는 수심을 감추는 일에 관여해서

 

사격을 마치면 넌 꼭 선글라스를 쓰고 내게서 멀어져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2013년 창비신인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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