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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의시인들

김상혁의 나의 여름 속을 걷는 사람에게 외 1편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16.05.08|조회수213 목록 댓글 0

나의 여름 속을 걷는 사람에게 외 1편

 김상혁

 

 

 

 

여름으로 오는 길에 너는 죽은 새, 봄의 검은 웅덩이, 깨진 울타리의 조각들, 다음 해 봄까지 잠들어 있으려는 자의 조용한 손을 밟으며 왔다. 그렇지만 지겹다! 새든, 봄이든, 울타리 속 꿈이든 다…… 그런 너의 마음은 나만 안다.

 

여름에서 도망치는 길에 너는 죽은 새를 더욱 뭉갠 일, 깨진 웅덩이와 울타리를 다시 깨뜨린 일, 꿈속의 비명을 꿈 바깥으로 꺼낸 일을 괴로워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 유령이 있다면 너는 삶과 유령 사이에 있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 넌 웃음이 많다……

 

너무 사랑이 많다. 그렇지만 지겹다! 여름이 풀을 키우고, 풀이 끝없이 퍼지다가 너의 생각을 뒤덮고, 그러다 불붙은 생각이 기쁨이 되었다가 결국 우리의 꿈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우리 그릇에 똑같이 밥을 채우는 것이 다…… 그런 너의 마음은 나만 안다.

 

그렇지만 네가 밟은 것, 밟아서 더 깨뜨린 것, 더 깨뜨려서 흩어진 것, 그런 지겨운 것이 죽은 새, 웅덩이, 부서진 울타리, 뒹구는 손을 덮어준다. 풀과 꿈을 키워준다. 다가올 여름과 지나간 여름 사이 슬픔이 있다면 너는 오늘과 슬픔 사이에 있고 싶다.

 

하지만 넌 너무 기쁨이 많다. 그런 너의 마음은 나만 안다.

 

 

 

미래의 책

 

 

 

 

집 밖으로 나가는 기분을 느끼려고 집 밖으로

도시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 작가의 여행기에

빠져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걷는 동안에도

버스와 기차에 앉은 순간에도 어쨌든 집 밖으로

가자는 생각에 온통 정신이 팔려 흔들리고

시끄럽고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밀치고

피가 나고 뉴스에서 야산에 유기된 썩은 몸이

나오고 투표합시다!’ 같은 외침이 들리고

누군가 혀를 차고 아까 당한 아이가 이번엔

때린 아이를 차서 울리고 말리고 사람이 모여도

나는 집 밖으로 나가자 꼭 여행 기분을 느끼자는

생각에 빠져 몇 시간을 더 도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집과는 전혀 다른 침묵과

색깔이 창밖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어두워진 차내 잠든 사람들 가운데 고요 가운데

나는 책을 덮었는데 아까 아까 흘러가버린

아이의 비명 유기된 자의 소식 투표독려

혀 차는 소리 군중 같은 울음이 한꺼번에

귓속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집을 다 벗어나서

너무나 멀리 왔고 막 여행기를 덮어버린 그때

 

-악력: 2009 <세계의문학> 신인상 등단. 2013년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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