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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의시인들

강우현의 복숭아 통장 외 1편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18.05.14|조회수212 목록 댓글 0


복숭아 통장 1편


강우현


과일 나라의 화폐 단위는

원으로 환산해 개당 이천 원이다



두 팔을 걷어붙인 노동자처럼

햇볕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의 일당은 세다

지문이 닳도록 움직이는 허공에서

꽃무늬 통장을 개설하고 땀 흘려 일하면

눈 깜짝할 새 액수가 불어난다

엉성한 약관이나

금리가 마이너스인 통장은

미리 폐기하느라 몸살을 앓기도 하지만

오뉴월 바람의 연고는 효과가 좋아 

가지 위에서 둥싯둥싯 잔고가 늘어난다


빛의 양이 많으면 수당으로 단맛까지 지급되어

전지 되지 않은 초리는 눈이 빛나고

밤이면 달을 필사하는 통장은 단단하거나 무르거나

둥그레 침샘을 자극한다

가끔 정보가 새나가 원치 않는 금액이 인출되고

잔고란에 방점이 하나씩 찍히면

액수는 줄기도 하지만

완성을 향한 고비는 언제나 있는 법

출고를 앞두고 폭염과 비바람을 건너야

모든 통장을 채울 수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만기 된 통장은 바로 해지된다




         

竹, 경전이 되기까지



원뿔을 올리면

설계가 끝난 것,

그들의 계획이 진행되는 신호다

대물림한 유전자에

온도나 습도가 맞아떨어지고

비바람에도 끄덕없는 기초공사가 마무리된 것


눈부신 지상을 뚫는 일이

어디 만만한가

정확한 위치와 문의 크기를 표시해

스케치한 몸을 대보고

바람의 속도까지 계산한 도면대로

눈을 질끈 감고 한판 붙는 일이다


그늘이 마음 놓고 지경을 넓히는 곳이면

휑한 허공은 모두 길이 되어

하룻밤 키에도 물이 오른

어디서 정점을 찍을지 밤새도록 별은 깜박거리고

바람을 껴입는 댓잎은 초록으로 흔들린다



뿌리를 뻗는 것들은 흙의 자식,

단단한 집을 짓고 나온 기억으로

치솟으며 마디마디 바람의 경을 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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