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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반칠환 명시감상: 선안영의 해동모텔을 지나며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26.06.06|조회수29 목록 댓글 0

해동모텔을 지나며

선안영

 

홀딱 반한 길이 많다. 꽃이 많다. 말하던 중

봄 들판 한가운데 느닷없는 모텔이라니

추웠던, 아니 얼었던 세월아 자고 갈래?

 

자잘한 꽃단추가 많이 달린 블라우스

잘 채워진 단추들만 풀다가도 늙겠구나

지퍼의 질주본능의, 지름길을 모른 채

 

얼음의, 침묵의, 금기의 단정함으로

나는 나의 울음소리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상처의 불안을 안고 손이 손을 잡는 봄

 

겨우내 씨앗처럼 잠들었던 투숙객들 모두 떠났죠. 쭉정이 같은 이불만 남았어요. 늦지 않았어요. 어서 퇴실해요. 속울음 참지 않아도 돼요. 직업상 비밀이지만 베갯맡이 젖지 않은 손님 드물죠. 제 눈물이 저를 잠기게 할 즈음 상처와 불안은 발아를 돕죠. 망설이던 모든 생명들 한달음에 달려 나가 태양의 축제를 벌이죠. 초록 들판에 한들거리던 것들 꽃단추였군요. 호호, 단추 하나 풀지 못하는 바람은 바람이 아니죠. 그대도 못 이기는 척 옷깃을 맡겨 봐요. 틀림없어요. 꽃 진 상처마다 열매가 맺힌다니까요.

-반칠환 시 해설집 {당신의 짐이 당신의 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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