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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환의명시감상

배정웅의 [내 이승의 숨 놓거든]

작성자반경환|작성시간16.03.06|조회수130 목록 댓글 0

내 이승의 숨 놓거든

배정웅

 

서장에서는 죽은 사람의 뼈로

피리를 만들어 분다고

남미의 히바로 인디언은

죽은 사람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즐긴다고

오랫동안 침향목처럼 여울에 담그고

햇빛과 바람과 새소리에 건조시킨 사람의 한 생애

영혼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그 입을 꿰매어

상품으로 내다 팔기도 한다고

사람이 죽어서도 때로는 그 육신이

슬프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내 이승의 숨 놓거든 내 뼈에다가는

구멍 몇 개 되는 대로 뚫어

온전한 소리꾼이 되지 못한 내 허허한 노래를

그대여 한두 소절만 읊조려 주었으면

----[국경 간이역에서}, 도서출판 지혜에서

 

  혼자 밥 먹고 혼자 놀고 혼자 잠잔다. 혼자 산책하고 혼자 TV를 보고 혼자 외롭다. 혼자책을 읽고 혼자 인터넷을 하고 혼자 영화관을 간다. 혼자 세수를 하고 혼자 음악을 듣고 혼자 아프다. 혼자라는 질병은 풍요 속의 암적인 종양이며, 모든 학문의 성과가 도로아미타불에 그치는 구체적인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이 모든 믿음을 대청소해버렸고, 우리 인간들의 에덴동산마저도 파괴해버렸다. 너와 나는 우리가 아니라 영원한 타인이며, 그 어떠한 의사소통의 출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죽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죽었다. 형님도 누나도 죽었고, 친구도 애인도 죽었다. 비행기가 있어도 갈 곳이 없고, 자동차가 있어도 갈 곳이 없다. 스마트폰이 있어도 대화할 친구도 없고, 인터넷이 있어도 접속할 사람이 없다. 사회주의가 쇠퇴를 하고 개인주의가 득세를 했지만, 이 개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인간의 죽음으로 나타났던 것이다.‘혼자라는 나무가 우뚝서서 혼자라는 질병을 수소폭탄처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이다. 혼자병이 수소폭탄처럼 터지면고령화라는 재앙이 나타나서, 산송장이 모든 신생아와 모든 젊은이들과 모든 산천초목들을 다 잡아먹게 될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다. 산 사람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기쁨이며, 행복일 수도 있다. 우리 인간들의 삶의 목표가 이러한 삶의 기쁨과 삶의 행복이라면, 그러나 그 기쁨과 행복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상생활의 그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탐욕은 만악의 근원이며, 이 탐욕을 제거하는 일로부터 모든 종교들이 출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낡디 낡은 옷을 입었을지라도 먹고 살 걱정이 없으면 되는 것이고, 한 사람의 동지나 수많은 아랫 사람들이 없어도 언제, 어느 때나 천하의 대로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탈을 만들고, “오랫동안 침향목처럼 여울에 담그고/ 햇빛과 바람과 새소리에 건조시킨미이라는,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의 모든 탐욕을 다 버리라는 경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은 자의 해골이나 그 뼈대들처럼 음산하고 기이하고 끔찍한 것도 없고,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인생의 무상함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늘 아래 두 명의 왕이 존재할 수는 없었고, 따라서 이 왕위쟁탈전만큼 무자비하고 온갖 끔찍했던 피비린내를 연출해냈던 사건들은 없었던 것이다. 피리는 배정웅 시인의 [내 이승의 숨 놓거든]이라는 시에서처럼 인골人骨로 만든 피리이어야 하며, 이 피리 소리를 통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죄악과 그 탐욕을 씻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배정웅 시인은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이후 곧바로 남미로 이민을 갔고, 현재는 LA에 정착하여 미주시단을 이끌고 있는 원로 시인이다.

 

내 이승의 숨 놓거든 내 뼈에다가는

구멍 몇 개 되는 대로 뚫어

온전한 소리꾼이 되지 못한 내 허허한 노래를

그대여 한두 소절만 읊조려 주었으면

 

  모든 악기 중에서 그는 인골人骨로 만든 피리를 제일 좋아한다. 그 피리 소리는 돈과 권력과 명예를 무화시키고, 언제, 어느 때나 악의악식과 최악의 조건마저도 쾌적하게 만들어 준다. 하루살이의 독방도 우주처럼 넓어지고, 산다는 것이 피리 소리처럼 절창을 이루게 된다. 탐욕을 버리니까 네 것내 것이 없어지고, 인종과 종교에 대한 편견도 없어진다. 인골人骨로 만든 피리 소리는 그를 높이 높이 끌어올려주고, 그의 죽음을 해골처럼, 또는 갈비뼈나 무릎뼈처럼 풍화시키고, 그의 영원한 행복을 향유하게 한다. 인골人骨로 만든 피리를 부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즐겁고, 모든 것이 행복하지 않을 리가 없다.

  '혼자병은 인골人骨로 피리를 불어야 하는 병이며, 무사무욕이 특효약이 되는 그런 질병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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