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마시다
최경선
찻잔 속에 풍덩 달이 빠진다
가끔씩 신에게 어디론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붉은 지붕들이 히비스커스처럼 피어나는 지중해 해안가로
달의 여신 히비스에게 바친다는 꽃을
나에게 헌화한다
달리의 시계처럼
허물어지며 천천히 녹아내리는 시간의 궤적
하와이 여인들은
꽃을 왼쪽 귀에 꽂았다가 오른쪽 귀에 꽂기도 하지
그건 누구를 하루 동안 마음속에 품는다는 것
창 너머로 어제 불던 바람이 지나간다
나는 잠시 찻잔을 내려놓고
오늘의 무표정을 바라본다 혹은 무료함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 허전함은
테이아,
수십억 년 전 지구와 충돌한 별의 잔해처럼
너는 찰나가 되어 떠나갔지 은하 저 쪽으로
하품을 물며
길고양이 한 마리 출렁거리는 달빛 속으로 걸어간다
꽃이 사라진 찻잔에 밤이 담긴
---애지 여름호에서
히비스커스는 아욱과 무궁화속의 식물이며, 풀과 관목과 교목으로 이루어진 수백 개의 종이 있다고 한다. 따뜻한 온대 지방과 아열대 지방과 열대 지방에서 자라고 대부분의 화려한 꽃을 피우고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된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히비스커스를 중요하게 여기고, 타이티와 하와이에서는 여성들이 히비스커스꽃을 머리에 장식하는 전통이 있고, 한국에서는 무궁화를 국화로 삼고 있다.
가난은 최하 천민들의 질병이고, 권태는 상류사회의 질병이다. 최경선 시인의 [달을 마시다]는 그의 무료함과 허전함을 치료하기 위한 극약처방이고, 그 결과, “달의 여신 히비스에게 바친다는 꽃을/ 나에게 헌화”하게 된다. 가끔씩 나는 “신에게 어디론가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 소원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갈 수도 없었고, “붉은 지붕들이 히비스커스처럼 피어나는 지중해 해안가”에도 갈 수가 없었다.
트로이 전쟁, 아테네 전쟁, 로마제국의 전쟁, 십자군 전쟁,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스포츠와 축제와 마약과 도박마저도 권태에서 비롯된 것이고, 모든 잔인성의 기원은 권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의 시계처럼/
허물어지며 천천히 녹아내리는 시간의 궤적” 속에서 ‘히비스커스 차’를 마시며, “찻잔 속에 풍덩 달이 빠진다”는 것은 달의 신을 생포하고, 나의 부탁을 무시한 달의신에게 보복을 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와이 여인들”이 “꽃을 왼쪽 귀에 꽂았다가 오른쪽 귀에 꽂기도 하”는 것처럼 “달의 여신 히비스에게 바친다는 꽃을/ 나에게 헌화”하며, 자기 자신을 신의 위치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그러나 달의 여신에게 그 지위를 빼앗고 신성모독적인 보복을 가해도 나의 무료함과 허전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창 너머로 어제 불던 바람이 지나”가고, “나는 잠시 찻잔을 내려놓고/ 오늘의 무표정을 바라본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 허전함은/ 테이아/ 수십억 년 전 지구와 충돌한 별의 잔해처럼” 나 역시도 찰나가 되어 “은하 저쪽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품을 물며/ 길고양이 한 마리 출렁거리는 달빛 속으로 걸어”가고, “꽃이 사라진 찻잔에 밤이 담긴”다.
묻지마 폭행, 묻지마 폭언, 묻지마 살인, 묻지마 마약, 묻지마 도박, 묻지마 전쟁 등----. 모두가 다같이 하루살이이고 뜨내기이며, “태양이 너무 눈부셔 총을 쏘게 된다.” 최경선 시인의 [달을 마시다]는 인생 전체가 무료함과 허전함, 즉, 권태뿐이며, 그 어떤 희망도 기쁨도 없다는 허무주의자의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권태는 만악의 근원이며, 권태에 사로잡히면 네로 황제와 존왕과 스탈린과 히틀러처럼 그 모든 짓을 다할 수가 있다. 사기, 도박, 마약, 술, 강간, 폭행, 살인, 전쟁 등, 이 모든 것이 삶의 의미와 목표를 잃고 그 무료함과 허전함을 극복하기 위한 발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달을 마시다]는 무목표, 무의지, 무책임의 소산이며, 모든 기대와 희망이 도로아미타불의 헛수고가 된 결과라고 할 수가 있다.
권태는 모든 악질적인 사건의 장본인이자 변신술의 대가이며, 그 어떤 천사마저도 타락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악의 충동은 벌꿀처럼 달콤하고, 자기 자신과 그 모든 인간들을 다 타락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