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밭
유종인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터 가는 길
길 한 번 잘못 들었더니
시골길은
슬그머니 언덕 위로 부르더니
민틋하니 기울어진
만판 양배추밭을 뵈준다
얼마 전 입양 보내듯 비운 채
허공을 산후조리하는 언덕바지 양배추밭이
저마다 양배추만 한 허공을 품고 있는
텅 빈 양배추밭이,
나는 기갈나게 좋아라
뭔가 그럴듯하게 있는 거
여기선
뭔가 그럴듯하게 없는 거
이미 한 시절 한 건달 당겨쓰고
고생과 탄식과 보람도
다 댕강 머리 쳐 보낸
뿌리와 겉잎만 남은 텅 빈 양배추밭이
한 재산 얻은 듯 좋아라
이제 건달하기 좋다는 듯
허허로운 웃음들
허허로움이
몸살나게 좋아 죽겠어서
자 봐라
언덕배기 양배추밭 몸져 누워들 있네
--{애지}, 2026년 여름호에서
이 세상의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고, 자기 자신의 몸에 맞는 음식과 좋은 옷을 걸치고 있으면 그것보다 더 즐겁고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유종인 시인의 [양배추밭]은 이 세상에서 모든 일과 그 임무를 마친 자의 삶의 기쁨이자 그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때는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터 가는 길”이고, 그 무대는 “만판 양배추밭”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이 세상의 임무를 다 마치고 간 큰 스승이라면 “만판 양배추밭”은 모든 자식들을 다 출가시킨 “텅 빈 양배추밭”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요컨대 텅빔으로써 가득한 양배추밭이고, 이 어렵고 힘든 삶을 그러나, 너무나도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길 한 번 잘못” 든 것이 뜻밖의 행운이 되고, “민틋하니 기울어진/ 만판 양배추밭”이 유종인 시인에게 이처럼 삶의 여유와 기쁨을 가져다가 준 것이다. “얼마 전 입양 보내듯 비운 채/ 허공을 산후조리하는 언덕바지 양배추밭이” “저마다 양배추만 한 허공을 품고 있는/ 텅 빈 양배추밭이/ 나는 기갈나게 좋”은 것이다. “뭔가 그럴듯하게 있는” 것이 “여기선/ 뭔가 그럴듯하게 없는” 것이고, 이 ‘없음’을 통해서 “한 재산 얻은 듯” 좋은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훌륭한 어버이들이 전재산을 다 나누어주고도 더욱더 크나큰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듯이, “텅 빈 양배추밭”을 “만판 양배추밭”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음지와 양지가 다르다. 동양인의 행복과 서양인의 행복이 다르고, 농부의 생각과 시인의 생각이 다르다. 똑같은 문제와 똑같은 사건들도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듯이, 삶이란 관점의 문제이고, 자기 스스로 만족하면 그 어떤 성인군자의 삶도 부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이미 한 시절 한 건달 당겨쓰고” “뿌리와 겉잎만 남은 텅 빈 양배추밭이/ 한 재산 얻은 듯 좋”은 것이고, “이제 건달하기 좋다는 듯/ 허허로운 웃음들/ 허허로움이/ 몸살나게 좋”은 것이다.
유종인 시인은 그의 [양배추밭]을 통해서 “텅 빈 양배추밭”을 “만판 양배추밭”으로 미화시키고, 나는 “텅 빈 양배추밭이” “기갈나게 좋다”고 말한다. ‘기갈’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그 말의 반어, 즉, “산후조리하는 언덕바지 양배추밭이” 너무나도 보기 좋고 정겹다는 뜻이라고 할 수가 있다.
노후는 여생이고, 여생은 “허허로운 웃음”들과 그 “허허로운 웃음들”이 텅 빈 양배추밭을 가득 채운다.
만족도 찰나이고, 행복도 찰나이고, 이 세상의 삶의 찬가가 끝나기 무섭게 한 생애가 끝난다.
엠페도클레스는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졌고,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은 그의 나이 70세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노자는 어느 날 물소를 타고 사라져갔다고 한다.
‘사는 법과 죽는 법을 안다는 것’, 이것이 제일급 대가의 특징인 것이다. ‘인간70 수명제’를 실시하고 모든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다 해체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복지정책은 없을 것이다.
첫째, 세계적인 고전들을 읽고 또 읽는다. 둘째, 전 인류의 스승들의 사상과 이론을 배우며, 천하제일의 삶의 지혜를 주식主食으로 삼는다. 셋째, 전 인류의 스승들의 가르침을 짓밟으며 그것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만의 사상과 이론을 창출해낸다.
이것이 진정한 전 인류의 스승의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