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
이영식
세밑이었지.
썰렁하다 못해 두개골의 눈구멍처럼 텅 빈 세종로 대로변 상가들. 한 집 건너 나붙은 폐업 딱지가 부고장인 듯 을씨년스럽다. 연말 특수는커녕 남이야 죽든 말든 좌우 두 패로 갈라져 극한으로 치닫는 정치의 혹한기. 겨울의 항문은 꽁꽁 얼어붙어 오갈 데 없이 꽉 막히고 말았네.
아귀 놈은 어디로 숨었는지 시뻘건 콩나물만 산더미로 쌓인 아귀찜 앞에 소주잔 놓고 뵈지도 않는 내일을 아귀아귀 씹는 군상들. 거친 세파 속 이러구러 악바리로 헤쳐온 이 시대의 아귀여, 머리보다 큰 아가리 떡 벌려서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 아가리의 힘으로 버텨온 너와 내가 아니더냐.
말로만 번지르르 애국자인 개뼈다귀 같은 것들. 싸잡아 안주로 씹으며 소주잔 털어 넣다 보면 욕 잔치가 거나하게 벌어지고 거칠어진 이바구에 아귀 뼈가 씹히는 거다. 그려, 아귀는 버릴 게 하나도 읍다니께. 아귀 부속 같은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일군 거여. 아문 그렇고말고.
소주병 수북이 쓰러뜨린 뒤 일어서며 주머니 뒤적이다가 손끝에 딸려 나온 종이쪽지 하나. 그래 이 잡것, 바로 네 놈이렷다. 허구한 날 공치는 판에 가게 세貰는 빠지지 않는데 상점 문틈으로 기어든 겨울 불청객. 다름 아닌 급전이나 사채를 유혹하는 또 다른 검은 아귀, 아귀들. (내가 왜 이 종이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지?)
이 우라질 놈의 세상, 온종일 묵었던 울화를 전단지처럼 북북 찢어 날리고 아귓집 골목 나서는데 머리카락도 몇 안 남은 이마 위를 번들번들 비벼대는 맥반석처럼 차가운 달. 한껏 불콰해진 사내가 작심한 듯 가운뎃손가락을 비아그라 먹은 성기처럼 불뚝 일으켜 세우더니
씨벌, 엿이나 먹어라!
--애지 여름호에서
아귀는 아귀목 아귀과에 속하는 생선이며, 주로 암초지대나 해조가 무성한 바다밑에 산다. 아귀는 일반 생선과는 다르게 살이 쫄깃한 것이 특징이고, 맛은 단백한 편이나 특별한 감칠 맛이 없기 때문에 주로 양념과 곁들이는 요리에 많이 사용된다. 아귀는 아주 못 생겼고, 그 외모 탓에 옛날에는 버림을 받았지만, 오늘날의 아귀찜은 수많은 술꾼들과 식객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할 수가 있다. 머리보다 큰 아귀의 입은 탐욕의 화신이며, ‘내로남불의 대명사’라고 할 수가 있다. ‘나의 탐욕은 좋은 것이고, 너의 탐욕은 나쁜 것이다.’
이영식 시인의 [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은 돈벌이가 형편 없는 자영업자가 ‘아귀찜’을 먹으며, 그 아귀 같은 탐욕을 숨긴 채 타인의 탐욕을 향해 “이 우라질 놈의 세상”, “씨벌, 엿이나 먹어라!”고 쌍욕을 해댄다. 때는 한 해가 저무는 “세밑”이었고, 그 무대는 “세종로 대로변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한 집 건너 나붙은 폐업 딱지가 부고장인 듯 을씨년스”럽고, “연말 특수는커녕 남이야 죽든 말든 좌우 두 패로 갈라져 극한으로 치닫는 정치의 혹한기”였다. “겨울의 항문은 꽁꽁 얼어붙”었고, “아귀 놈은 어디로 숨었는지 시뻘건 콩나물만 산더미로 쌓인 아귀찜 앞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따지고 보면 “거친 세파 속 이러구러 악바리로 헤쳐온 이 시대의 아귀”였고, “머리보다 큰 아가리 떡 벌려서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 아가리의 힘으로 버텨온 너와 내가” 아닐 수가 없다.
모든 여야 정당의 싸움은 사생결단식의 싸움이고, 모든 경제적 싸움은 약육강식의 싸움이며, 그리고 승자독식구조의 싸움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목적이 있어도 실패하면 끝장이고, 아무리 더럽고 추악하다고 하더라도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면 개선장군의 영웅이 된다. 이영식 시인의 [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은 더없이 생존에 지치고 도저히 가망 없고 승산 없는 싸움을 해야만 하는 소시민(자영업자)의 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말로만 번지르르 애국자인 개뼈다귀 같은 것들. 싸잡아 안주로 씹으며 소주잔 털어 넣다 보면 욕 잔치가 거나하게 벌어”진다는 것이 그렇고, “소주병 수북이 쓰러뜨린 뒤 일어서며 주머니 뒤적이다가 손끝에 딸려 나온 종이쪽지 하나. 그래 이 잡것, 바로 네 놈이렷다”가 그렇다. 요컨대 “허구한 날 공치는 판에 가게 세貰”도 빠지지 않는데, 이 영세상인들의 처지를 악용하며 고리대금업을 하겠다는 사채업자들의 유혹도 있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신용사회가 아닌 불신사회이고, 따라서 타인의 성공은 나의 불행이 되고, 나의 성공은 타인의 불행이 된다. 약육강식의 사회, 즉,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다같이 아귀들이고, 모두가 다같이 적대적인 약탈과 살생의 관계라고 할 수가 있다. 아귀들 뒤에 아귀들이 숨어 있고, 아귀들이 숨어 있는 곳에 또다른 아귀들이 숨어 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아귀들이 입이 찢어져라 울부짖으며, 그 모든 부모형제들과 이웃과 민족과 국가들을 다 잡아 먹지 못해 환장을 한다. 이 약육강식의 사회, 이 자본주의 사회에 환멸을 느낀 그가 “이 우라질 놈의 세상, 온종일 묵었던 울화를 전단지처럼 북북 찢어 날리”며, “작심한 듯 가운뎃손가락을 비아그라 먹은 성기처럼 불뚝 일으켜 세우더니” “씨벌, 엿이나 먹어라!”고 쌍욕을 해댄다.
정의가 깃들지 않은 돈벌이는 그토록 몹쓸 전염병과도 같지만, 그러나 오늘날은 도덕과 정의가 종말을 고했다고 할 수가 있다. 불의가 ‘꽃 중의 꽃’인 장미처럼 피어나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한 말들을 속삭인다. 돈만이 자비롭고, 돈만이 은총을 내리며, 돈만이 부귀영화를 주재한다.
아귀는 탐욕의 화신이고, 아귀는 맛있는 생선찜이고, 너도 나도 아귀가 되어 아귀다툼을 하며, 더 많은 아귀를 얻지 못해 입이 찢어지고, 또 찢어진다.
“씨벌, 엿이나 먹어라!” 너무나도 그립고 정겨운 [그 겨울의 손가락 욕辱]을 해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