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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환의명시감상

최금녀의 사춘기

작성자애지사랑|작성시간20.12.01|조회수74 목록 댓글 0

사춘기

최금녀

 

공터가 있었다

숙제 대신

돌무더기가 있는 공터를 그렸다

공터에서 움직이는 동물들을 그렸다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돌무더기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그림이 재미있었다

알 수 없는 그림들을 쫓아다녔다

 

돌무더기를 생각했다

 

문간방에서 안방으로 이사를 하고

남학생들의 교복이 우스웠다

소설책을 감추고 읽었다

 

다음

그다음

그다음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알 것같은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은

썼다가 지웠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숙제를 열심히 했다

 

그 다음을 미루고

공터를 미루고

중 3으로 올라갔다.

 

  딸아이가 초경을 시작하면 마을잔치를 하고, 공식적으로 이성과의 교제를 허락하는 원시부족이 있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처럼 남녀 사이의 연애를 자연의 순리에 맡긴 사회에서는 사춘기라는 몹쓸 돌림병이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사춘기란 몸의 생식기능이 완성되고, 이성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 시기를 말한다. 사춘기는 육체적인 성장과 함께 정신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며, 종족의 명령에 따라 이성에 눈 뜬 주체자가 자기 짝을 찾는 시기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문명사회는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인간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그 결과, 무조건적인 반항과 불손한 언동, 그리고 사회적인 탈선과 비행 등으로 얼룩진 ‘사춘기라는 돌림병’을 앓게 했던 것이다. 최금녀 시인의 시는 비몽사몽간의 ‘사춘기적 돌림병의 투병일기’이며, 인간의 도덕과 윤리가 한 어린 여학생의 의식과 무의식을 그 얼마나 억압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사춘기는 공터가 되고, 공터는 텅 비었으니까, 그 무엇인가로 채워져야 한다. 나는 숙제 대신 돌무더기가 있는 공터를 그렸고, 그 돌들을 누군가에게 던지고 싶어했다. 이때의 돌은 나의 짝을 맞추고 싶은 돌이며, 내가 좋아하는 짝들은 돌무더기만큼이나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공터에서 움직이는 동물들을 그렸다는 것은 나의 짝들이 성적 욕망의 화신인 동물들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따라서 나는 학교 숙제를 하지 않았고, “돌무더기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그림들을 쫓아다녔다.” 나는 이미 조숙한 요조숙녀였고, 요즈음 말로는 동영상의 음란물, 그 옛날의 말로는 연애소설이나 춘화를 탐닉하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숙제 대신 돌무더기가 있는 공터와 동물들의 그림과 알 수 없는 그림들을 쫓아다닐 때, “문간방에서 안방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은 다 큰 딸에 대한 어른들의 감시와 단속의 눈초리가 더욱더 심해졌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러나 나는 남학생들의 교복을 우습게 깔보며 이광수의 {무정}이나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토마스 하디의 {테스} 등의 연애 소설 등을 읽게 되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사춘기 소녀들의 성적 욕망을 더럽고 추한 욕망으로 단죄하고 더없이 착하고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낼 것을 강요하지만, 그러나 사춘기를 맞이한 어린 소녀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성적 욕망과 함께, 모범학생의 길에서 매우 어렵고 힘든 내적 갈등의 시기를 겪게 된다. 대부분의 어린 소녀들이 모범학생의 의지로 성적 욕망을 이겨냈을지라도 사춘기적 돌림병의 상흔은 남게 되고, 다른 한편, 그 성적 욕망을 어쩌지 못해 동영상의 음란물이나 춘화에 빠져드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가출과 함께 그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리게 된다.

  최금녀 시인의 [사춘기]의 소녀는 그토록 무섭고 사나운 혼돈의 시절을 겪었지만, 그러나 중학교 2학년의 어린 여학생으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다음/ 그 다음”의 단계, 즉, 이성과의 간절한 사랑이 그리웠고 그래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썼다가 지우며, 그 무섭고 사나운 혼돈의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 다음, 그 다음, 사춘기의 그 무섭고 사나운 혼돈의 시기를 보내고, “나는 숙제를 열심히”했고, 그 다음, 그 다음의 공터를 미루고 중학교 3학년으로 진급을 했다.

  사춘기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뜻하고, 자기 짝을 찾아 사랑의 결실을 맺으라는 종족의 명령을 뜻한다. 최금녀 시인의 [사춘기]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맞닿아 있는데, 왜냐하면 봄이 왔지만, 봄이 오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문화는 자연에 반하는 도덕과 윤리를 제도화하고, 도덕과 윤리는 자기 짝을 찾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억압한다. 최금녀 시인은 사춘기의 체험을 육화시키고, 그것을 정신분석학적인 그림으로 색칠을 한다. 공터, 돌무더기, 동물들의 그림, 남학생들의 교복, 춘화, 음란물, 연애소설 등은 사춘기적 돌림병의 증거이자 소재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시적 화자와 그 이미지들에 현실성과 적합성을 부여한다.

  사춘기, 집을 떠나기도 전에 여행은 끝났다.

  너무나도 불순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너무나도 허전하고, 너무나도 텅빈 공터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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