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늑대와 늙은 여우
안정옥
늙은 늑대와 늙은 여우가 만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젊어서 해보지 못한 오래 묵은 화해를
풀기는 풀어야 할 것이다
---- 안정옥 시집 {다시 돌아 나올 때의 참담함}에서
천적이란 먹이사슬의 관계에서 잡아 먹히는 생물에 대한 잡아 먹는 생물을 말한다. 여우의 천적은 늑대가 되고 늑대의 천적은 사자가 된다. 이 천적과 천적의 관계가 무너지면 생태환경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고, 생태환경의 균형이 무너지면 이 세상의 만물의 역사도 종식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찍이 ‘여우의 간지奸智’와 ‘사자의 용맹함’을 역설한 마키아벨리 역시도 ‘인간중심주의의 백치’에 지나지 않았다. 여우는 인간이 파놓은 함정을 곧잘 피하지만 늑대에게는 꼼짝을 못하고, 사자는 늑대를 단번에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인간이 파놓은 함정을 피하지 못한다. 따라서 여우의 간지와 사자의 용맹함을 가져야만 진정한 군주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생태환경의 균형을 이해하지 못한 백치의 주장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한편, 불교에서는 사랑도 하지 말고, 원수도 만들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원수는 만나서 괴롭기 때문이다. 만악의 근원인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극락의 길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고통을 제거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삶의 기쁨(극락)을 제거하는 것과도 똑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원수도 있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적과 동지의 관계를 맺고 그 사랑과 싸움 속에서 종의 건강과 종의 행복을 연출해내야 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인간중심주의의 백치라면 부처는 이 세상의 삶을 부정하고 헐뜯는 염세주의자라고 할 수가 있다.
안정옥 시인은 늙은 늑대와 늙은 여우의 천적 관계를 주목하고, “늙은 늑대와 늙은 여우가 만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젊어서 해보지 못한 오래 묵은 화해를/ 풀기는 풀어야 할 것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는 그 천적 관계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늙은 늑대와 늙은 여우는 결코 오래 묵은 화해(천적 관계)를 풀 수가 없다. 늑대에게는 늑대의 삶이 있는 것이고, 여우에게는 여우의 삶이 있는 것이다. 과거 호주 대륙에서의 천적이 없었던 새들이나 짐승들이 그 종적을 감추었듯이 지나친 온정주의와 평화주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종들의 몰락과 소멸에만 기여할 뿐인 것이다. 늑대와 여우와 사자와 인간 등은 모두가 다같이 자기 자신이 속한 종족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이고, 이것이야 말로 종의 건강과 종의 행복을 위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들이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이 자연의 법칙 앞에서는 그 역할만이 다를 뿐, 모두가 한 형제와 한 가족이라고 할 수가 있다. 호랑이가 늑대를 잡아 먹으면 늑대의 에너지로 살아가게 되고, 늑대가 여우를 잡아먹으면 여우의 에너지로 살아가게 된다. 여우가 토끼를 잡아먹으면 토끼의 에너지로 살아가게 되고, 인간이 닭을 잡아 먹으면 닭의 에너지로 살아가게 된다. 따지고 보면 모든 만물들은 이처럼 공생공존의 관계이지, 너무나도 단순하게 잡아 먹히고 잡아 먹는 천적 관계만은 아닌 것이다.
에너지 보존법칙 앞에서도 천적 관계는 없고, 자연의 법칙 앞에서도 어느 종의 일방적인 승리나 패배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생명체들의 삶은 종을 위한 것이지, 개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서로 싸우고 화해를 하는 것도 종을 위한 것이고, 다른 생명체를 먹고 다른 생명체들에게 잡아 먹히는 것도 종을 위한 것이다. 개체보다는 종이 더 크고, 종보다는 자연이 더 크다. 자연은 만물의 터전이며, 따라서 자연은 어느 특정한 종에는 관심이 없고 모든 종들의 균형에만 관심이 있다.
자연은 수많은 종들의 공생공존에만 관심이 있으며, 어느 인간도, 어느 전지전능한 신도, 이 자연의 법칙을 거역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도 별것이 아니고, 인간의 행복과 번영도 별것이 아니다. 대자연 앞에서는 인간도, 고래도, 사자도, 코끼리도 아주 자그마하고, 그리 대단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자연에는 선악이나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함부로 살생을 하거나 타인들을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 인간 개체수의 폭발적인 증가는 지구촌의 대혼란의 징조이며,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들이 생태환경의 교란자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