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허물며 산다 / 심은섭
겨울 어느 날, 어머니가 주신 집 한 채 들고 나와 그 집을 허물며 나는 산다. 집 한 채 다 허문 할아버지는 산으로 갔고, 그 집을 찾기 위해 할머니는 날마다 산으로 간다. 가슴에 여러 개 관솔 구멍이 뚫어진 집을 허물며 어머니는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홀로 걷는다. 이른 새벽이 되어야 나를 버린 나를 낳는 뱀처럼 강물은 어둠이 있어야 허물을 벗는 산과 다르다. 강물 속으로 산이 들어앉으면 산 속에 강물도 따라 들어앉는다. 그 산과 강물 사이에 집 한 채 허물며 나도 홀로 걷는다 아이들의 집도 귀퉁이가 조금 해지고 닳는다 조금씩 조금씩 내 집이 다 허물어지는 날에 아내도 홀로 집을 허물며 있겠다 그리고 소금꽃 피던 바다와 내가 벗어 놓은 그림자가 널려 있는 집터가 그리울 게다 아직 나에겐 결정되지 않은 사랑채 하나 남아있다
시에 대한 느낌 나누기
-이 시의 집은 아마도 사람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겨울날 어머니가 주신 집 한 채는 시 속의 화자가 겨울에 태어났다는 것 같고요. 늙어 가는 과정을 허물며 산다는 이야기인 듯싶습니다.
-집 한 채다 허문 할아버지는 산에 묻혔거나 뿌려진 모양입니다. 그 집을 찾아서 할머니가 날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이거나 산을 실제로 찾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가슴에 여러 개 관솔 구멍이 뚫어진 집을 허물며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어머니 홀로 걷는다고 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지요. 아버지가 문제를 일으키고 바람을 자주 피우다가 결국 따로 사는 것처럼 연상됩니다.
-“이른 새벽이 되어야 나를 버린 나를 낳는 뱀처럼” 이 말은 새벽에 허물을 벗어내고 새로운 몸을 가지는 문자적 뱀처럼 새벽까지 이 생각 저 생각 뒤척이다 결론을 내고 새롭게 행동하는 것을 표현했거나 늙어서 각자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묘사한 말인 듯싶기도 합니다.
-“강물은 어둠이 있어야 허물을 벗는 산과 다르다” 이 말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어둠을 묘사한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 혼자서 가정을 꾸리자 오히려 어둠이 사라지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강물은 산이 강물 속으로 들어앉으면 강물도 산속으로 들어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이 부분은 아버지가 뒤늦게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가 사는데 자신도 그렇게 같은 길을 걸으며 인생을 허물며 홀로 걷는다는 말인 듯 보입니다.
-아이들도 집 한쪽 귀퉁이가 조금씩 닳고 아내도 허물며 있겠다는 말은 아이도 아내도 늙어간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추억이 어린 집이 그리울 것이라고 문자적 집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랑채는 다시 재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확정적이지 않다는 그런 이야기 같습니다.
-이 시는 기승전결이 잘 이루어진 듯 보이지요. 몸을 집에 비유했으니 발상이 독특하고 할아버지 아버지 아이들까지 확장시켜 나간 것도 괜찮은 것 같고요. 문자적 집터를 이야기함으로 전환도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고 여운이 깃들도록 맺음도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쉽게 이혼하고 재혼하는 그런 단면을 진정성을 얻고자 시인 자신의 이야기처럼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사물을 빌어 이미지로 잘 그려낸 좋은 시입니다. -문 향(박종인)-

심은섭
강릉시 성내동 13번지 출생
2004년 시 전문지 월간「심상」 신인상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