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지혜출판사)에서
부활
서정주
내 너를 찾아왔다. 유나臾娜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鐘路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때마닥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드냐.
유나臾娜, 이것이 몇 만萬 시간時間 만이냐.
그날 꽃상여喪輿 산山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 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江물은 또 몇 천린지, 한번 가선 소식 없던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중에도 열아홉 살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들어앉아
유나! 유나! 유나!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모두 다 부활하여 오신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득하니 지극하면 언제 어느 곳에서고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설령 사랑하는 이가 꽃상여를 타고 아주 멀리멀리 떠나버렸다 할지라도 지극한 사랑은 유계幽界에서도 그 사랑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리라.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으면 밤이면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전전반측 뜬 눈으로 지새우다가 새벽닭이 울 때면 더욱 보고 싶어 가신님을 소리쳐 불러 보는 것이랴.
그 지극, 지순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마침내 부활하여 돌아오는 사랑, 그것도 단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종로 네거리에’ 조잘대며 오는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모두 다 내 사랑으로 다가오고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멋쟁이 시인이신 작문 선생님이 그윽한 목소리로 읊어 주시던, 1941년에 출간된 미당의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맨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 있는 이 시를 지금도 나는 즐겨 낭송한다. 시인으로 추천하여 문단에 내보내시며 ‘한국에서만 좋은 시인이 되지 말고’ 세계적으로 좋은 시인이 되라고, 혜초(慧超, 蕙草)보다 먼저 있으라고, 혜란蕙蘭보다 더 향기롭고 고결하라고, 본명인 혜선惠仙의 소리는 그대로 살리고 뜻만 다른 글자로 혜선蕙先이라는 호를 지어 주신 미당未堂 스승을 생각하며 이 시를 읊으면 어느새 그 분이 내 앞 가득 나타나서 빙그레 미소 지으신다. 그 시선詩仙의 미소를! 내 가까이 있는 모든 분이 다 스승님이고 부처님이고 하나님이시다. 모두 다 부활하여 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