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꾼의 신분
추노의 역사적 사실을 따져보자. 조선 왕조는 자주 면천을 시도했다. 조선 개국과 각종 국가 변란의 논공행상으로 땅과 노비를 지급했지만 이것의 세습으로 인해 국가 재정은 쪼들리게 됐기 때문에 조정으로서는 당연히 재정의 기반이 되는 양인의 증가를 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자주 도망간 노비를 추적하는 일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추노를 인해 벌을 받은 관료들도 있다. 특히 추노의 배경이 되는 인조 때에는 추노에 관련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공노비의 도망은 노비추쇄도감을 통해 잡아드렸는데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1655년 이후 도감이 더 이상 설치된 기록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망간 공노비에 대한 추쇄는 실질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드라마 속 추노는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가진다. 양반 입장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재산이기 때문에 도망친 노비를 되찾기 위해 추쇄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왕실이 노비 추쇄를 금지하는데는 신하들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추노를 빙자해 일반 양인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이 가해지고 이 과정에서 추노꾼과 관리들이 부당한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 속의 추노꾼은 양반,지주세력과 탐관오리들의 결탁이 빚어낸 일종의 갱단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 추노꾼도 있었겠지만 저자의 왈짜패가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드라마 속 추노꾼 대길의 묘사는 사실 대길이 아니라 당시 추노꾼에 대한 일반적 견해라고 봐야 옳다. 양반과 관리와 결탁된 추노꾼의 폭력은 하소연할 곳도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여종을 사랑해서 추노꾼이 된 야차같은 대길이지만 노비 모녀를 구해주고 산적패로 보낸 것을 보면 대길은 원조 추노꾼인 천지호와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첫방에서는 단지 영역싸움으로 비춰졌지만 향후 송태하, 김혜원에 대한 복잡한 추쇄전이 시작되면서 대길패와 천지호패의 갈등은 단순한 영역 다툼이 아닌 추노꾼의 추악한 속성에 대한 갈등 그리고 저항이 그려지지 않을까 예상해볼 수 있다.
한편 추노에서 노비 모녀를 구해준 뒤 대길이 "쓸데없이 국경으로 가지 말고 월악산 짝귀를 찾아가라"고 하는데, 사실 이 방법은 국경을 넘는 것과 더불어 조선시대 도망친 노비가 가장 안전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밖에 도망간 노비가 남자 홀몸이라면 승려가 되기도 하지만 군대에 들어가 국가의 보호를 받기도 하였다. 추노의 큰놈이처럼 상업으로 재산을 불려 신분상승을 이룬 경우도 많다.
이렇듯 수천 년 인간이면서 인간 이하의 존재로 핍박받던 노비는 1810년(순조1)에 공노비에 대한 노비문서를 소각하고 6만 여 명을 방면함으로 해방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후 1886년 고종 때 이르러 노비 세습을 폐지하는 과정을 거쳐 1894년 동학혁명의 영향으로 법적으로 폐지되었다.
(Post by 탁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