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액수가 아닌 공정함의 문제(1,468자)
성과 중심의 분배 체계를 논의할 시점이다. 초과 이익도 기업과 노동자의 노력이라는 내부 요인, 주주들의 투자와 시장 호황이라는 외부 요인을 각각 구분해야 한다. 201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벵트 홀름스트룀은 ‘계약이론’에서 정보 비대칭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성과와 보상을 연결할 투명한 구조를 강조했다. 그렇지 않은 일률적인 배분은 각 주체의 보상 유인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 현 성과급 논쟁을 둘러싸고 DS와 DX 노동자들의 갈등, 하청 노동자들의 반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대체 불가 대한민국’이 실현될 수 있도록 초과 이익을 배분할 세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이는 성과에 대한 기여도를 구분하고, 공동의 위험 부담을 함께 반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각 주체의 기여도를 측정하기에 앞서 삼성전자 성과급 수혜는 일부 노동자들에 국한됐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AI와 반도체 호황이라는 외부 변수. 2023년까지 적자였던 반도체 업계에 투자를 멈추지 않은 기업들. 시장 호황에 화답해 주가를 견인한 주주들. 노동계는 성과급을 독식할 만큼 이들보다 많은 기여를 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다양한 주체들의 기여도를 평가할 세부적인 모델이 필요하다. 홀름스트룀은 지금의 일률적인 ‘영업이익 N% 성과급’은 불확실한 반도체 사이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성과급을 놓고 벌어진 기업 내 노동자들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서라도 각 주체의 기여도 구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홀름스트룀은 경제 주체가 완전한 위험에서 해방된다면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해결책으로 주체들 간의 책임 분담을 제시했다. 책임 분담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막대한 성과급을 받고, 불황일 때는 낮은 임금을 받거나 해고되는 자본시장의 원칙이 바로 그런 것이다. 삼성 노조는 고용 안정과 고액 성과급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한국 노동계가 일률적인 65세 정년 연장까지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30년차 직원 평균연봉이 1년차 신입보다 3.4배 높다는 한국은행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 기업의 반도체 초과 이익은 고액의 임금과 성과급 앞에서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성장을 위한 대전환’이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가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경제 주체 간의 협치가 필요하다. 기업의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고 노동계의 무리한 요구를 거둬들이는 것도 협치다. 고용유연화가 대표적이다. 일본처럼 정년연장과 정년폐지, 재고용 등 기업과 직종 특성에 맞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 물론 연공서열 해소와 임금체계 개편은 필수다. 90년대부터 연공서열 문화를 혁파했던 일본은 3가지 선택지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다음 총선까지는 2년이나 남았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유혹에서 벗어나 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골든타임의 출발로 ‘공정함’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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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지현 작성시간 26.06.16 글 잘 일었습니다! 동윤님!
일단 동윤님의 글을 읽으며 재밌고 눈에 띄는 글쓰기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이론을 통해 논지를 전개한 점이 흥미로웠고, 중간중간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며 시의성을 드러낸 점도 좋았습니다.
다만 전과 비슷하게 논의가 다소 ‘노동계 비판’으로 흘러가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특히 65세 정년 연장과 고용유연화 문제는 논제와의 연결성이 조금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1문단에서 언급한 '초과이익도 기업과 노동자의 노력이라는 내부 요인, 주주들의 투자와 시장 호황이라는 외부 요인을 각각 구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더욱 확장해 봤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초과이윤을 각 주체의 기여도와 위험 부담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했다면 논제에 대한 답변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작성자김수미 작성시간 26.06.16 동윤님 글 잘 읽었습니다 !
3문단 내용이 '초과 이윤 분배'에 대한 내용보다 삼성 노조에 대한 비판과 노동계의 정년 연장에 방점이 찍힌 내용이 중점으로 전달되는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
만약 동윤님께서 1문단에서 말씀해주신 '공동의 위험부담을 함께 반영하지 않는 모습'을 이 두 문제로 나타내신 거라면 3문단의 시작부분에서 '공동의 위험 부담을 지지 않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명시해주시고 홀름스트룀의 말을 문단의 뒷 부분으로 배치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3문단 첫 문장에서 홀름스트룀의 말이 문두로 나오면서 '완전한 위험', '도덕적 해이'와 같은 단어에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는 개인적 생각이 들었습니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