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법정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탄핵을 계기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성급하다. 계엄 해제와 탄핵 인용은 헌정질서의 붕괴를 막았다.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권력을 통제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제도는 작동했다. 위기를 낳은 정치의 방식은 그대로 남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탄핵심판이 세 차례나 이어졌다는 사실은 한국 정치가 갈등을 협상으로 풀지 못하고 헌정질서의 파국까지 밀어붙여 왔음을 보여준다. 계엄 시도와 반복된 탄핵심판은 권력의 사유화와 적대 정치가 누적된 끝에 나타난 결과다. 한국 민주주의는 붕괴를 피했을 뿐, 위기의 원인까지 극복하지는 못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주의는 권력을 개인이나 정파의 소유가 아닌 공동체로부터 위임받은 공적 권한으로 본다. 공화정에서 정치적 상대는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공동체를 운영할 정당한 경쟁자다. 한국 정치에서는 이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야 모두 권력을 공동체의 신탁보다 진영의 자산으로 다루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상대의 집권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면 타협은 배신이 되고 숙의는 시간 끌기로 전락한다. 계엄은 공적 권력을 사유화한 극단적인 사례였고, 탄핵은 이를 멈춘 정당한 헌법적 통제였다. 탄핵이 권력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고 해서 상대를 정치의 정당한 주체로 인정하는 공화적 규범까지 회복된 것은 아니다.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가 끝난 뒤 경제위기와 좌우 진영의 대립 속에서 민주화를 시작했다. 1977년 수아레스 정부와 주요 정당은 몬클로아 협약을 맺고 경제 안정과 사회·정치 개혁의 책임을 나눴다. 어느 한쪽도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 못했지만, 상대를 새로운 민주체제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함께 지킬 규칙을 만들었다. 이 합의는 폭넓은 정치세력이 참여한 1978년 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1981년 군부가 의회를 점거한 쿠데타 시도에도 정치세력은 합의한 헌정질서를 지켰다. 스페인이 민주주의를 공고화한 힘은 쿠데타를 한 차례 막아낸 데만 있지 않았다. 경쟁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는 대신 민주주의의 최소 규칙을 함께 세웠다는 데 있었다.
한국에도 정권의 유불리를 넘어서는 초당적 헌정협약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비상권의 정파적 사용을 배제하고, 선거 결과와 헌법기관의 판단에 승복하며, 상대 진영의 합법적인 집권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최소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공화주의는 정치인의 선의에 기대는 구호가 아니다. 상대도 언젠가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느 진영이 집권해도 지켜야 할 규칙을 함께 만드는 태도다. 탄핵은 민주주의를 구한 최종 방어선이었다. 항구적 민주주의는 법정의 승패에 환호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권력을 공공의 것으로 여기고, 정치적 상대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함께 만든 규칙에 승복할 때 비로소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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