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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초고] 민주주의

작성자강형배|작성시간26.06.19|조회수37 목록 댓글 0

<민주주의는 법정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는 늘 살얼음판 위에 있었다. 비상계엄 시도와 탄핵 인용을 민주주의의 위기와 극복이라는 서사로 묶는 것은 성급하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한 것은 국민주권과 권력분립, 법치주의가 작동한 결과다. 이는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갈등을 법이 가까스로 봉합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계엄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용인돼 온 초법적 권력 행사와 상대를 국정의 동반자가 아닌 제거 대상으로 보는 정치는 그대로 남았다. 터질 것이 터졌고, 헌법이 이를 막았을 뿐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세 차례 반복된 사이 한국 정치는 법정으로 옮겨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재판은 대선 국면까지 정치적 생존을 가르는 쟁점이 됐다. 최근 5선에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의 징역 1년 6개월이 구형됐다. 당선된 지 불과 2주 만에 시장직의 향방이 다시 법원의 판단에 놓인 것이다. 위법행위에는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정책과 노선으로 경쟁해야 할 정치가 수사와 기소, 판결의 시간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법은 권력을 제한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상대를 겨누는 창이 됐다. 정치가 타협과 책임을 포기할수록 법은 정치적 갈등의 최종 심판대가 됐다.

 

2016년 튀르키예에서는 에르도안 정부를 겨냥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쿠데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압됐지만 민주주의는 회복되지 않았다. 에르도안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명분으로 공무원과 군인, 법관을 대규모로 숙청했고 언론과 야당을 압박했다. 이듬해에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고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력을 약화했다. 쿠데타라는 반민주적 폭력을 막은 세력이 위기의 승리를 명분으로 권력을 다시 집중시킨 것이다. 한국이 튀르키예와 같은 상황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계엄 저지와 대통령 파면만으로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할 때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튀르키예가 보여주는 해법은 분명하다. 위기가 끝난 뒤 권력을 승리한 진영에 몰아주는 대신 다시 제도에 분산해야 한다. 특히 헌법재판소와 법원 등 사법기관의 인사를 정파의 전리품으로 만들지 않고, 어느 한 세력도 독점할 수 없는 초당적 합의 구조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명백한 위법행위는 독립된 법정에서 판단하되 정책과 노선의 충돌은 다시 의회와 선거에서 해결할 수 있다. 탄핵은 민주주의의 종착점이 아니다. 위기를 권력 집중과 정적 제거의 명분으로 사용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항구적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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