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원의 문집에 나타난 19세기 차문화 연구
정은희(차문화학2-2)
차문화의 중흥시기라고 불리는 18·19세기에는 선비와 승려를 중심으로 음다풍속이 성하였다. 19세기 상류계층의 대표적 인물인 이유원의 사실적이면서도, 자신의 성정을 잘 드러낸 문집 임하필기와 가오고략 을 통해 그 시대의 차문화를 고찰하였다.
19세기의 문인이자 대표적인 선비인 이유원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황차, 보이차, 용정차, 보림차, 귤화차 등 다양한 차를 음용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황차는 연경의 황차보다는 못하지만 심양과 사천의 차를 뒷전이 될 만큼 청량한 맛이 있는 밀양 황차가 좋다고 지적하였다.
둘째, 보림사 죽로차는 다산이 사찰 스님들에게 가르쳐 준 구증구포의 제다법으로 만든 떡차이다. 죽로차는 다산이 체득하여 보림사 스님들에게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방법(九蒸九曝)을 전수해 주었다. 특히 穀雨전에 채다하여 제다한 차는 향기로워 귀하게 여겼는데 이를 雨前茶라 하였다. 이는 당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상류층이 마실 수 있는 고급차인 보이차를 다산은 우리 식의 보이차로 제다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셋째, 당시 귀한 차라 여겼던 보이차를 의식해, 보림사의 죽로차가 보이차보다 훨씬 나음을 강조하기 위해 寶林寺의‘寶’를 보이차의 ‘普’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양주의 가곡다옥은 세상의 번민을 잊을 수 있는 공간, 재생산을 위한 휴식의 공간이었고, 옛 선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사색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창조의 공간이었다. 다옥의 배치는, 退士潭이라는 연못을 파고, 차솥과 차사발을 소나무와 대나무 그늘에 놓고 차를 다려 마셨다. 모래먼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나뭇가지로 시렁을 만들고 나무판을 덮어 차 다릴 물이 깨끗이 보존되도록 하였다. 그 가운데 화로를 두고 숯탄을 넣어 찻물을 끓였으며, 옆에는 두레박을 만들어 걸어놓았다.
다섯째, 통풍이 잘되는 대바구니나 등나무 상자에 차를 보관하였다. 차를 잘 손질하여 다려 마시니 향기로운 차, 처음 음용할 때엔 몸의 형태의 껍데기가 바뀌는 듯, 두 번째 음용할 때엔 피부가 부드러워졌을 정도로 좋아 세속의 먼지 다 씻었으니 소리소리 솔바람 운치 상쾌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섯째, 왕실의 사당에서 임금이 드리는 茶禮와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다례의 제물로 이용되었다. 임금님을 가까운 곳에서 모시는 동안 진전에 나아가 다례를 행하며, 신하로서 지난날의 회상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갈구하는 마음을 담았으며, 차로서 복을 기원한다는 것은 어려움을 풀어내는 중요한 수단이요, 마음의 위안처가 되기도 하였다. 신에게 현실의 복을 빌 때 정성스레 우린 차는 중요한 제물로 쓰였다.
일곱째, 당시 일본의 차종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차품종으로 綾森, 鷹爪, 柳露, 梅露, 菊露, 初摘白, 明月, 淸風, 薄紅葉, 老樂, 友白髮, 南山壽 등의 다양한 차를 소개하였다
이상 19세기 역사의 흔적을 뚜렷이 남겼던 이유원의 음다생활을 통해 당시의 문화를 살펴보며, 그 시대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깊이 투영된 차의 모습을 엿보며, 우리 조상들의 전통을 이어가고픈 현대인들에게 우리의 차문화를 재음미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고 사료된다. 특히 제다법과 다옥, 그리고 차의 종류 등은 이 시기의 차문화의 한 국면을 이해하고, 전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세기 차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문화사의 맥을 이어주는 고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절실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