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난해 미국을 한 달 동안 여행을 했었다. 그 기간 동안 사흘을 뉴욕에서 지냈으며, 그 중 한 나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찾았었다. 미술관은 규모가 엄청났으며, 박물관과 겸하고 있어서 작품들 역시 미로 같은 방에 수도 없었다.
나는 그걸 한 나절 코스로 잡았으니 지금은 무얼 보았는지 조차 가물거릴 지경이다. 다행히 그때 찍어놓은 사진과 달랑 하나 사온 기념품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다녀왔다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러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은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이 쓴 것인데, 그는 10년 동안 그곳에서 근무를 하면서 다양한 미술품들을 그의 시각으로 감상하고, 또 그곳을 찾는 수많은 낯선 이들을 관찰하면서 나름의 느낌을 책에 가득 담아냈다.
그러니 어쩌면 내 잔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읽기로 한 것이다. 사실 미술관 경비원이라면 우리가 흔히 보듯 전시관 입구 쪽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과 미술품을 감상하는 사람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 전부인 듯 느껴진다.
관람객이 일부러 미술품을 훼손하거나 무례하게 관람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런 경비원이 미술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람객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다는 사실이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러 미술관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번듯한 잡지사 일을 집어 치우고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재취업을 한 것이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온 종일 온갖 미술품을 실컷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10년 동안 메트(메트로폴리탄을 줄여서 메트라고 부른다)에서 근무를 하고 지금은 맨해튼의 도보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는 몇 년 후면 맨해튼 도보 가이드에 관한 책도 저술하지 않을까 싶다.
나. 메트의 경비원들
그의 이야기는 메트로폴리탄에 처음 출근하던 날로부터 시작된다. 책에는 메트로폴리탄 약도가 그려져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그곳을 방문했던 코스를 더듬어 볼 수 있었다. 2층 한쪽의 한국관이 반갑게 보인다.
1층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그레이트 홀인데 그곳에서 왼쪽으로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면 이집트관이다. 메트의 입장료는 입장료와 기부금 두 가지가 있다. 뉴욕 시민들은 정액 입장료가 아니가 기부금으로 내고 싶은 만큼 낸다고 한다.
경비원이 하는 일이란 관람객이 편안하게 관람을 하고 작품을 훼손하지 않도록 안내와 경비를 담당하는 일이 거의 전부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지만 그들과 특별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무엇인가 물어보기 전에는 말이다.
경비원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경비원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더러 망명자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전직 또한 택시운전사에서부터 순찰을 돌던 경찰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늘 전시실의 한쪽에 조용히 서 있다. 내가 전시실을 이곳저곳 둘러보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관람객이 작품을 훼손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또한 작품에 손을 대는 것을 제지하기도 하고, 관람객이 특정 작품을 찾을 때 그 장소를 안내해 주기도 한다.
사실 단순한 업무를 위해 하루 종일 서서 근무한다는 것은 고역일 수 있다. 근무 시간 동안은 앉아 있을 수도 없이 하루 종일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관람객 앞에서 사지를 비비꼬거나 하품을 해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지루함을 달리개도 할 겸 벽에 걸린 수도 없는 작품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알아낸 것처럼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기도 하고, 자기만의 시선으로 보기도 하면서 작품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 옛 거장들의 회화관
책은 주로 경비 업무와 관련한 일상들을 소개해 놓았는데 가끔씩 특별한 전시실의 경우 내부 모습 스케치와 함께 특정한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꼼꼼하게 담아놓기도 했다. 나에게는 그의 감상평을 내가 본 작품에 대입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옛 거장들의 회화관은 2층 가운데쯤에 있다. 미술관이 워낙 크기 때문에 관람통로가 구불거려 자칫 안에서도 길을 잃을 판이다. 그곳에는 내게도 익숙한 그림들이 있는 곳이었다. 너무 많은 그림을 한꺼번에 보니 몇 점을 집중적으로 자세히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저자는 하루 종일 작품 앞에서 서성거리며 순간적으로 흘려보는 관람객의 시선으로는 도무지 포착하지 못하는 깊이와 함께 섬세한 표현을 하고 있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만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작품 속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흥미롭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화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을 진즉에 만났더라면 뉴욕을 방문할 때 가방에 챙겨갔을 것이고 관람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해설 중 특히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비너스와 아도니스’에 대한 설명에 눈길이 가 닿는다. 속세로 돌아가려는 아도니스와 그런 그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는 비너스가 절묘하게 포착되어 있는 그림이다. 슬픈 사랑이야기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그리고 다른 쪽에는 모네가 그린 <건초 더미>가 있다. 이 작품은 사계절에 걸쳐 하루 중 각기 다른 시간대를 그린 연작으로, 얼핏 보면 그저 말 그대로 덩그마니 건초더미 한 무더기가 그림 한 가운데 있을 뿐이다.
그림은 건초 더미를 그린 것이 아니라 빛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빛은 색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림에서 특별함을 건져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모네가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이해한다고 했다.
“모네의 세계는 흔히 아는 햇빛 대신 색채만이 존재한다. 이 작은 우주의 훌륭한 조물주답게 모네는 햇빛을 나타내는 색깔들을 펼쳐두었다. 펼치고, 흩뿌리고, 엄청나게 숙달된 실력으로 끝없이 반짝이는 모습을 캔버스에 고정해 두었다.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그림은 점차 풍성해질 뿐 결코 끝나지 않는다.”(113쪽)
그러다 문득 집주변 건물 신축 공사장 울타리 벽에 그려진 모네의 <수련>을 떠올린다. 수련 그림은 음울한 도시를 환하게 해준다. 꽃은 늘 물 위에서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사장은 햇살에 가려 숨을 죽이고 있다.
라. 이집트 관
저자가 첫 근무지 배정을 받은 곳은 이집트 관이다. 근무지는 매일매일 장소를 바뀌며 근무를 시작할 때 배정을 받는다. 이집트 관은 1층에서 처음으로 들어서게 되는 전시관으로 지금 기억에도 거대한 석상들과 무덤, 그리고 미라가 생각이 난다.
“무엇보다도 이집트는 우리의 상상력에 마중물을 붓는다. 왕가의 계곡, 피라미드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 모든 것들이 지어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재했던 것들이다. 청소년들, 트위드 재킷을 걸친 교수들부터 명상가들, 만화가들까지 혼재해 있다.”(81쪽)
이날 저자는 기원전 2350년에 석회암으로 소박하게 지은 마스터바의 페르네브의 무덤 앞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나도 기억이 난다. 나도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었다. 벽면에는 홀로그램으로 이집트 문화를 소개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스핑크스도 재현해 놓았다.
특히 이집트 관을 관람하는 관람객들 중 일부는 그곳에 전시된 것이 진짜인지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규모에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나도 그랬었다. 수도 없는 유물들이었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은 특별한 유물을 제외하고는 발길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저자의 이집트인들에 대한 묘사가 눈길을 끈다. “이집트인들은 시간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네헤(Neheh), 즉 ‘수백만 년간’이라고 불렀고 그것의 본질은 화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과 같은 순환이었다.”
해가 뜨고, 지고, 또 뜬다는 사실이 그렇고, 나일강은 범람하고, 물러났다가 또다시 범람하는 것도 그렇다. 별들은 한자리에 선 관찰자의 주의를 절대적인 규칙에 따라 회전하며 거대한 시간의 바퀴 또한 망자들을 처분하고, 새로 태어난 이들을 성숙시키고 결국 죽음으로 안내한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실제로 변하는 것은 없다. 이집트인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물의 본질로 여겨졌고, 이런 사고방식은 사후 세계로까지 확장해 메트에 전시된 미라를 포함해 수많은 조각상을 그런 사고 속에서 다듬어진 것들이다.
고대 이집트관은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아이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미라다. 나는 지금도 그곳에서 본 이집트의 왕들이 조각된 웅장한 파라오 모습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들은 언젠가는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사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중국관과 이슬람관도 있었다. 저자는 많은 시간 메트에서 작품 앞에 마주 서 있다보니 나름대로 작품을 보는 관점이 생긴 모양이다. 그의 평가는 어느 곳에서나 신선했다. 그러나 메트의 규모가 너무 커 나는 이슬람관은 가보지 못했다. 그 동안 터키의 콘야에서 본 수피파의 이슬람 사원과 중정, 모로코의 이슬람 사원과 패스 골목,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프루의 이슬람 사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조각 정원 중앙에는 석고로 만들러진 원통형 천장이 있다. 호메로스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하늘이다. 그들은 하늘이 아주 구체적이고 단단한 놋쇠 돔이라 여겼다. 바다 너머로는 역시 원반 모양인 태양의 뒷면밖에 볼 수 없는 저승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저승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아무것도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실증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던 초기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의 철학 안에 무한대나 공(空서)의 개념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는데 두 자기 모두 자연에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세계이 모든 것은, 심지어 그들의 신들까지도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은 그들의 시각예술에도 충만하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의 박물관에서 보는 고대 그리스의 신들의 모습은 조각한 작품들이 그 증거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는 동서고금의 시공간을 매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고대 그리스 시대를 돌아보고, 또 어떤 때는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을 거닐기도 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그곳의 역사를 더듬어 보기도 한다.
마. 관람객들
저자는 간간이 경비원으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관람객들이 의도치 않게 작품을 훼손하거나 건드리기도 할 때는 그야말로 비상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작품 가까이로 접근하면 신경이 곤두선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고성의 해자를 넘어서려는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했다. 해자를 넘는 사람은 오직 침략자들뿐이다. 그런가 하면 더러 작품 도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미술작품은 보석처럼 자물쇠를 채우고 깊숙이 넣어둘 수 없으므로 늘 도난의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메트에서도 실제로 몇 건의 도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경비원들은 매일 수도 없는 사람을 감시해야 한다. 결국 저자가 관람객들에 대해 별도로 언급한 것은 관람 질서를 잘 지켜달라는 것과 도난 방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근무 중에 자기 앞에 있는 작품에 대해 나름대로 감상평을 하는데 그 감상평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늘 최적의 단어를 찾았던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메모 덕분에 탄생한 것임이 분명하다. 모처럼 즐거운 독서를 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뉴욕 여행이 다시금 아련하게 떠올랐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람은 자유의 여신상과 월스트리트를 돌아보고 난 후였다. 마침 메트로폴리탄에서 막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한국인 부부를 보았다. 그들은 행복에 겨워했고 계단에 제 멋대로 앉아 있던 관람객들이 그들을 축하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