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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보 방

[스크랩] 오카리나 잡는법 & 운지법

작성자쌩국이|작성시간11.10.12|조회수927 목록 댓글 0

 

"흙피리오카리나 음악선교회"

첨부파일 (한태주오카리나연주)노을꽃.wma

 

   

  

지리산 흙피리소년 한태주 창작연주집 1집 하늘연못

 

개별듣기

 

1.하늘 연못(Skylake)
2.바람(Wind)


3.고구려 벽화의 노래(Song Of Koguryer Wall Painting)
4.노을 꽃(Flower Of Sunset)


5.물놀이(Play In The Water)
6.연꽃 위에 내리는 비(Lotus Rain)


7.지리산(Jirisan)
8.산사의 새벽(Dawn At Mountain Temple)


9.들(Field)

10.생명의 강(River Of Life)

 

 

한태주 흙피리 창작연주집2집 새소리(Bird`S Song)

 

개별듣기 

 

 1.새소리3 

2.봄    3.지평선


4.새소리2   5.자전거   6.하늘을 날다
7.새소리1   8.새로운 도전


9.비바람  10.새소리3(Guitar Version)
11.소나무 숲에서

 

 

오카리나 잡는법 & 운지법

http://cafe.daum.net/SDA31004/Jzee/121

1. 오카리나 잡는법


☞ 오카리나를 잡은 상대방의 모습. (낮은 '도' 운지 상태)


☞ 오카리나를 잡은 자신의 손 모양. ('솔' 운지 상태)


2. 오카리나 운지법


오카리나의 운지이론은 5분안에 동요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간단합니다.
상단의 그림으로 운지 이론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음한음 운지표를 보고 운지를 익히는 것보다, 이론으로 운지를 익히는 방법이 더 효과적입니다.

1) 기본음
오카리나 운지의 기본음은 오카리나 운지 구멍을 모두 막은 상태에서 상단 그림의 숫자 순서대로 구멍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1'번과 '-2'번 구멍을 제외하고 10개 구멍을 열손가락으로 다 막으면 해당 악기의 기본음이 납니다.
즉, C키일 경우엔 도(C)음이 나겠죠.
그리고 1~10번까지 손가락을 순서대로 하나씩 열면 각각 기본음 '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파'가 되는 겁니다.
'-1'번과 '-2'번 구멍은 더 저음을 내줄 때 막아주는 구멍입니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밀어서 '-1'번 구멍까지 막아주면 낮은 '시'음이 나고, 오른손 검지손가락까지 밀어서 '-2'번 구멍까지, 12개의 모든 구멍을 다 막아주면 낮은 '라'음이 납니다.
때문에 오카리나는 낮은 '라'부터 높은 '파'까지 13개의 기본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익히시면서 유의할 점은,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막는 '10'번 구멍은 가장 나중에 뗀다는 사실입니다.
이 '10'번 구멍만 제외하고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구멍을 순서대로 뗀다는 기본적인 이론을 명심하세요.
몇 번만 따라해보시면 기본음 운지는 다 익히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반음
오카리나의 반음 운지 역시 이론적 바탕으로 간단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에서 '-1'번과 '2'번은 반음 구멍으로서 빨간색으로 표시하였습니다.

1~4번까지의 구멍을 뗀 음. 즉, '솔'음 이상부터는 '2'번 구멍만 막아주면 반음이 낮아집니다.
즉, 예를들어
'솔'운지에서 2번 구멍을 막으면 솔b(파#),
'라'운지에서 2번 구멍을 막으면 '라b',
'시'운지에서 2번 구멍을 막으면 '시b'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음들도 마찬가지로 레b, 미b이 됩니다.
간단하죠?

저음에서의 반음은 '-1'번 구멍을 더 막아주면 반음이 낮아집니다.
즉, 예를들어
낮은 '미'운지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밀어서 2번 구멍까지 함께 막으면 '미b',
낮은 '레'운지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밀어서 2번 구멍까지 함께 막으면 '레b'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낮은 '시b'이 남았습니다.
낮은 시b은 모든 구멍을 다 막은 상태에서 2번 구멍만 열면 됩니다.

예외의 경우
1. Sop-C 키의 경우 높은 도#(레b)은 운지법이 약간 다릅니다. '레'운지에서 '2'번 구멍이 아닌, '3'번 구멍을 막아합니다.
2. 높은 '미b'의 경우 운지하기가 좀 불편합니다.(10 + 2 번 구멍) 이 때는 '9'번 구멍만 막아도 같은 음이 나기때문에 연주 할때는 '9'번 구멍만 막는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3. 구멍의 위치
일반적인 경우
'나이트' 제품의 경우
Sop-C 키의 경우
'아케다' 제품의 경우
'-2'번 구멍의 위치가 메이커마다, 혹은 키마다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구멍 하나의 위치만 옮겨간 것일뿐, 운지법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 나름대로 저음의 운지를 편하게 하기위해 구멍의 위치를 달리한 것이기 때문에, 구멍의 위치와 제품의 성능과는 무관합니다.
사용하는 사람마다 편한 운지가 따로 있기도 하고, 사용하면서 편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카리나의 발자취

http://cafe.daum.net/SDA31004/Jzee/91

오카리나는 흙으로 만든 악기이다. 원래 옛날에는 흙피리는 그 맑고 신비로운 영감 때문에 제사에 줄곧 사용되어지고는 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 이제 오카리나는 점차 실용성, 보기에 예쁜 대중성을 염두해두고 발전해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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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오카리나는 기우세프 도나티Giuseppe Donati가 기존의 악기를 혁신적으로 개량한 후부터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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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티가 부드리오(Budrio) 지방에 작업실을 차리고 처음 만든 초창기의 오카리나는 오늘날의 그것과 모양이 매우 다르다. 오카리나라는 말의 뜻이 "거위 새끼"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기능적인면 뿐만이 아니라 오카리나의 디자인을 만들 때 거위의 생김새를 크게 염두한 것 같다.

그는 이 악기를 1853 년에 이탈리아의 부드리오Budrio 라고 하는 지방에서 처음 만들었다. 여기서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전부터 내려오던 피리를 개량해서 음역을 넓히고 보다 많은 연주가 가능하도록 조율을 한 것을 말한다. 그가 처음 오카리나를 제작한 부드리오 지방은 오늘날에도 유명해서 오카리나가 만들어진 초창기에는 부드리오 오카리나Budrio Ocarina가 오카리나의 고유 명사처럼 불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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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티의 오카리나

도나티는 부드리오에 작업실을 차렸지만 이후에 이탈리아의 Bologna 지방과 Milan지방에서도 오카리나를 만들었다고 한다.

1870년에 부드리오 지방에서 오카리나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은 두 청년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서 오카리나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각각, Ercole 과 Alberto Mezzetti였는데, 후에 두 사람은 독립하여 Alberto는 런던으로 건너가 작업실을 차린다. 이 시기에 오카리나는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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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Mezzetti의 오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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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 년에 기우세프 도나티(Giuseppe Donati)는 Bologna 지방으로 작업소를 옮기는데 부드리오(Budrio) 부근 지역인 "Fornace Silvani" 지역에서는 Cesare Vicinelli 라는 사람이 오카리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토기장이(kilnman)의 아들인데, 기타나 뿔피리 같은 여러 가지 악기에 아주 재주가 많았다고 한다. Vicinelli 는 이후에 지대한 관심으로 오카리나를 연구해서, 소리/ 톤 / 모양 3박자를 제대로 갖춘 오카리나를 만들어내었다. 그 제작에는 나무로 만든 큰 틀이 사용되었다. (오카리나는 초기에 나무로 조각하거나 틀로 주형해서 만들었으며 오늘날에는 흙이 아닌 나무로 만든 오카리나를 코카리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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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inelli의 주형틀

Vicinelli 는 1920년 죽으면서 그의 제자 Guido Chiesa에게 그의 집과 장비와, 도구, 기술을 넘겨주게 되는데 그 장비는 앞서 말한 주형 틀, 즉 Press이다. 1884년에 태어난 기도 치사Chiesa는 1920년에 스승으로부터 작업소를 물려받을 당시에 36세의 나이었는데, 정원사였던 그의 부모님과 함께 일하면서 스승인 Vicinelli 아래서 일했다.하지만 스승인 Vicinelli는 제자에게 오카리나의 제작 기법을 쉽사리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는 욕심쟁이어서 매우 고생하며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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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성장하여 마침내 부드리오 지방에서 매우 존경받는 장인이 되었다. 치사는 남겨진 Vicinelli의 장비와 악기를 사랑하는 그의 정열로 "부드리오 작업소(Budrio Workshop)"의 명성을 유지했다. 그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20개에서 30개의 오카리나를 제작해서 해외에까지 팔았다고 하는데, 그가 개량한 오카리나는 사실 가장 오늘날의 오카리나 악기와 흡사하다. 음역이 10음에서 12음으로 넓어졌고, 운지법도 연주하기 편하도록 개량해서 오카리나로 연주할 수 있는 연주의 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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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많은 사람이 오카리나의 전파에 공헌을 했다. 왼쪽에 있는 사람은 Emilio Cesari 라는 사람인데, 기도 치사와 동시대 인물이며 사는 곳도 부드리오(Budrio) 지방이었다. 그도 음악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어서 Vicinelli 의 작업소에서 조수로도 일했지만, 후에 "Le Creti"라고 하는 이름의 작업소를 부드리오(Budrio) 지방에 직접 차렸다. 거기서 1920년부터 1927년까지 오카리나를 만들고 Bologna 지방으로 이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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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리오(Budrio) 출신의 또다른 장인으로는 ' Arrigo Mignani '를 들 수 있다. 그는 앞서 말했던 ' Gruppo Ocarinistico Budriese ' 의 단원으로 가입했었고, 악기 만드는 일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특히 Mignani 는 기도 치사와도 친분이 있어서, 그에게 오카리나 만드는 법을 사기도 했다. 당시 기도 치사는 Mignani 에게 자신의 회사를 인수해서 오카리나를 만들 것을 제안하던 차였는데 제안 금액이 2천만 리라(LIRA)였다. (당시 집 한 채의 값이 3백만 리라) Mignani 에게는 치사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고 대신 Cesari 의 회사를 백만 리라에 인수해서 1964년에 그는 자신의 힘으로 처음 오카리나 연주회를 갖고 24년 동안이나 내내 오카리나 만드는 천직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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