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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인의 간병살인

작성자피티파티|작성시간21.04.12|조회수210 목록 댓글 0

주제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초고령 사회 간병 문제 한국사회는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1. <여는 시>

배교윤

앙상한 팔뚝을 두들기던 간호원

"혈관이 약하군요"

여섯 시간의 투약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항암 주사액을 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방전된 몸을 본다

옷을 입었음에도 맨몸으로 느껴지는

구겨진 생의 체면

힘내라 손잡은 딸에게 변명이 되어버린 몸

아직 끝나지 않은 계절에

나는 푸른 그림자와 서 있다

 

 

 

2. 택스트 읽기

 

<간병은 슬픔을 사육 한다>

발제 : 고 현 종

 

아버지는 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결심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 보다 못했다.

 

경추 탈골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으로 스스로 숨조차 쉬지 못하는 딸 간병을 한지 7년. 가난한 아버지는 아픈 딸의 인공호흡기 전원을 껐다.

 

딸의 생명을 유지할 최소한의 비용인 전기 요금 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던 가장은 그렇게 남은 가족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했다. 후회하며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딸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2016년 이후 간병살인 가해자 수는 총 154명. 희생자 수는 213명에 달한다. 가해자들은 희생적인 부모이거나 효자 효부로 불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끝 모를 간병의 터널에서 무너졌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다른 가족 구성원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정에서 돌봄을 받는 환자는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20가구 중

한 가구는 누군가가 집에서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가족의 대 소변을 받아내고 밥을 떠먹이고 욕창을 막으려 체위를 바꾸는 중노동을 반복한다. 또 일부는 죽어서라도 모든 걸 끝내고 싶다고 한다.

 

임자, 미안해 같이 죽자

 

“임자 잘 됐어…… 이제 나도 죽어야겠어.”

정씨는 54년 해로한 아내를 살해했다. 정씨 아내는 3년 전 부터 퇴행성 척추질환을 앓아 거의 누워 지냈다. 정씨도 천식과 폐안에 큰 공기 주머니가 생기는 폐기종이 심했다. 하루가 다르게 아내를 돌보기 어려웠다.

 

“살날이 얼마 안 남은걸 느꼈어. 내가 먼저 죽으면 아내는 아픈 아들 내외에게 큰 짐이 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아내와 함께 가려고 했어.”

 

치매 증세가 있던 아내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정씨는 하루 종일 아내 간병에 매달렸고, 치료비 마련을 위해 공공근로를 해야 했다. 공공근로는 80이 넘은 정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였다.

 

종일 집에만 누워 있는 게 지겨운지 아내는 집 곳곳을 기어 다니며 대, 소변을 흘렸다.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아들 내외 방문 앞에서 괴성을 질렀다. 하는 수 없어 요양원에 입소시켰다. 석 달 만에 집으로 데려왔다. 피골이 맞닿을 정도로 체중이 급격히 빠졌기 때문이다. 종종 병문안을 가면 “나를 버리지 마라”고 애원하며 붙잡았다.

 

정씨는 불면증을 앓았다. 처방 받은 수면제 몇 알을 삼켜도 통 잠을 잘 수 없었다. 지병인 천식이 악화되면서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끝없는 악몽이 반복된 2년은 마치 20년 같았다.

 

아들 내외가 곤히 잠든 새벽 5시 정씨는 수면제를 한 주먹 움켜쥔 뒤 꿀꺽 꿀꺽 삼키고 아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넥타이를 목에 감고 떨리는 손으로 잡아당겼다.

 

“임자 미안해…… 조금만 참으면 아프지 않을 거야. 이제 아이들한테 짐 되지 않고 저승 가서 맘 편히 지내자.”

 

간병은 전쟁이다. 전쟁은 누군가 죽어야 끝난다. 지난 10년간 간병살인사건의 핵심 키워드를 정리하면 이렇다.

 

*피해자 평균나이 64.2세. *간병기간 6년 5개월. *부부간 살해. *다툼에 따른 우발적 범행. *10명중 6명 독박 간병. *10명중 4명 목 조름.

 

“처음 병이 났을 땐 삶을 마감 하는 게 너무 이르다 싶어 몇 달 지켜보다가 오늘까지 왔다. 너무 아파하고 나도 아파 같이 죽기로 했다.”

 

간병살인 또는 자살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간병 고통으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다. 거기에 자식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이유가 더해진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남겨진 가족사랑은 보는 이를 슬프게 한다. 승용차 안에서 발견된 70대 노부부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숨져 있었다. 장소는 강변에서도 특히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이 부부는 사망 전 자녀들이 보낸 생활비를 되돌려 보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한 80대 노모는 정신 질환을 앓아온 40대 딸과 끈으로 몸을 묶은 채 한강에 투신했는데 꼭 껴안은 팔 모양 그대로 발견됐다.

 

식물인간 아들을 25년간 돌보다 집에 불을 질러 함께 목숨을 끊은 50대 아버지의 사건을 담당한 소방관은 “시신이 한구”라고 보고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꼭 껴안은 채 한 몸처럼 발견됐기 때문이다.

 

10개월간 죽음을 부탁한 아내의 사연도 있다.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매달렸다. 정씨는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도왔다.

유방암에 걸린 아내.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 선천성 뇌 병변에 걸린 딸. 정씨는 아픈 가족 3명을 돌봐야 하는 다중 간병인이었다.

 

저녁 문간에 걸어둔 가녀린 등불처럼 정씨는 황량한 가족을 비추었지만 간병의 터널 속에 무너졌다. 긴 간병에는 죽음이 예감되고 있다.

 

우리가 책 읽고 토론하는 이 시간에 누군가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식이거나 부모이기에 선의로 때론 의무감으로 시작한 전쟁이지만 국가의 지원 따위는 기대 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누군가 죽어야만 끝난다.

 

안타깝게도 가해자들은 주변에서 희생적인 부모이거나, 남편, 아내, 자식으로 불린 이들이었다. 하지만 끝 모를 간병의 터널에서 결국은 무너졌다. 한국사회가 우군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간병은 슬픔을 사육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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