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산리(巨山里)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거산리(巨山里)는 신평면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으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면소재지에서 떨어져 있음에도 상업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국도 32호선, 34호선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현재는 공장과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마을 북쪽에는 초대 저수지가, 남쪽에는 오봉 저수지가 있다.
자연환경
거산리는 독암 고개에서 발원한 거산천이 부락 남쪽으로 동서로 흐르며, 오봉천에 유입된다. 국도 32호선을 따라서 북쪽 지역에 저구릉성 야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분포된 전통적인 농촌 마을이다. 현재는 자연 경지가 대지로 바뀌면서 아파트가 많이 입지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거산리는 본래 면천군 손동면 거산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신북면 오산리(鰲山里)와 손동면 도암리(陶岩里)와 신남면 장대리(場垈里)를 병합해 거산리라 하여 당진군 신평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로 개편되었다.
명칭 유래
거산리는 본래 면천군 손동면 지역으로 거미, 거뫼로 불리다 한자 표기에 의하여 ‘거산리(巨山里)’라 하였다.
자연 마을
거산리는 거미장터, 서두물, 독암, 갓골, 가운데말, 부골, 점말, 윗독암의 8개 자연 마을이 있다.
거미장터[鰲山場垈]는 옛 면천군 신북면 오산리 지역과 신남면 장대리 지역을 묶어서 거미장터라고 한다. 거산장대(巨山場垈)라고 하여 100여 년 전 거산리에서 장이 서던 곳이라고 하나 1914년 이전에 이미 거산리와 장대리는 따로 존재해 있던 리(里)이기에 한자로는 ‘오산장대(鰲山場垈)’가 맞는다. 장대부락, 그미장터, 거뫼장터, 거미장터 등으로도 불린다. 서두물[西井]은 갓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부락 지형이 쥐가 물을 먹는 형국이라 한다. 서우물, 서정이라고도 한다. 서정 초등학교 인근 부락이다. 독암[陶岩]은 원래 면천군 손동면 도암리 지역으로, 갓골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평면에서 송악읍으로 넘어가는 독암 고개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뒷산에 독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유래했다는 설과 옛날에 옹기 독 같은 그릇을 구워 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갓골[冠谷]은 거산리 북쪽, 즉 독암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 벼슬했던 사람들이 살았다 한다. 관곡이라고도 한다. 가운데말[中村]은 부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거산리 한가운데에 있기에 가운데말이라 한다. 부골[富谷]은 갓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마다 부자가 살았다고 전한다. 부곡, 보골이라고도 부른다. 점말[店村]은 옛날에 옹기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 아랫독암을 말하며 독암 아래쪽에 위치하였다. 윗독암은 독암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윗도암이라고도 한다.
현황
2016년 현재 면적은 3.642㎢이며 인구는 3,113세대에 총 8,675명[남자 4,369명, 여자 4,306명]이다. 북쪽에는 금천리가, 서쪽에는 초대리가, 남쪽에는 송악읍 봉교리가, 동쪽에는 상오리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신평 중고등학교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신평면 내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이자 유입 지역이다. 최근에는 코리아 엠테크, 맥스텍, 삼원 강재 공업 등 공장 들도 입지하고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송악읍의 주변 지역이므로 송악의 각종 공장에서 근무하는 회사원들이 많이 거주하여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거산리(巨山里)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거산리(巨山里)는 거산1리와 거산2리로 이루어졌으며 송악면은 물론 아산시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자연환경
거산리는 송악면은 물론 아산시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부터 남쪽을 거쳐 서쪽까지 금북정맥의 산줄기가 둥글게 감싸고 있으며 온양천의 발원지이다. 마을의 중심부에 대략 남북으로 국도 39호선[외암로]와 온양천[또는 유곡천] 상류가 흐르며 주변에 소규모의 농경지가 있다.
시루봉, 매봉과 같은 높은 봉우리가 둘러싼 산촌마을이다.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하였으며 마을 앞으로 유곡천이 흐른다.
형성 및 변천
거산리는 본래 온양군 남상면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거산리, 용두원, 성동, 구만리를 병합하여 거산리라 하고 아산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거산리는 산이 매우 크고 숲이 울창한 산골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이 매우 거하므로 거산리라 하였다.
현황
거산리의 면적은 5.89㎢이며 2019년 1월 기준 인구는 85가구에 총 179명으로 남자가 94명, 여자가 85명이다. 거산1리와 거산2리의 2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거산골[거산리, 거상골], 지루골, 용두원, 성골, 주막거리, 간대나무골[가래나무골] 등 자연마을이 있다. 산지가 많고 경지가 적은 산간 마을로 인구도 비교적 적다. 과거에 철광석에서 쇠를 녹여내던 야철지가 거산1리 동쪽에 ‘쇠똥밭[철광석 등의 찌꺼기밭]’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고, 조선시대 역원이었던 용두원의 흔적도 남아 있다.
자연마을로는 용두원, 지룻골, 구마니, 안뜸마을 등이 있다. 용두원마을은 거산리 큰 길가에 있는 마을로, 지명은 조선 때 이곳에 있었던 용두원에서 유래하였다. 지룻골마을은 용두원 옆에 있는 마을로, 지루(芝樓)라는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마니마을은 용두원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작은 마을이며, 안뜸마을은 용두원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려 온 이름이라 한다.
2000년에 산림청 소관 ‘산촌 종합 개발 사업’의 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후에 정보화마을[2003년]로 선정되었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지역 특산물인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 등을 판매하며 지역을 알려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2005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어 ‘송악 스머프 정보화마을’이라는 브랜드로 버섯 생태 체험, 버섯피자 만들기 등을 진행하고 있다.
거산리(居山里)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에 있는 법정리.
자연환경
거산리의 동쪽 끝에 항가산이 있다. 거산리 서쪽 경계를 따라 동진강[태인천]이 흐르고 가운데 거산평야가 펼쳐져 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태인군 군내면(郡內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구오리(舊五里), 육리(六里), 십일리(十一里), 거산리(居山里)와 동촌면(東村面) 신성리(新成里), 정동리(井洞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거산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거산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거산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조선 시대에 거산역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거산리(居山里)라 하였다. 거산(居山)은 거미[거뫼]라고도 한다. 고려 시대 이후 삼례도의 거산역이 있었으며 1416년(태종 16) 8월 태산현과 인의현을 병합하여 태인현이 만들어질 때 치소가 처음에 거산역 터에 자리하였다. 터가 좁아서 2년 후 태성리로 옮겨 가고 거산리는 다시 거산역으로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거산리의 면적은 2.45㎢이며, 인구는 92가구, 158명[남자 79명, 여자 79명]이다. 거산리는 태인면의 중앙부 오른쪽 아래에 있으며, 동쪽으로 옹동면 매정리, 서쪽으로 태서리, 남쪽으로 매계리, 북쪽으로 태창리와 접하고 있다.
거산리는 원거산마을, 상동구마을, 신기마을 등 3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신기마을은 상동구마을 서쪽에 생긴 새터라는 뜻으로 세가호뜸으로 불리어 오다가 일제 강점기에 마을이 생겼다. 천주교 공소가 설치되어 교인촌을 형성하였다. 원거산마을 안쪽 산자락은 남양 홍씨의 사패지가 있으며 능허각지(凌虛閣址)가 있다. 능허각은 조선 성종 때 홍안세(洪安世)가 세웠다고 한다. 남양 홍씨 재실인 영성재(永誠齋) 뒤편에서 청자편과 와편이 많이 발견된다. 주민들에 의하면 거산역터 땅 속에서 말발굽 등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태인동헌으로 넘어가던 죽석고개에는 2023년 현재 회화나무 노거수가 자리하고 있다. 회화나무 북쪽으로 기와편과 자기편이 흩어져 있는 곳에 김용곤(金湧坤)의 별장인 송석정(松石亭)이 있었다. 김용곤은 1920년경에 읍원정(揖遠亭)을 중건할 때 주변 땅을 희사한 인물이다. 열녀 유인 경주 최씨 정려가 원거산마을 서쪽 입구에 1929년 건립되었다. 비각은 팔작지붕에 겹처마이다.
거산리에는 신태인성당 태인공소, 신태인성당 신기공소가 있다. 교통로로는 국도 제30호가 원거산마을 앞으로 통과하였으나 2010년 7월 21일 정읍시 태인면 궁사리와 옹동면 매정리 7.11㎞ 구간의 확장 개통으로 기존 5.7㎞ 구간은 국도에서 제외되었다.
거산리(巨山里)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山北面, Sanbuk-myeon]에 있는 리(里).
마을 전체가 분지 형태이다.
자연마을로는 거무, 모래바리 등이 있다. 거무는 이곳의 지형이 비단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 전하며 큰 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거산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모래바리는 옛날 이곳에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사촌끼리 살았는데, 자기 조상을 금혈 명당에 매장하고 내일 모레면 꼭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믿고 기다렸다 하여 모레바래라 불렀던 것이 점차 변음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모래바리는 사촌이라고도 부르는데, 사(四) 자를 사(沙) 자로 고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한다.
거산리(巨山里)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에 있는 리(里).
거류산(巨流山) 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옛날 마을 뒷산이 까마귀 같다고 하여 오산(烏山)이라 불렀으며 지금까지도 오산(烏山)으로 불리어 내려오고 있다. 마을 앞에 우뚝 선 동산 위에 큰 바위가 있는데 매년 섣달 그믐날밤 자정에 동제(洞祭)를 지내고 마을의 평안과 안녕, 풍년농사를 기원하였는데 지금은 동제(洞祭)터만 남았다. 마을 앞에 있는 개(바다)는 옛날 임진왜란 때 이름있는 쏙시개(속싯개)로 유명하다. 지금은 쏙시개라는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