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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섬 이름

작성자조범섭 프란치스코|작성시간26.06.17|조회수27 목록 댓글 0

거제도(巨濟島)

경상남도 거제시에 속한 섬.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하고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역사의 섬으로 면적은 382.2km2, 해안선 길이는 443.8km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다.

거제도 개요

경상남도 거제도(382.2km2)는 한반도 남해안의 동부에 위치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주도(1,845km2)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해안선의 길이가 무려 443.8km에 이르며 리아스식 해안의 특징인 복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섬의 최고봉은 최남단에 위치한 가라산(585m)이며, 계룡산(566m), 대금산(437.5m), 국사봉(464m) 등의 높은 산이 있다.

거제도는 1971년 4월 8일 육지인 통영시와 거제도를 잇는 거제대교(길이 740m, 폭 10m)가 개통되면서 육지로 변했다. 그러나 1971년에 준공된 거제대교가 증가된 차량들의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1992년 10월 착공, 6년 6개월 만인 1999년 4월 22일 신거제대교를 개통하였다. 이 두 개의 교량은 견내량 해협 아래 위쪽으로 나란히 서 있다. 그 다음은 11년 만인 2010년에 동쪽으로 가덕도로 통해 부산으로 이어지는 해저터널과 거가대교 개통으로 거제도의 관문 교량이 3개로 늘어났다.

거제시에는 10개의 유인도와 78개의 무인도가 있는데 칠천도는 2000년 1월 1일 칠천연륙교로 거제와 연결되었고, 가조도는 2009년 7월 13일 가조연륙교로 거제와 연결되었다. 그리고 최근 2018년 9월 20일 산달도가 산달연륙교로 연결되었다. 거제도는 넓고 큰 섬이지만 거제도 외에 다시 거제도 속의 아름다운 부속섬들이 즐비하다. 거제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알려진 곳은 해금강과 외도이며 그 외에 지심도와 내도 등 곳곳에 볼거리가 숨어 있다. 거제도는 아름다운 섬과 푸른 바다로 이루어진 한려수도 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면적 378.795㎢, 해안선길이 386.6㎞, 최고점 585m이다.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거제시의 본도(本島)로, 한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삼한시대 변한(弁韓) 12국 중 독로국(瀆盧國)에 속하였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부터 거제군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기성현(岐城縣)·거제현(巨濟縣)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제창현(齊昌縣)·거제군이라 하였다.

-1914년 통영군(統營郡)에 폐합되었다가

-1953년 거제군으로 환원되었으며,

-1995년 거제시에 편입되었다.  

해안은 크고 작은 곶과 섬, 익곡(溺谷)으로 구성되어 리아스식 해안의 특색을 나타내며, 곳곳에 여차몽돌해변·학동몽돌해변·명사해수욕장·구조라해수욕장·와현해수욕장 등이 있다. 내륙 쪽으로는 가라산(585m)·계룡산(566m)·노자산(565m) 등의 높은 산지가 발달하여 경작지가 적다. 쌀·보리의 생산은 미약하나 난대성 과수인 파인애플·참다래·알로에 등의 재배가 활발하고, 진해만과 남해를 끼고 있어 어업과 양식업이 발달하였다. 식생은 온대식물과 난대림이 자생하며, 열대식물인 풍란, 팔손이, 동백나무 등이 자란다. 지역 특산물로 맹종죽순·멸치·유자청·표고 등이 유명하다.
 동백축제·해변축제·고로쇠약수제·옥포대첩기념제전 등 계절별로 갖가지 축제가 열리며, 인근 바다에는 거제 해금강을 비롯하여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져 있다.

1971년 연도교(連島橋)인 길이 740m의 거제대교가 개통되어 통영시와 연결되었으며, 1999년 4월 22일 제2의 다리인 길이 940m의 왕복 4차선 신거제대교가 개통되어 육지와의 통행이 원활하다. 해상으로는 진해·마산 등지에서 거제도행 배가 운항되며, 거제와 부산 구간은 거가대교의 완공에 따라서 운항이 중단되었다.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역사의 섬

거제도는 지리적으로 일본과 매우 가까워서 왜구의 침입에 자주 시달렸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92년 옥포해전, 한산대첩, 1597년 칠천량해전 등 주요한 해전이 이곳에서 벌어졌고, 이 전쟁 때문에 인근의 통영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제주도진도완도, 추자도 등과 함께 유배지가 되어 귀양살이의 섬으로 불리었다.

거제도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 전쟁 포로들을 수용한 땅이다. 해금강과 외도의 아름다움이 있고, 한강의 기적을 나타내는 경제 발전에는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가 그 한몫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거제도에는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상처가 남아 있다. 하필 그 수많은 지역 중에서 거제도가 포로수용소로 결정된 이유는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이었다. 수많은 포로 경비, 급수시설 용이, 포로들에게 먹일 식량 재배 등이 고려되었다.

이 포로수용소는 거제도뿐만 아니라 인근의 용초도추봉도에도 있었다. 이 3개의 섬에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1년 초에 건설되어 처음에는 6만 명 정도를 수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북한의 인민군이 무려 15만 명, 중공군 2만 명, 여자포로 3,000명 등 총 17만 3,000명의 포로가 수용됐다. 여기에 포로들의 경비를 위한 경비 병력과 행정요원 등을 합쳐서, 약 10만 명 정도의 거제도 인구와 피난민 등 도합 37만 명으로 금세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상상만 해도 당시의 혼란이 얼마나 극에 달하였는가 짐작이 간다.

1951년 6월부터 시작된 포로수용소 내의 갈등으로 내부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해 수많은 포로들이 사망하기에 이른다. 1951년 정전협상이 시작되면서 유엔은 “각 포로들이 출신과 상관없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심사하겠다”고 주장하면서 포로송환 협상이 2년간 교착상태에 빠졌다. 포로송환 문제를 놓고 북한으로 가기를 거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원하는 친공포로로 갈려 대립하였으며 여기서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의 극한 갈등에 따른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친공포로들은 ‘해방동맹’이라는 비밀조직체를 수용소 내에 만들고 1951년 9월 17일에는 반공포로를 무려 300명 학살하였다. 이 폭동 사건으로 1952년 5월 7일 친공포로들이 수용소장 프랜시스 도드(Francis Dodd)준장을 납치하여 가혹행위 재발 방지 각서를 써주고야 풀어준 사건도 있었다. 이른바 거제도 포로소요 사건은 한 달이 지난 6월 10일에야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유엔군 사령부는 반공포로와 친공포로를 분리시켜 1952년 8월까지 북한으로 송환을 원하는 포로들은 거제도와 용초도, 추봉도로 보내졌다.

한편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은 제주도와 광주, 논산, 마산, 영천 등지로 보내져서 소규모로 분산되었다. 그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된 다음 33일 동안 거제도에 있던 친공포로들이 모두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83년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한국전쟁 중의 산물인 거제 포로수용소는 지금도 일부 건물이 남아 있다. 지금은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태어나서 그 당시 포로들의 생활 모습, 막사와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을 볼 수 있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

‘월간 조선’ 2005년 7월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5년 5월 27일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족공원에 건립된 흥남철수 기념비 앞에 선 로버트 러니 씨와 현봉학 박사. 로버트 러니는 흥남철수 때 1만 4,000명을 피란시킨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상급선원이었다. 지난 5월 27일, 경남 거제도 신현읍의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여기저기에서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1950년 12월 혹한의 흥남부두를 빽빽하게 메우고 서 있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사지에서 구해 준 은인들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거제도에 세웠다. 거제도는 흥남부두를 떠난 10만여 명의 피란민들이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양승호()씨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시 인구 10만의 거제도에 피란민 15만 명을 수용했다. 거제도에 도착한 피란민들은 주민들의 신세를 져야 했다. 그때 일을 기억하는 거제도 노인들은 『골방이나 창고에까지 피란민들이 들어찼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방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을 어귀 공터나 산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당시 거제의 인구는 10만 명, 피란민이 15만 명 이상이었다. 흥남철수작전으로 온 10만여 명의 피란민 외에 부산에 머물던 피란민 상당수가 거제도로 옮겨졌다.

포로를 상대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피란민도 있었다. 포로수용소 철조망 너머로 먹을 것을 넘겨주면, 포로들은 옷가지나 모포를 던져 주었다. 피란민들은 포로를 표시하는 「PW」라는 글씨를 지우고, 국방색을 탈색한 후 시장에 내다 팔았다. 피란민들이 많이 머문 장승포항 · 옥포항 · 고현항의 부두는 좌판을 벌인 피란민들로 가득했다. 당시 거제도에서는 장승포항이 가장 번화했다.

피란민들은 거제도에 짧게는 3개월, 보통 1~3년 정도 머물렀다. 거제도를 빠져 나간 이들은 부산에 나가 막노동을 하거나, 전국에 흩어져서 구두닦이 · 식당일 · 공사판 노동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거제도 즐기기

거제도가 생긴 이래로 시대에 따라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최근 가장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일은 거가대교의 개통일 것이다. 거가대교 개통 이후에 부산과 경남 북부, 경북과 강원도와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부를 창출하는 요소를 속도 · 공간 ·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은 고속도로와 KTX,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강국이며 GNP 3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공간 개념인 IT 다음으로 한국의 눈부신 발전은 아마도 교통 분야일 것이다.

지난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는 거제도 주민이 부산에 와서 시장을 보기도 하고, 부산과 서부경남 주민들이 거제도를 찾는 계기가 된 것이다. 거제도는 고속도로와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각종 예능 프로그램 등에 소개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거제도는 오색바위, 양지암, 신선대, 바람의 언덕 등 푸르른 바다와 함께 빼어난 바위와 어우러진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다.

흑진주 같은 검은 몽돌의 학동 몽돌해변을 따라가면 선선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주변의 해안은 동백림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거기서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귄다. 학동에서 남쪽으로 달려 해금강마을을 향하면 중간에 도장포마을이 나타난다.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면 외도와 해금강을 관광할 수 있는 유람선이 있다. 유람선 매표소에서 보이는 곳이 ‘바람의 언덕’이다. 그냥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민둥산인데 방목된 염소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관광지가 되었다.

탁 트인 바다가 있어 전망이 좋은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바람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기서 해금강으로 향하는 유람선을 타고 바다를 가르며 달려간다. 거제도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바로 해금강이다. 1971년 3월에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거제도 최남부의 갈곶()과 작은 돌섬인 갈도() 일대는 기암괴석이 하늘로 치솟아 장관이다. 그 모양이 만물상을 이루고 있으며 그 모습이 금강산의 해금강을 방불하게 하여 ‘거제해금강’으로 불러왔다. 갈도는 약초가 많아 약초섬이라고 하는데, 아열대식물 30여 종이 분포하고 있다.

주변에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사자바위와 미륵바위가 있다. 바닷물이 빠졌을 때 해금강의 신비로운 모습을 자세하게 볼 수 있는데 십자동굴과 석문(), 사통굴(), 부처바위, 금관바위, 촛대바위, 조서방바위 등 수많은 바위들을 둘러볼 수 있다. 해금강은 중국의 진시황제의 불로장생초를 구하는 ‘서불’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3천 명과 함께 찾았다는 ‘서불과차’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을 정도로 약초가 많다 하여 ‘약초섬’이라고도 불렸다.

한국의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외도는 천연 동백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열대식물인 선인장, 가자니아, 코코스 야자수 등 3,000여 종의 수목을 만나볼 수 있다. 거제도에서 외도로 가는 선착장은 총 6개가 있을 정도로 외도는 유명한 섬이다. 장승포, 학동, 와현, 도장포, 해금강, 구조라 등인데 요금은 거리 관계로 선착장마다 조금씩 다르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해금강을 돌아보고 외도로 들어간다. 외도에 내리면 1시간 반 정도 관람할 시간을 주고 정해진 시간에 돌아와 다시 그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외도에서 돌아올 때는 반드시 처음에 타고 간 배를 다시 타야 한다.

이곳은 수시로 유람선들이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혼돈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유람선을 타면 처음 탄 유람선 이름이 적힌 명찰을 나누어 준다. 그렇게 해금강을 돌아보고 외도를 관광한 후에 나오면 약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특히 거제에는 여행 인프라가 골고루 잘 갖추어져 있고 고급펜션들이 많아 가족과 연인들이 여행하기에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거제도는 1,128리 해안선을 따라 달려갈 정도로 커다란 섬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명승지로 알려진 해금강, 외도, 학동 몽돌해수욕장,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정도만 돌아보며 거제도를 떠난다. 가는 곳마다 신비한 모습과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교통이 좋다고 하루 만에 돌아가는 것은 좀 아쉬운 일이다. 여유 있게 시간을 쪼개서 거제도 구석구석을 찾아보면 좋다. 약 이틀 정도는 다녀야 할 것이다. 코끼리 다리 하나만 만져 보고 코끼리를 다 알 수 없듯이, 양파 껍질을 까면 깔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거제도를 자세히 알아보려면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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