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희팔(1957년 ~ )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피라미드 사기범이다. 경상북도 영천군(현 영천시) 출신이다.[1]
목차[숨기기] |
[편집] 생애
조희팔은 1957년에 태어났다. 조희팔은 2004년 가을부터 대구광역시를 시작으로, 사업을 벌였는데, 건강보조기구를 사면 연35%의 이자를 주는 방식의 피라미드 사기를 벌였다.[2] 한편, 이듬해인 2005년부터는 지역별로 다른 회사 이름을 사용하여 전국적으로 4조원대의 사기를 벌였다. [3] 그러다 조희팔의 범죄는 2008년 11월 드러나 수배되었다. [4]
그러나 조희팔은 같은해 12월 태안군 안면도 미금포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밀항하였다. [5] 2009년 1월 태안해양경찰서장은 그의 밀항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직위해제되었다.[6]
[편집] 경찰 유착 의혹
- 피해자들의 증언 - 이런 사실은 언론에 보도 된 적은 없는듯하고, 피해자들로부터 직접들은 증언이다. 피해자들의 말에 의하면, 50만원 100만원 또는 수백 수천만원을 맡기면 매달 꼬박 꼬박 수익금을 지급했다. 그러는 방식으로 사기 파이를 키워 나갔고, 돈맛을 들인 사람들은 수억원씩 투자를 했었다. 그러던 2008년 5월12일, 그날은 월요일이고 석탄일인데, 토,일,월 즉, 5월 10일부터 5월 13일까지 사흘간 연휴이고, 금융기관이 휴무였는데, 5월9일 금요일에 돈을 챙겨 도주했다. 5월9일에 수익금을 받아야 할 투자자들은 계좌에 수익금이 입금이 되었다. 5월13일 화요일이 되어, 수익금을 입금받아야 할 투자자들은 입금이 안된걸 확인하게 되고,그러면서 전모가 밝혀진다.
-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인데 검찰 경찰 또는 권력의 비호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조희팔은 2008년 10월 권모 총경에게 수표를 건낸 것으로 드러났다[7] 그는 조희팔에게 조희팔이 투자하려는 회사에 돈을 대신 전달했다고 진술하였다.[8] 그는 검거될 경우 조희팔 사건을 수사하는 주체가 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전보 조치되었다.
- 조희팔의 밀항에 해경 경찰관과 유착 관계가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9] 해경은 이에 대해 감찰을 진행하였다. [10]
- 2012년 9월 조희팔을 중국에서 만난 대구경찰청 소속 정 모 경사가 검거하기는 커녕 골프와 술 접대를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1]
- 2012년 11월 15일 - 조희팔로 부터 2억4천만원의 뇌물은 받은 서울고검 김광준(51) 검사(부장검사급)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편집] 방송 , 잡지
- 시사인에서는 2008년 12월 5일 65호에서 제이유 주수도 뺨치는 ‘조희팔의 금융 다단계’라는 제목으로, 다음해 3월 9일 조희팔 밀항 해경은 진짜 몰랐나라는 제목으로 다루었다.[12]
- PD수첩에서는 2008년 12월 9일 조희팔의 범죄를 다루었다.
-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2009년 2월 28일 조희팔의 범죄를 다루었다.[13]
[편집] 현재
2012년 5월 조희팔이 중화인민공화국에서 2011년 12월 19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4] 조희팔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밀항했을 당시부터 조선족 조영복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호구를 발급받아 사용하였다.[15] 한편, 조희팔의 장례는 유족이 동영상을 촬영하였다.[16][17] 이에 대한민국 경찰은 화장된 유골의 DNA를 확인하여 사망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18] 그러나 감식 불가라는 결론을 받았다. [19]2012년 9월 12일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나옴에 따라 한국 검찰이 중화인민공화국 공안에 생사확인요청을 했다.[2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