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tha Franklin
Soul의 여왕 Aretha Franklin과 George Michael의 듀엣곡,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입니다.
조지 마이클이 소울의 여왕 Aretha Franklin과 함께 한 곡으로 1987년 미국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고, 생애 최초로 그래미 트로피까지 받았습니다.
'소울의 여왕' 혹은 '레이디 소울'로 불리는 아레사 프랭클린은 비단 흑인 음악뿐 아니라
팝의 역사에서도 최고의 목소리로 꼽힌다.
그녀는 모타운(Motown) 소속의 보컬 그룹 수프림즈(The Supremes)의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와 더불어 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흑인 가수였는데, 보다 팝적이고
백인 취향이었던 다이애나 로스에 비해 가스펠에 바탕을 둔 그녀의 힘있는 목소리는 소울
보컬리스트의 최고봉으로 손색이 없다.
또한 1960년대 후반에 있었던 흑인 민권 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은 그녀의 곡들은 흑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42년 멤피스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매들과 함께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14세에 처음으로 가스펠 곡을 녹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최초로 정식 레코딩 계약을 한 레이블은 컬럼비아(Columbia)였다.
60년대 초반 그녀는 컬럼비아에서 'Rock-a-bye Your Baby with a Dixie Melody'를
비롯하여 몇 곡의 싱글을 발표했는데 그렇게 큰 성과는 얻지 못했다.
1967년 애틀랜틱(Atlantic) 레코드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로소 그녀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은 싱글 차트 톱텐에 든 그녀 최초의
곡이었고, 이어 1968년까지 무려 10곡의 톱텐 히트곡을 연속적으로 낳았다.
'Chain of Fools', 'Baby I Love You',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I Say a Little Prayer', 'Think'가 당시 그녀의 히트곡들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Respect'는 단연 돋보이는 곡이다.
1965년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이 불렀던 곡을 다시 부른 이 곡은, 또한 1967년 7월
디트로이트 흑인 운동에서 시위대의 송가로 불려지면서 흑인 민권 운동을 상징하는 곡이
되었다.
물론 그녀가 직접 자신의 곡을 쓴 것은 아니지만 음악을 고르는 뛰어난 안목과 무엇보다
신기에 가까운 그녀의 가창력은 실로 돋보이는 것이었다.
여기에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Jerry Wexler)와, 반주를 맡은 Muscle Shoals Sound
Rhythm Section의 도움도 그녀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1970년대 들어서도 그녀는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하였다. 벤 이 킹(Ben E. King)의
'Spanish Harlem'을 1971년에 리메이크한 곡은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이며,
'Bridge Over Troubled Water', 'Rock Steady', 'Day Dreaming' 등도 인기를 얻었다.
이 무렵부터 그녀는 작곡과 프로듀스의 영역에까지 재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한편 1972년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가스펠 스타일의 앨범 [Amazing Grace]을
발표하여 앨범 차트 상위에 올려놓았다.
70년대 중반에는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각각 프로듀스를 맡은 'Angel'(1973)과 'Something He Can Feel'(1976), 그리고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곡인 'Until You Come Back to Me'(1974)를 발표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소울의 퇴조와 더불어 그녀의 음악 역시 보다 팝 지향적이 되면서
그 영향력이 쇠퇴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바야흐로 흑인 음악은 디스코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1985년 그녀는 앨범 [Who's Zoomin' Who?]으로 오랜만에 팝차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수록곡인 'Freeway of Love'와 'Who's Zoomin' Who?'가 싱글 차트 톱텐에 올랐는데,
이듬해에 '소울의 대부'인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Living In America'가
영화 [록키 4]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얻는 등 80년대 중반 소울은 새롭게
부각되었다.
1986년 그녀는 20년 전의 'Respect'에 이어 두 번째로 빌보드 팝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을
발표했다.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과 함께 부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이
바로 그것이다.
이듬해에는 또 하나의 가스펠 앨범 [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을 발표했고,
1995년에는 다이나 워싱턴에 바치는 앨범 [Unforgettable: A Tribute to Dinah
Washington]을 내놓았다. 1998년 푸지스(Fugees)의 로린 힐(Lauryn Hill)과 함께 한
앨범 [A Rose Is Still a Rose]는 비평적으로 괜찮은 평을 받았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지금까지 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싱글만 12곡을 보유하고
있고, R&B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은 모두 20곡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커버모델로도 실린 적이 있으며, 1987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래미상도 15번이나 수상했는데, 특히 1995년 그래미는 그녀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함으로써 그녀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Like a warrior that fights
And wins the battle
I know the taste of victory
Though i went through some nights
Consumed by the shadows
And was crippled emotionally
Somehow I made it through the heartace
I escaped
I found my way out of the darkness, kept my faith
Kept my faith
(Chorus)
And the river was deep I didn't falter
When the mountain was high
I still believed
When the valley was low
It didn't stop me
I knew you were waiting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With and endless desire
I kept on searching
Sure in time our eyes would meet
And like the bridge is on fire
The hurt is over
One touch and you set me free
I don't regret a single moment
Looking back, when I think of all those disappointments
I just laugh, I just laugh
(Chorus)
And the river was deep I didn't falter
When the mountain was high
I still believed
When the valley was low
It didn't stop me
I knew you were waiting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So we were drawn together through destiny
I know this love we share was meant to be